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웁니다

한국 서울, 최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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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들 하나, 딸 셋을 홀로 키우셨습니다. 새벽이면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궤짝으로 사 와 동네에서 소매로 파는 등, 엄마는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셨습니다.

엄마는 늘 밤늦게 들어오셨기에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살림을 도맡아 하며 저와 동생을 돌봤습니다. 언니들의 잔심부름은 동생 차지여서 셋째인 저는 딱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활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느낄 새 없이 놀기만 했지요.

언젠가 엄마가 저를 부르시더니 다리가 아프다고, 좀 주물러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귀찮아서 주무르는 시늉만 하다 말았습니다. 엄마가 벌써 끝났느냐며 조금 더 주물러달라고 하셨지만 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대충 주무르다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며칠 뒤, 엄마가 또다시 저를 불러 다리 좀 주물러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온갖 짜증을 내며 나도 힘들어서 못 한다 하고는 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후로 엄마는 다리 주물러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공병으로 다리를 문지르거나 다리를 바닥에 부딪쳐 가며 혼자서 뭉친 다리를 푸셨지요.

제가 엄마 나이가 되니 저 역시 다리가 잘 부어서, 오래 서 있는 날이면 밤에 편히 잘 수 없습니다. 그럴 땐 남편이나 아이들을 불러 다리를 주물러달라고 합니다. 하루는 중학생 아들이 제 다리를 정성껏 주무르는 모습에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아팠구나, 나보다 더 힘드셨겠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다리 한번 시원하게 주물러드리지 못했던 것이 너무 죄송했습니다.

얼마 전, 무릎 연골 수술을 받으신 엄마의 두 다리를 가만히 만지며 옛날 얘기를 꺼냈습니다. 엄마는 네가 그랬느냐며, 기억도 안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작은 손으로나마 엄마의 굳은 다리를 주물러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엄마는 잊었다 말씀하시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여서 그랬다 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그 가슴 아픈 기억을 저는 잊을 수 없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