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다양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싱글벙글하는 사람이 있고 무표정한 사람 혹은 입꼬리가 땅을 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뇌는 신비하고도 오묘해서 사람이 표정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달리 반응한다고 합니다. 웃으면 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해서, 늘 웃음이 넘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 어머니께서도 우리에게 날마다 웃음이 넘치는 생활을 하자고 일러주셨습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고 하늘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보장된 미래가 있으니 늘 웃음 가득한 얼굴로 생활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때로 눈앞의 현실이 우리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더라도, 우리를 위해 예비된 하늘나라의 영광을 생각하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을 영위해 봅시다.
월간 《행복한 가정》에 실린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초등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에게는 사탕 하나를, 어떤 아이에게는 두 개를, 또 어떤 아이에게는 네 개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분배가 불공평하다고 여긴 아이들이 왜 사탕의 개수를 달리해서 나눠주는지 여쭈어보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그 이유를 맞혀 보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선생님의 뜻을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사탕을 받는 태도를 보고 다르게 준 것뿐이야. 그냥 시큰둥하게 받는 아이에게는 하나를 주었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받는 듯한 아이에게는 두 개를 주었지. 마음으로 감사할 뿐만 아니라 기뻐하며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까지 한 아이에게는 네 개를 준 거란다.”
짧은 내용이지만 이 이야기를 읽고 많은 깨달음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죄 사함의 크신 은혜를 받고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우리는, 나 자신은 과연 지금까지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그에 대해 얼마나 기뻐했으며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를 표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너무 부족하여 혹여 사탕을 하나밖에 받지 못할 아이의 입장은 아니었던가 하는 회개와 반성이 일었습니다.
선생님이 주시는 사탕을 받는 태도에 따라 어떤 아이는 하나, 어떤 아이는 둘, 또 다른 아이는 넷을 받게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그러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받은 은혜가 형언할 수 없이 큰데도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적다면, 그만큼 적은 분량의 축복밖에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친히 육체로 오셔서 보배로운 피를 흘려 새 언약을 세우시고 죄 사함과 구원, 영생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천국에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하는 영광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새 언약 진리의 가치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채, 그 모든 축복을 으레 받는 것인 양 당연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땅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은혜를 받았으니 늘 기뻐하며, 하나님께 그에 합당한 감사의 인사를 아낌없이 올리는 자녀가 됩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살전 5장 16~23절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말씀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는 안식일에도 단순히 일상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날이 없었다면 세상 근심에 시름하던 내 심령이 어떻게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기쁜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를 넘치도록 돌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이든 더 얹어주고 싶으시지 않겠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은 겉으로 드러내고 전할 때 그 의미가 배가 됩니다. 덕스럽지 않은 말에 대해서는 입이 무거워야 하겠지만,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서는 잠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랑하라 하셨습니다(시 44편 8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날마다 열심히 자랑합시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진리를 자랑하고, 시온을 자랑하고, 우리를 위해 영화로운 천국을 예비하고 계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자비와 사랑을 만방에 알리는 시온의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실물 교훈을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눅 17장 11~19절
과거 문둥병이라 불리던 나병은 천형(天刑)으로 여겨지던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만나 자신들의 병 고쳐주시기를 간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 하시고 그들이 가는 도중에 병이 낫게 해주셨습니다.
가다가 보니 살이 다 낫고 나병이 자기들 몸에서 떠나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병으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게 되었으니 그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홉 명은 그대로 떠났고 한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례, 곧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낫게 한 이는 분명 열 명인데 나머지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 같은 지난날의 일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은혜를 당연한 듯이 받았던 아홉 명의병자보다, 감사의 인사를 드린 사람의 입장에 서야 하겠습니다. 감사할 줄 알고 또 인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구원이라는 은혜까지 허락하셨습니다.
실상 우리도 뛸 듯이 기뻐해야 할 크나큰 은혜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하늘의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영원한 고통과 사망, 세세토록 고난받는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큰지 마음 깊이 깨닫는다면 몇 날 며칠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도 진리를 받은 기쁨과 감동이 결코 식지 않고 늘 감사가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 2장 6~7절
하나님께서는 감사에 대해 일깨워 주시기를 그 분량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컵에 물을 넘치게 담으면 물은 밖으로 흘러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를 감사가 넘친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외식하러 가는 날을 떠올려봅시다. 모처럼만의 외식에 아이가 신이 나서 기쁨을 표출하면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 식사 후에 “오늘 정말 최고였어요. 저도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 아빠께 보답할게요” 하며 기쁨과 감사를 표현한다면 부모는 자녀를 위해 수고해 온 모든 일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자녀에게 더 좋은 것을 더 자주 사주려는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저 잠잠하게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함을 넘치도록 표현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무시로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고 계시니,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감사할 여지를 항상 찾읍시다. 사람이 10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하루에 세 가지의 은혜만 발견하더라도 일평생 10만 번 정도 감사를 드릴 기회가 옵니다. 이제까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무심히 받았더라도 앞으로는 하나님께 어떻게 기쁨을 드릴지 생각하며 적극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믿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감사가 넘쳐나는 마음에는 원망이나 불평이 깃들 새가 없습니다. 똑같은 여건과 환경이라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 믿음의 길에는 항상 기쁨과 즐거움만이 넘쳐나게 됩니다. 예배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셔서 감사하고, 전도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셔서 감사하고⋯. 생활 속에서 감사드릴 요소를 항상 찾아보십시오. 그렇게 찾은 감사를 마음속에 가만히 담아두지 말고 누가복음 17장에 언급된 사마리아인과 같이 큰 소리로 표현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감사의 인사로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려봅시다.
우리가 이른 곳, 시온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곳입니다(히 12장 22~24절, 시 132편 13~16절).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장소로 예비하셨습니다.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사 51장 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포로 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그 성읍은 자기 산에 중건될 것이요 그 궁궐은 본래대로 거하는 곳이 될 것이며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렘 30장 18~19절
이처럼 시온은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와야 할 곳입니다. 그럼에도 시온에 거하는 우리가 아직 완전치 못하다 보니 때로는 이런저런 문제가 눈에 띄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수많은 행복과 기쁨은 헤아리지 못하고 그 문제만 지적하며 파고들다 보면 감사하는 소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우리를 완성품으로 일일이 빚어가고 계십니다.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바로잡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타인의 허물을 지적하고 문제 삼기보다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형제의 허물이 보일 때 ‘과거 나는 그런 실수를 범한 적이 없었던가, 식구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상처를 주지는 않았던가’를 먼저 되돌아봅시다. 그리고 영의 형제자매가 시온에 모여 함께할 수 있음에, 한 영혼 구원하는 일에 힘을 모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인사를 날마다 하나님께 올릴 때 시온에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대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날 것입니다.
내가 더 헌신하고 봉사하며, 만나는 모든 식구에게 내가 먼저 인사하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영광 찬양을 돌리면서 시온을 진정 감사가 가득한 은혜의 천국으로 변화시켜 봅시다. 교회뿐 아니라 가정에서든 또 우리가 속한 그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아로새겨 실천하는 가운데 그곳을 감사의 인사, 기쁨의 소리가 넘쳐나는 작은 천국으로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감사할 줄 모르고 기뻐할 줄 모르는 삶이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그들의 간절한 소원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향하던 노상에서 백성들은 도리어 수많은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 가나안에 이르지 못한 채 광야에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세상을 벗어나 영원한 천국으로 향하는 우리에게 그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거듭 교훈하셨습니다(고전 10장 1~11절).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이 늘 평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어려움이 있어야 그것을 헤쳐나갈 힘과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마침내 복 주시고자 거친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잠시 잠깐 고난이 있더라도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 감사로써 헤쳐나가는 믿음의 자세를 갖춰봅시다. 어떤 일이든 그 속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감사할 일을 계속해서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 9장 27~2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육체를 입고 두 번째 이 땅에 오셨습니다. 2천 년 전 초림 당시, 인생들로부터 갖은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쓰라린 고통을 겪으셨음에도 그런 아픔이 있는 곳에 또다시 오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하늘 죄인을 위해 다시 이 땅에 와주신 그 사랑과 은혜를 생각한다면, 삶에 작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여 차마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함부로 투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아버지 어머니의 길을 은혜롭게 따르는 장성한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닮은 완전한 하늘 사람으로 변모되어 천국에 넉넉히 입성합시다. 천국 문을 지키는 천사들 앞에 섰을 때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닮은 모습이 그 자체로 보증수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보며, 그 은혜를 당연하다는 듯이 무심히 여기지 말고 감사합시다. 세상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우리는 천국이라는 영광된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 길에 어떤 어려움과 훼방이 있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하늘 아버지 어머니 손 꼭 잡고 영원한 천국까지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누가 보더라도 감사가 넘치는 모습으로 주변에도 행복을 전하고 천국을 앞당기는 시온의 가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