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이루는 복음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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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상점에서 의례적으로 듣는 인사일망정 일단은 기분이 좋다. 그리고 나중에 물건을 살 일이 있을 때 기왕이면 그곳을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든다. 유쾌해지기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호의를 베풀고 도움을 준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일상에서 주고받는 소박한 감사는 사람들에게 내재된 무한한 잠재력을 키우는 시초가 된다. 그 힘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삶에 큰 기적까지도 불러일으킨다.

감사의 힘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인 “감사합니다”는 외국에 나갈 일이 있을 때 빼놓지 말고 익혀두어야 할 현지어 중 하나다. 많은 엄마들이 말을 갓 배우는 아이에게 엄마아빠 다음으로 가르치는 말이 “고맙습니다”이다. 이처럼 감사는 누구나가 습득해야 할 기본 에티켓이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예의 안에 간과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다고 한다. 감사를 전하는 일을 일상에서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한층 윤택하고 풍요로운 인생을 가꾸어간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감사하는 태도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알아보기 위해 두 심리학 교수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일주일 동안 한 그룹은 기분 나쁜 언행에, 또 한 그룹은 고마움을 전하는 언행에, 나머지 그룹은 일상적인 언행에 집중하도록 한 것인데 실험 후 감사하는 태도에 주력한 그룹 사람들이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 기간을 1년으로 연장시켜도 결과는 같았다. 감사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환경에서도 분노하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경우가 적었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돕는 데 적극적이었으며 좌절을 겪어도 빠른 속도로 극복했다.

감사의 힘은 심리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건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강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평균 10년 이상 장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를 느낀다고 해서 실제 상황이 더 나아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사자가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인데 바로 그것이 중요한 점이다. 바뀌기를 기대하기 힘든 주변 환경 대신 자신의 마음을 유연하게 함으로써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을 재빨리 극복하고 현실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조건에서 감사할 요소들을 먼저 찾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얻고, 바라던 바를 이루어내는 사례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감사의 힘을 발휘한 인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그중 한 명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이다. 그는 매 순간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시편을 보면 그가 하나님께 올린 감사제로 가득하다. 한 편의 시에 수십 번이나 감사를 아뢰기도 했다. 그의 감사에는 하나님께서 모세 시대에 홍해를 가르신 것이나, 가나안 땅에 거하던 민족들의 왕들을 멸하신 것 등 자신에게 일어난 일도 아닌, 옛적 선조 때의 역사까지 포함되어 있다(시 136편 13~20절). 거기에 더해 그 내용들을 낱낱이 쪼개어 일일이 감사를 올릴 정도였으니, 그가 왜 하나님께 ‘내 마음에 합한 사람’(행 13장 22절)이라는 칭함을 얻을 정도로 많은 사랑과 축복을 받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한 촌에서 열 명의 병자를 고치실 때에도, 그중 나음을 받고 예수님께 감사드렸던 한 사람만이 구원의 축복을 받았다(눅 17장 11~19절). 이처럼 진심으로 전했을 때에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와 엄청난 선물을 안겨주는 것이 감사의 힘이다.

‘감사’를 잊으면 원망과 불평이 깃든다

사람들이 이러한 감사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가도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산수가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헤아리는 것이다’는 격언은 사람들이 각자에게 허락된 축복을 소홀하게 여기는 경향을 꼬집은 표현이라 하겠다.

감사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인간의 심리를 관찰하기 위해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는 매일 아침, 한 마을을 지나면서 집집마다 만 원씩을 놓고 갔다. 며칠 동안은 그의 행동을 의아해 하면서도 고마워하던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자 응당 있던 일로 여기고 당연한 듯이 돈을 받았다. 그러다 한 달 후, 그가 평소와는 달리 돈을 나눠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자 마을 사람들은 투덜대고 화를 냈다. 어느새 만 원을 받는 일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일삼다가 멸망 당했던 역사가 그것이다. 그들은 400년 동안 노예 생활하던 애굽에서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마침내 구원을 베푸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올렸다. 감사할 일들은 광야에서도 이어졌다. 출애굽한 지 한 달이 지나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식량이 다 떨어지자 하나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만나를 내려주셨던 것이다(출 16장).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품었던 감사의 마음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매번 같은 음식에 물린 그들은 곧 꿀 섞은 과자 같이 달콤하게 생각했던 만나를 박한 식물이라며 싫어했다(민 21장 5절). 또 목이 마르면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을 불평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인도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대적했다. 먹을 것이 없을 때에 하늘에서 비같이 내려주신 양식도, 물이 없을 때 반석을 쳐 내게 하신 물도, 사십 년의 거친 광야 생활 동안 해지지 않은 의복, 부르트지 아니한 발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당장 불편한 현실만을 괴로워하며 감사의 마음을 잊어버린 것이다. 결국 끊임없이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던 그들은 끝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인생들이 이 땅으로 쫓겨 내려오기 전, 하늘에서 지었던 죄 역시 감사치 못함에서 비롯되었다. 영원토록 헤아릴 수조차 없는 하늘의 영화로운 축복에 감사하지 못하고 품은 작은 불만의 씨앗이 엄청난 죄악의 역사로 커져 결국 하늘 영광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빈 자리는 무엇인가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감사를 잃어버린 곳에는 어김없이 불평과 원망이 자리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감사를 금세 잃어버리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욕심, 즉 자족할 줄 모르는 마음이다. 자신이 처한 여건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편하고 좋은 것만을 바라는 태도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박토처럼 마음에서 감사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슴을 훈훈케 하는 감사의 마음을 쉽게 잊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시킬 수 있을까.

미국의 한 연구팀이 그 방법을 연구하다가 한 가지 실험에 착수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로 하여금 하루하루 감사한 일을 발견하고 세어보게 했다. 참가자들은 인생에서 축복이라고 생각되는 세 가지를 매일 수첩에 적고, 그 축복이 왜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그 이유까지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6개월 동안 이어진 실험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6개월 전보다 훨씬 행복해졌다고 응답했다. 감사 연습을 통해 일상에서 지나쳐버린 소소한 행복들을 찾아내는 안목이 길러진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인 오프라 윈프리도 우리 주변에는 감사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다며 “그것들을 매일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부터 감사할 일을 찾아내는 습관을 들였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감사하는 태도를 몸에 익히는 것이 좋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론이다. 그런데 감사 연습에는 한 가지 반드시 숙지해야 할 사항이 있다. 남들과 비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감사의 반대 격인 불만은 ‘비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처지보다 더 좋아 보이는 이들과 자꾸 비교하다 보면 감사의 마음을 갖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비교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좋은 여건들, 감사할 요소들을 보다 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된다.

감사로 일으키는 복음의 기적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감사가 많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하는 시온이다. 시온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구원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에 늘 감사드린다. 세상에 난무하는 재앙 가운데서 항상 안전하게 지켜 보호하여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뛰어난 언변과 학식을 갖추지도 못한 우리를 택하시어 복음의 사명을 맡기시고 크나큰 하늘의 상급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해마지 않는다. 이러한 감사의 힘은 복음 안에서 더욱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다. 근래 현지 교회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복음의 역사가 그 예증이다. 어려운 여건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축복에 온전히 감사드리며 애발스럽게 복음을 전하니, 가는 곳곳마다 알곡열매들이 기쁨의 단으로 거두어지고 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감사의 마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현격하다. 같은 예배를 드리더라도 감사가 가득한 예배와 그렇지 않은 예배는 받는 감동이 다르고, 같은 봉사에 임하더라도 감사의 마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따라 행하는 모습과 받는 축복이 달라진다.

우리가 바라는 축복과, 기대하는 복음의 기적은 모든 일에 감사로 임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감사로 나아오는 자녀들에게 있어야 할 바 모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장 6~7절

‘감사’는 깨달음의 증거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쉽게 말하기에 앞서 한번쯤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인지를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즐겁지 않고 왠지 지쳐 있는 듯하다면 지금 마음 가운데 감사가 빠져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일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좋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기만 해도 감사할 일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날마다 마시는 신선한 공기, 따사로운 햇빛, 시원한 바람⋯.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허락하신 자연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 아침 내 심장이 뛰고 있고 거침없이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축복을 잃어버리고 난 후 그 가치를 깨닫기보다 다윗처럼 때때마다 범사에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보자. 감사로 하나님께 돌린 영광은 결국 자신의 것이 됨을 기억하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장 16~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