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부르시고 택하셨던 성경 속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저마다 태어난 의미가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도 그러하고, 신약성경의 베드로와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성령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의미와 사명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예언의 사명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3500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약 400년 동안 종살이하고 있었습니다. 온갖 노역에 시달리던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출 1~2장).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모세라는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 3장 10절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질고와 죄악의 땅 애굽에서 건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해 내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이루어야 할 시대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를 이 땅에 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선지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 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 4장 18~20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불러 같은 일을 맡기셨습니다(마 4장 21~22절). 영혼 구원의 사명을 그들에게 부여하시면서, 하늘에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찾아 회개시키러 오신 당신의 길을 따라오게 하셨습니다(눅 19장 10절, 마 9장 13절).
사도 바울이 이 땅에 탄생한 의미에 대해서도 살펴봅시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 9장 15~16절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할 때, 다메섹 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연고로 사흘 동안 시력을 잃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바울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주도록 명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해를 끼친 바울에게 왜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바울을 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모세, 베드로, 사도 바울 모두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 택함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충실히 이행한 그들은 모두 성경 가운데 위대한 행적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성령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 역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시대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택함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장 18~20절
성부 시대에 모세를 부르시고, 성자 시대에 베드로를 부르시고 사도 바울을 부르셔서 사명을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할 것이니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분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온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혹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초림 당시의 성도들에게 부탁하신 것이지 오늘날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라는 성부의 이름과, 예수라는 성자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인 성령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침례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오늘날 성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런고로 마태복음 28장의 말씀은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완전하신 뜻은 오늘날 성령 시대에 태어날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틀림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이 향하는 성령 시대에 산다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성령과 신부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시온에 들어와 새 언약의 진리로 영생을 보장받고, 천국에서 누릴 왕 같은 제사장의 직임까지 받을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가 약속된 시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옳게 여기시는 자들에게 복음 전할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살전 2장 4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한 축복 주셨음을 믿고, 우리가 받은 거룩한 사명을 능히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솔해 나왔을 때, 20세 이상의 장정만도 60만 명이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당시 계수에 포함되지 않은 여인들과 어린아이까지 합하면 이스라엘 전체 인구가 300만 명이 넘었을 것이라 추산합니다. 인구가 곧 국력이던 시대에, 온갖 건축 공사에 동원하던 그 많은 백성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하니 애굽 왕 바로가 기뻐했겠습니까? 강퍅한 바로는 쉽사리 그들을 보내주려 하지 않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권능으로 열 가지 재앙을 당하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게 됩니다.
모세가 처음부터 바로에게 맞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낼 만큼 훌륭한 영도력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처음 부르심을 받고 자신의 사명을 들었을 때는 모세도 당황했습니다. 자신은 능력도 없는데 어떻게 바로에게 나아가 담판을 지을 수 있을지 주저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출 3장 11~12절).
이에 모세는 이 땅에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영원한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의 길 걷기를 선택했습니다(히 11장 24~26절).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명을 마칠 때까지 늘 함께해 주시면서, 그와 대화하시고 그를 통해 당신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하시며,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지도해서 마침내 가나안 목전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사명을 주실 때는 능력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기에 모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러했습니다. 갈릴리에서 고기 잡는 일만 하던 어부가 복음 전할 능력을 얼마나 가졌겠습니까. 그런 베드로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사도로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기 사명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을 가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말씀을 심고 물만 주었으되 자라나게 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했습니다(고전 3장 6~7절).
모세, 기드온 등 믿음의 선진들이 사명 앞에 주저하고 두려워하며 ‘내가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공통적으로 주신 대답은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였습니다. 그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실 때 사명과 더불어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분부는 베드로나 바울에게만 주신 사명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의 남은 예언에 따라 온 세계에 복음을 다 전파해야 합니다. ‘그건 다른 사람이 하겠지’, ‘나 아닌 누군가가 하겠지’ 하기보다는 ‘이 축복만큼은 내가 받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전 세계 모든 복음 도시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굳센 의지를 가지고 복음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고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에서같이 축복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굳게 잡는 하늘 장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장 22~24절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께 받은 사명, 곧 복음 증거하는 일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사명을 가치 있게 여긴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중심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크나큰 성령의 능력을 더해 주셔서 그는 고린도, 빌립보 등 가는 곳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일꾼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바울 같은 정신을 가진다면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더해 주셔서 큰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언변이 부족하면 언변을, 지식이 부족하다면 지식을, 지혜가 부족하면 지혜를 주셔서 복음의 아름다운 결과로 이어지게 하십니다. 오직 우리는 받은 바 사명을 믿음으로 수행하면 되겠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 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사 41장 10~14절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사명을 수행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로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놀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의 해답을 쉬이 얻지 못해 힘들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마침내 승리하게 하시고, 반드시 해결책을 주시고, 복음의 더 큰 발전을 가져다주십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리라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받은 사명을 알고, 그 사명이 하나님께로서 왔음을 확신하는 사람의 앞에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전진뿐입니다.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지켜볼 때면 이 일은 우리 능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심을 실감합니다. 해외에 파송되는 선지자들도 해당 나라의 언어를 백 퍼센트 구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 생명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려야겠다는 결심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해당 국가와 민족을 부탁할 일꾼으로 택함받았으니 그들에게 반드시 복음을 전하고 말겠다는 각오를 갖고 가니 하나님께서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진리를 영접하게 해주시고, 그들이 훌륭한 복음 일꾼으로 성장해 주변에 말씀을 전하며 그 나라 전역에 복음이 전파된 경우도 허다합니다.
베드로를 부르셔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습니다(고후 3장 6절).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고 기뻐하시는 이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각자 처한 위치에서 사명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보면 반드시 믿음의 눈이 열리고 복음의 길이 만들어집니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식구들의 열망이 생활 속 복음의 길을 냈습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군인은 군대에서, 주부는 가정에서, 각자 처한 위치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니 은혜로운 결실이 풍성히 맺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완성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이유는 받은 사명의 가치가 더 높고 크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들은 이 땅의 기준이 아닌 천국의 기준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자녀들이 그런 광대한 축복을 받으라는 뜻에서 온 세계에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세계복음을 완성할 능력이 있으시지만 우리에게 축복받을 기회를 열어주셨습니다. 이미 되는 복음, 이룰 복음으로 예정되어 있으니 지치지 마시고, 영원한 하늘 본향에 돌아가기 위해 맡겨주신 복음 사명을 능히 감당하는 하늘 자녀들, 새 언약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