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미 떼가 과자 부스러기를 물고 질서 정연하게 행군한다. 마치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이는 듯 개미 행렬이 시작점과 도착점을 신속히 연결한다. 일사불란한 개미 떼의 움직임에 개미 몸집의 수십 배에 달하는 과자들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개미 한 마리만 놓고 보면 이리저리 산만하게 움직이다가 그저 앞을 가로막는 것을 어설프게 비켜 갈 뿐 그리 영리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개미들이 한데 모이면 단숨에 먹이를 모으는 능력을 보여주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뛰어난 수학자, 개미
다수의 개체가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지적 능력을 집단 지능1 이라고 하는데, 이는 개체의 지적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집단 지능에 대한 연구는 미국의 곤충학자 휠러가 개미들의 사회적 활동을 관찰하면서 시작됐다. 이제 뛰어난 수학 능력을 보여주는 개미들을 만나보자.
1.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 사회과학에서는 ‘집단 지성’ 또는 ‘협업 지성’으로도 쓰인다.
‘페르마의 원리’는 빛이 두 지점 사이를 이동할 때 최단 시간으로 갈 수 있는 경로를 따른다는 원리다. 뭍에 있는 구조대원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육지에서부터 물속까지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경로로 이동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개미도 페르마의 원리처럼 최단 시간의 경로로 이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의 한 연구팀이 바닥 재질이 일정 구간에서 달라지는 상자의 한쪽에 먹이를 놓고 한 무리의 개미를 넣어 실험했다. 처음에는 통일성 없어 보이던 개미의 이동 경로가 점점 페르마의 원리로 예측한 경로와 맞아떨어졌다. 먹이까지 가는 길에 바닥 재질이 바뀌면서 이동 속도가 달라지자, 개미 떼가 그에 맞게 경로를 최적화한 것이다.
개미는 이동하면서 페로몬을 남겨 다른 개체를 유인하는데, 페로몬이 짙을수록 더 많은 개미가 이끌린다. 처음에는 개미들이 무작위로 움직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개미가 지나간 가장 빠른 경로에 더욱 많은 페로몬이 남겨져 개미 떼의 이동 경로로 선택되었다.
개미가 사람처럼 페르마의 원리를 머리로 이해하고 최단 시간의 경로를 찾은 것은 아니다. 똑똑한 책략가나 지도자 없이도 개미 떼는 그저 페로몬을 따라가서 먹이를 찾는 단순한 규칙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개미 한 마리의 지능은 별것 아닐지 몰라도 무리를 이루면 이처럼 놀라운 일을 해낸다.
최상의 합의를 도출하는 꿀벌
늦은 봄, 꿀벌들은 늘어난 가족들로 집이 좁아져 분가를 준비한다. 먼저 정찰벌들이 거주지로 적합한 장소를 찾아 윙윙거리며 탐사에 나선다. 집을 짓기 알맞은 곳을 발견한 정찰벌들은 무리에게 돌아와 꼬리 부분을 부르르 떠는 행동을 한다. 자신이 발견한 후보지가 좋다고 추천하는 것이다.

이때, 정찰벌은 꼬리를 흔들며 짧게 앞으로 홱 나왔다가 8자 모양으로 돌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흡사 춤을 추는 것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이 율동은 꿀벌들만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처음 동작에서 앞으로 나오는 거리는 후보지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나타내며, 8자 모양을 그릴 때의 각도는 그곳의 방향을 가리킨다.
정찰벌의 춤을 본 다른 벌들은 이들이 추천한 장소로 날아가 시찰한다. 시찰 후 장소가 맘에 들면 무리에게 돌아와 이를 지지하는 춤을 춘다. 다른 벌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정찰벌은 더는 춤을 추지 않는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다.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점점 더 많은 벌들이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되고, 가장 많은 벌들의 동의를 얻은 최상의 장소가 거주지로 선택된다.
최고의 건축가, 흰개미
아프리카 초원에서는 3미터가 넘는 기괴한 모양의 탑들이 우뚝 솟은 것을 볼 수 있다. 누가 이런 거대한 조형물을 초원 한가운데 세워놓았을까 싶지만 놀랍게도 이 웅장한 탑의 건축가는 바로 흰개미들이다. 몸길이가 5밀리미터에 지나지 않는 흰개미가 3미터가 넘는 집을 짓는 것은 사람이 일천 미터가 넘는 고층건물을 짓는 것에 비견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이 830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흰개미들의 능력은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견고한 기둥처럼 원뿔 모양으로 서 있는 흰개미 집은 복잡하게 얽힌 많은 통로들이 집 표면의 구멍을 통해 바깥과 연결되어 있다. 지하에는 애벌레를 기르는 육아실, 버섯 재배 온실, 식량 창고 등 수많은 방들이 기다란 터널로 연결된 거대한 보금자리가 있다.
흰개미들은 소화에 도움이 되는 버섯을 길러 먹는데, 버섯 재배를 위한 퇴비가 수십만 마리의 흰개미들과 더불어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와 열을 내뿜는다. 게다가 흰개미는 연약한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건조한 사막 기후에서도 습한 환경이 필요하다.
이처럼 환경이 열악한 사막에서 흰개미들이 살 수 있는 이유는 높이 쌓아 올린 집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환기 시스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집 위쪽으로 이동해 빠져나가고, 바깥의 차가운 바람이 집의 아래쪽 구멍으로 들어와 다시 뜨거운 공기를 위로 밀어 올리는 식이다. 효율성이 높은 흰개미 집의 구조는 어떤 기후에서도 섭씨 27도, 습도 60퍼센트를 유지한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는 흰개미 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도 적절한 온습도를 유지하도록 만들어졌다. 효과는 훌륭했다. 아프리카의 한여름 날씨에도 냉방 장치 없이 섭씨 25도 이하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다, 사용되는 전력량도 동일 규모 건물의 10퍼센트 수준이다.
지능이 거의 제로에 가깝고 시력도 없다시피 한 자그마한 곤충에게 참고할 건축 설계도나 과학적 지식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저 서로 협력하여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것만으로 흰개미 집단이 자신들의 생존에 최적의 집을 쌓아 올린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곤충의 집단 지능을 모방해, 과학자들은 고도로 복잡한 한 대의 로봇이 아닌 작고 단순한 다수의 로봇들이 협동하여 움직이는 형태의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는 혈관 속을 움직이는 나노 로봇이나 재난 구조 현장에 투입되는 로봇 등에 활용될 전망이다. 최단 시간의 길을 찾아내는 개미 떼의 탁월한 능력을 본떠 만든 소프트웨어가 교통 통제, 이동 경로 탐색, 통신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예측하여 최적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작고 보잘것없는 곤충들이 무리를 통솔하는 지도자 없이도 서로 협력하여 만들어낸 월등한 능력, 집단 지능. 이는 작고 여린 생명들을 위해 하늘이 허락한 축복이 아닐까.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장 6~8절
- 참고
- 『스마트 스웜』(피터 밀러 著)
- 고호관, ‘개미가 페르마의 원리를 안다고?’, 과학동아(2013년 7월호)
- 이인식, ‘개미, 벌, 물고기의 ‘떼지능’이 미래 세상 바꾼다’, 중앙선데이(2013.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