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자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마을로 보내신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그곳에 아무도 탄 적 없는 새끼 나귀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끌고 오너라. 누가 왜 그러느냐고 묻거든 주가 쓰신다고 하여라. 그리하면 즉시 내어줄 것이다.”
제자들이 마을에 들어가니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새끼 나귀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다. 제자들이 나귀를 끌고 가려고 줄을 풀자 근처에 서있던 사람들 중 어떤 이가 묻는다.
“그것을 왜 푸시오?”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제자들의 대답에 주인이 순순히 나귀를 내어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끌고 온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받으실 때가 가까웠음을 아시고 제자들을 시켜 새끼 나귀를 당신에게로 끌고 오게 하셨다. 이는 구원을 베풀 왕이 예루살렘에 임하실 때 새끼 나귀를 타실 것이라는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슥 9장 9절)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힘없는 나귀도, 주가 쓰시겠다는 말에 기꺼이 나귀를 내어준 평범한 나귀 주인도 예언을 성취하는 일에 쓰임받은 것이다.
우리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마 24장 14절)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다. 지극히 평범한 존재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성경 예언 속에서 복음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감당키 어려운 축복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도구가 되도록 더 겸손히, 순종으로 행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