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엿비 너겨

1428년(세종 10년),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을 보고받은 세종은 “이제 아버지를 죽이는 자까지 나왔으니 이는 분명 나의 덕이 부족해서다”라며 크게 자책했다.
법대로 죄인을 처단한 뒤 신하들은 패륜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면 형벌이 더 엄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세종의 생각은 달랐다. 무조건 잘못을 단죄하기보다 백성들이 선한 교훈을 깨달아 악행을 멀리하도록 하는 것이 먼저라고 여겼다. 이에 모범이 될 만한 사례들을 추려 교훈서를 제작하도록 명했다.
책은, 글을 읽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그림까지 그려 넣어 발간됐다. 바로 《삼강행실도》다. 그렇지만 그림만으로 책에 담긴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세종은 아쉬운 대로 각 관아를 통해 책의 내용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려 애를 썼다. 그러면서 마음에 품고 있던,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우리나라 글자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이 지난 1443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이 세상에 나왔다. 신분, 직업, 빈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열흘이면 깨칠 수 있는 쉬운 표기법이었다. 백성들은 막대기, 호미, 돌멩이, 사금파리를 붓 삼고 땅을 종이 삼아 너도나도 새로운 문자를 배웠다. 훈민정음 서문의 ‘어엿비 너겨(불쌍히 생각하여)’라는 말에 압축된 세종의 측은지심이 온 백성의 눈과 귀를 밝혔다.
우리는 하늘에서 패역한 죄를 짓고 이 땅으로 쫓겨 내려온 죄인이다. 죄의 값이 사망이라 하신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천상에서 지은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롬 6장 23절).
엄중한 하늘의 법도대로라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예정된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단죄보다 용서와 자비를 앞세우셨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살리시려 천사보다 못한 모습으로 두 번이나 이 세상에 친히 오셔서 새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 새 언약은 하나님 백성들의 영적 눈과 귀를 열어 구원의 진리를 깨우쳐 백성들을 죄악과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는 생명의 법도다.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이 구원을 받길 원하신다(딤전 2장 4절). 지금 이 순간까지 자녀들과 함께하시며 천국 가는 길을 밝히시는 어머니 하나님께서 선한 길, 생명의 길로 오라 하신다. 듣는 자, 목마른 자, 원하는 자 누구라도 오기를 바라신다. 인생들을 너무나도 어엿비 여기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