언어 선택

Close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조회 516

자녀의 방학과 직장인 부모의 휴가가 겹치는 7, 8월이면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여행을 떠나는 가정이 많다. 각박한 시대, 아이나 어른이나 경쟁하듯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에 여행은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아이에게는 견문을 넓히며 창의력과 감수성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어른은 반복되는 일상의 임무에서 벗어남으로써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다.

한적한 곳에 가서 조용히 쉬느냐, 관광 명소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고 듣느냐, 자녀들의 학습과 체험에 중점을 두느냐 등 목적에 따라 여행 장소와 방법은 달라지나,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면 화목 도모는 필수다. 가족과 마주 앉아 느긋하게 식사하기도 쉽지 않은 요즘, 여행하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함께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가족의 정도 더욱 두터워진다.

그러나 가족이 웃으며 떠났다가 뜻하지 않게 마음이 상해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시간은 빠듯하고, 낯선 상황에서 각자의 요구와 기대가 부딪쳐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모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에서 불상사가 생기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터,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함께 계획하고 역할 분담하기

여행을 계획하노라면 목적지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어떤 일정으로 움직일 것인가, 예산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어디서 묵을 것인가, 식사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등 정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 일을 도맡으면 이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여행 일정에 불만을 품을 수 있고, 계획한 사람 역시 혼자만 일한다는 생각에, 혹은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다. 여행지에 가서 의견 차이로 갈등하지 않으려면 준비 과정부터 충분한 대화를 나눈 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여행을 혼자 떠나지 않는 한 역할 분담은 필수다.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희생이나 봉사를 요하는 여행이라면 개선이 필요하다. 예약할 사람, 정보를 수집할 사람, 경비를 관리할 사람 등 역할을 공정하게 나누어야 가족 모두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일정을 짜고 아이는 따라오게만 하기보다는 여행 준비에 참여시켜보자. 그럴 때 아이는 부모에게 존중받고 있다 느끼고 자신감도 커진다. 아이에게 여행지의 역사나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찾게 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이다.

함께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되 너무 철저할 필요는 없다. 숙소나 교통편 등 예약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나머지는 휴가지에서 그때그때 대처하고 풀어나가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2. 일정은 여유 있게

여행 일정은 너무 빡빡하지 않게 짜는 것이 좋다. 정해진 시간에 비해 많은 일정을 계획하면 시간에 쫓겨 마음도 조급하고 몸도 쉽게 지친다. 서로의 속도에 맞춰 걸으며 노래 부를 수 있는 느긋함, 누군가 힘들어하면 쉬어갈 틈이 있어야 편안한 여행이 된다. 어린아이나 연세 든 부모님을 동반하는 여행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삼대가 함께하는 경우에는 자녀와 부모님 모두 만족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 부모님이 괜찮다며 아이들 중심으로 움직이라고 해서 그렇게 실행했다가는 막상 여행지에 갔을 때 부모님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어린아이에게는 여행의 장소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평소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더라도, 어디에서든 마음껏 놀아주거나 운동을 하는 등 함께할 수 있는 일들로 시간을 보내면 아이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는다. 그러나 가정을 이룬 자녀가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기왕 부모님을 모시고 떠날 거라면 부모님이 좋아하실 만한 코스나 이동수단, 숙식 등의 편의성에 신경 쓰자.

함께 떠나는 가족 수가 많으면 모든 사람을 고려하여 코스를 짜기 어려운데, 그럴 때 하나의 일정 정도는 흩어져서 소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들은 수영장에 가고 싶어 하고, 부모님은 온천을 원한다면 두 팀으로 나뉘어 다녀오는 것이다.

3. 서로 배려하며 기분 좋은 대화 나누기

많은 것을 보고 듣는 것도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겠지만, 가족 여행의 핵심은 가족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일이다. 그러려면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여행지에서 의견 차이가 있을 때 각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상처뿐인 여행이 될 수도 있다.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에둘러 표현하거나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야 서로의 기분을 망치지 않는다.

혹여 자녀에게 실망스러운 면이 보이더라도 여행하는 동안에는 꾸중을 자제하고 너그럽게 대하자. 여행지에서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사전에 최소한의 규칙을 정하는 것도 좋다. 화내거나 짜증 내는 말투 삼가기, 식사할 때 스마트폰 하지 않기,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말 하지 않기 등 여행지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미리 약속하면 불화가 생길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다면 무료하지 않도록 간식이나 간단한 놀이를 준비하고, 아이가 어리다면 동화책이나 동요, 색종이 등을 미리 챙겨보자. 여행은 평소 하지 못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기회다. 잠을 자는 것보다는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자. 특히 아이가 자랄수록 아빠와의 대화를 어려워하고 아빠 역시 자녀와의 소통을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행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살피며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소통이 한결 원활해진다. 이런 대화는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든든한 기반이 된다.

4.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 여행을 다녀오면 피로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여행 후에는 빨리 짐을 정리하고 조금이라도 쉬는 게 좋다. 여독을 풀지 않고 피곤한 상태로 일상에 복귀하면 여행 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가 쌓일 수도 있다.

집에 돌아와 쉬면서 가족이 함께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깨달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자. 가장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가장 맛있었던 음식, 기억에 남는 일 등으로 대화를 나누면 여행의 추억과 즐거웠던 느낌을 오래 간직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으로 가족 앨범을 만들거나, 노트에 사진을 붙인 후 간단한 설명을 달며 여행기를 작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을 떠날 때 작은 수첩을 준비해 그때그때 여정과 기분을 메모로 남겨놓으면 여행기를 작성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것을 갚는다.”

어느 작가가 여행에 대해 쓴 글이다. 흔히들 인생을 여행에 빗대어 말한다. 어디에선가 와서,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고, 시간이 되면 왔던 곳으로 다시 간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특별한 ‘여정’인 셈이다. 그러니 여행의 횟수나 장소 등을 이유로 다른 가정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가족으로부터 받은 환대에 감사하며 일상의 여정 속에서 행복을 꽃피운다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여행은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