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1년에 한 달 반,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평생 10년이다. 인생의 10년이라는 황금 같은 세월을 바보상자라 불리는 텔레비전 앞에 멍하니 앉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이란 이름은 그리스어로 ‘멀리’를 뜻하는 ‘tele’와 라틴어로 ‘본다’를 뜻하는 ‘vision’이 합쳐진 단어이다. 말 그대로 텔레비전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까지도 안방에서 훤히 내다보게 하는 대중매체다. 하지만 정작 가까이에 있는 가족은 볼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는 아이를 위해 TV만화를 틀어주고, 온 가족이 모이는 거실 중앙을 텔레비전이 꿰차고 있는 모습이 지극히 일상적으로 되어버린 지금, 정규방송 외에도 케이블 방송에 채널이 다양하다 보니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습관적으로 TV를 틀어 놓는 가정이 적지 않다.
<건강한 가족의 특징>의 저자 돌로레스 커런은 “가족파괴로 인해 사람들이 TV를 과도하게 시청하게 되었는지, 과도한 TV 시청 때문에 가족이 가정 생활을 빼앗겼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TV 앞에 앉아 있을 때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TV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텔레비전이 현대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잘 활용하면 유익한 점도 있지만,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과도한 텔레비전 시청으로 인한 폐해
TV 시청을 한 시간씩 늘릴 때마다 비만 발생률이 2%씩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TV 화면이 뇌의 식욕중추를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배가 불러도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계속 먹게 하고, 소파에 기대거나 누운 채로 손가락만 까딱하면 되기에 운동량을 부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의사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년의 나이에 텔레비전을 무리하게 보면 치매 같은 뇌질환에 걸릴 위험성을 세 배나 키우게 된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시각정보에 따라 학습능력을 저하시키고, 부정적 사건사고와 재앙에 관한 보도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또, 비현실적인 폭력물에 의한 폭력성, 노출과 선정성으로 인한 이상 성적 행동, 광고의 범람으로 인해 순간주의와 조급증·소비심리를 조장하고, 과도한 건강정보로 인해 건강염려증을 유발한다. 게다가 시청률 경쟁이 낳은 ‘막장드라마’로 윤리성마저 흔들리고 있으니, 무분별한 텔레비전 시청은 심각한 부작용에 이어 사회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특히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가져오는데, 유아기 때 TV 시청을 과도하게 하면 부모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거나 부모를 성가신 존재로 느낄 수 있다. TV를 틀어 놓는 동안 부모와 애착을 형성할 기회를 잃어버려 정서 발달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집안일을 하느라, 아이를 말썽 없이 가만히 있게 하기 위해, 혹은 화면에 나오는 노래나 율동을 따라 하는 것을 보고 좋은 선생인 줄 생각하여 아이를 텔레비전 앞에 방치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교육적인 내용이라도 아이에게 TV를 오래 보게 하는 것은 신체적·정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아이의 뇌 구조에 손상을 초래할 뿐 아니라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지며 창의성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TV를 시청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가족 간 소통이 단절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TV 소음 때문에 가족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없을뿐더러 한 공간에 있어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어진다. 설령 대화를 나눈다 하더라도 진지한 대화는 나눌 수 없다. 때로는 리모컨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확보를 위해 가족끼리 다투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런 가정에서는 화목을 기대하기 힘들다.
텔레비전을 끄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미국의 비영리단체 ‘TV 끄기 네트워크’는 ‘TV를 끄고 인생을 켜자(Turn off TV-Turn on Life)’라는 슬로건 아래 일 년에 한 주간 만이라도 TV를 끄자는 캠페인을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에 ‘TV 안 보기 시민 모임’이 결성되어 가정의 달인 5월 첫 주를 ‘TV 안 보기 주간’으로 정해 활동을 펼치고 있다.
TV를 안 보면 심심하고 지루하며 세상과 단절될 것 같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한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서울·경기 지역 130여 가구를 대상으로 20일간 텔레비전을 끄는 실험을 했다. 처음 며칠간은 TV를 켜달라며 우는 아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짜증이 났다는 가장,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는 주부 등 참가자들이 금단증상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은 오래가지 않았다.
TV 중독에 빠져 있던 자취생은 시선을 주변으로 돌려 청소와 빨래를 했고, 일요일이면 리모컨만 쥐고 있던 가장은 아이와 신 나게 놀아주거나 팔을 걷어붙이고 아내를 도와주기도 했다. 많은 참가자들이 “남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며 신문·책 읽기, 주변 정리 정돈, 기타 취미 활동에 관심을 갖는 등 그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미루어 놓았던 일을 찾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어 피곤함과 짜증이 사라지고 몸이 가뿐해졌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TV를 끄면 아이들이 더 힘들어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어른보다 빨리 적응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에도 TV를 틀어 놓던 아이가 어느새 스스로 책을 읽는가 하면, 그동안 생각지 못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하기도 했다. 이를 본 부모들은 “아이의 TV 중독은 어른에게 책임이 있다”며 각성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가족이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대화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TV를 끄니 가족이 보이고, TV 소음이 사라지자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 것. TV가 사라진 거실은 적막함이 아닌 더 많은 이야기로 채워졌다.
텔레비전 시청 똑똑하게 하기
- 가구를 텔레비전 중심으로 배치하지 않고 거실보다는 부모 방에 놓는다.
- 습관적으로 TV를 켜지 말고 신문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편성표를 미리 확인한 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할 때만 켠다.
- 부모가 TV 시청을 자제하는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 부모는 하루 종일 TV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보지 말라고 하면 반발심만 커진다.
- 어린아이가 혼자 텔레비전 앞에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린이 프로도 부모가 함께 시청하며 내용이나 등장인물에 대해 아이와 대화를 나눈다.
- 온 가족이 함께 일주일의 텔레비전 시청 계획표를 만들고, 독서·산책·운동·놀이 등 TV를 안 보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계획한다.
- 시청 등급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 식사를 할 때나 간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TV를 끈다.
- 2m 떨어진 곳에서 바른 자세로 앉아 한 시간 내로 본다.
- 두 돌이 안된 아이는 TV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TV를 조종하지 못하면 TV에게 조종당하게 된다. 혹시 우리 가정이 TV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지, 가족의 대화로 꽃피어야 할 거실이 TV를 관람하는 공간이 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그리고 오늘부터라도 TV 대신 가족을 보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소중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