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보, 이 커피잔 너무 예쁘지 않아요? 오늘 할인하기에 샀어요.”
“커피잔이 몇 개나 있는데 또 샀어? 당신 과소비가 너무 심한 것 같아.”
“커피잔은 여러 개 있지만 이런 디자인은 없잖아요. 비싼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비싸든 안 비싸든 굳이 사야 할 이유가 없는데 사니까 그렇지.”
“누가 들으면 내가 생활비를 펑펑 쓰는 줄 알겠네요.”
“그게 아니라⋯.”
“됐어요. 그만 얘기해요.”
아내는 나름대로 살림을 알뜰하게 꾸리려 노력 중이었다. 할인하는 물건도 꼼꼼하게 따져서 사는 편인데 평소 갖고 싶었던 커피잔을 할인가로 사서 기분이 좋았다. 남편과 새 커피잔으로 차를 마실 생각에 은근히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대뜸 충고를 하니 기분이 확 상했다.
남편도 그렇게 말한 이유는 있었다. 새 잔에 마신다고 커피 맛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집에 커피잔이 이미 여러 개 있는데 아내가 커피잔을 또 샀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빚도 갚고 아이들 학비도 대려면 생활비를 아껴도 모자랄 판에 아내가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것 같았다. 가정경제를 위해 이참에 충고해줘야겠다 싶었다. 아내를 기분 나쁘게 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자신의 말이 옳다고 여겼기에 아내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서로 간에 불편함을 남기고 말았다.
꿀도 약이라면 쓰다
살다 보면 종종 다른 사람의 잘못된 언행,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관여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만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이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충고해줘야 직성이 풀리곤 한다. 가족은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이기에, 가족을 위해서라도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치도록 말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을 위해 말해줬는데 상대방은 고마워하며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화를 내거나 서운해한다. 급기야 감정의 골이 깊어져 대화가 단절되기도 한다. 그러면 충고한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내가 틀린 말 했나?’, ‘내가 아니면 누가 말해주겠어?’, ‘기껏 생각해서 말해줬더니’, ‘저리 속이 좁아서야’ ⋯.
그렇다면 타인의 충고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진정 옹졸한 것일까? 충고란 남의 결함이나 잘못을 진심으로 타이르는 것을 말한다. 충고는 잘하면 상대의 단점을 고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훌륭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꿀도 약이라면 쓰다’는 속담처럼, 자기에게 이롭고 도움이 되는 말이라도 충고와 지적은 듣기 싫어한다. 한마디 충고 때문에 공들여 쌓아온 유대관계가 한번에 무너지는가 하면, “제가 잘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아낌없이 충고해주세요” 하고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조차 막상 충고를 들으면 언짢아한다.
좋은 뜻으로 말했는데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이 닫힌다면 문제는 ‘방법’이다. 상대방이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충고하는 사람의 말이 옳고 그름보다는 배려가 부족해서다. 때로는 충고라는 명목으로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비난과 질책을 쏟아내기도 한다. 상대방의 언행이 거슬려 순간적으로 내뱉거나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혀 쏘아붙이는 말 등은 진정한 충고라 할 수 없다. 더구나 그런 비난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배려 없는 충고는 비난에 불과
설령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된 것이 자명하다 하더라도 비난조로 나무라거나 직설적으로 지적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는 방어기제가 작용하므로 상대가 옳은 말을 해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을 뿐 아니라 반발심만 커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충고나 조언의 목적은 옳은 말로 상대가 틀렸음을 알게 하고 자신이 우위에 서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된 방향을 돌려 바른길로 가게 하는 데 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이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수긍하고 고치게 하려면 반드시 진심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충고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진심 어린 애정이 마음 바탕에 깔려 있을 때라야 할 수 있다. 정말로 상대방을 염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 해도 충고는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쉬운 예민한 문제이므로 어느 때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형제 사이에 잘못이 있으면 서로 말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제자가 물었을 때 퇴계 이황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선 나의 성의를 다해 상대방이 감동하게 하여라. 그다음에야 비로소 서로 간의 의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성의 없이 대뜸 나무라기만 한다면 사이가 소원해진다.”
퇴계의 말처럼, 충고를 하려면 상대방이 나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따듯한 마음으로 배려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말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상하지 않을지 신중히 고민하고 좋은 분위기를 조성한 뒤 일대일로 해야 한다. 직언을 하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는 금물. 마무리는 반드시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어야 한다. 시의적절한 충고는 약이 되나, 강요로 비치면 독이 될 수 있다. 충고를 하는 건 내 몫이지만 받아들이는 건 상대의 몫이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배척하거나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필요한 말을 하되, 상대방을 원수로 만들지는 않는다. 옳은 말이라도 덕스럽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 주지 않고 충고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충고(忠告)는 한자로 ‘진심으로(忠) 타이른다(告)’는 뜻인데 ‘충(忠)’ 자에는 ‘정성을 다하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쉽게 내뱉는 충고는 진정한 충고가 아니다. 어려운 일이기에 그만큼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충고보다 좋은 충고
공자는 ‘임금을 섬기는 데 간언이 잦으면 욕을 보게 되고 친구와 사귀는 데 조언이 잦으면 사이가 멀어진다’고 했다. 상대방을 생각해서 해주는 진지한 충고라도 반복되면 잔소리가 된다. 충고는 그 과정도 신중해야 하지만 충고를 꼭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일도 신중히 해야 한다. 상대방이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상대방에게 말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자격이 있다 해도 상대방의 결함을 결함이라 판단할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일도 나의 관점에서 내린 판단일 뿐,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에게 바른말 해주는 일도 중요하나 그보다 중요한 일은 따뜻하게 보듬는 것이다. 상대가 잘못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이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개인적인 경험과 사연이 다르기에, 나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상대방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을 칭찬해주는 사람을 좋아하지, 충고하고 지적하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에 대해 전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설프게 충고하거나 나의 뜻대로 상대방을 움직이려 하면 반감만 산다. 상대가 고민거리를 털어놓더라도 충고나 조언 대신 귀 기울여 들어주고 격려해주는 편이 낫다.

가족이 잘못한 일에 대해 충고하기보다 잘하고 있는 부분을 칭찬하며 묵묵히 지켜보고 지지해주자. 서두에 남편과 아내의 대화에서, 남편이 새로 산 커피잔을 보며 “역시 당신 안목은 알아줘야 해” 또는 “당신이 탄 커피는 어떤 잔에 마셔도 맛있어”라고 말했다면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내가 생활비를 좀 아꼈으면 하는 바람은 나중에 적당한 기회에 말해도 늦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는 입장에 놓이면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인 듯한 느낌이 들어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할 수 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그대로 100% 실천하지 못한다. 늘 현명하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상황과 기분에 따라 이치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서도 이런저런 이유와 근거를 대며 자신을 정당화할 때도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부족한 점은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의 부족한 점은 크게 본다.
가장 좋은 충고는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스스로의 태도나 삶이 말과 다르면 듣는 사람이 따를 리 없다. 긍정적이고 올바른 삶을 사는 모습은 그 자체로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 변화를 이끌어낸다.
‘우문선언즉배(禹聞善言則拜)’, 중국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신하가 교훈이 될 만한 좋은 말을 아뢰면 절하여 사례하고 이를 받아들였다는 고사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족과 타인으로부터 조언과 충고를 듣게 마련이다. 충고를 들으면 우 임금처럼 기꺼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비록 충고하는 사람의 표현 방식이 서툴더라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잘못에 대해 말해준다면 고마워할 일이다. 충고를 듣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나의 잘못된 언행과 습관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충고는 하는 일도, 받아들이는 일도 어렵다. 두 가지 모두 자신을 낮추었을 때라야 제대로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소중한 가족에게 상처 주는 일도, 받는 일도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