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V.org is provided in English. Would you like to change to English?

가는 세월 막을 수 없다면 즐겁게!

나이가 들어도 몸은 늙지 않는 것이 축복일까? 몸은 늙어도 마음이 무르익어 가는 것이 축복이다.

조회 12,565

연말이 되면 “또 나이 한 살 더 먹겠구나!” 하고 푸념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곤 한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하면서도 늙는 것은 싫어한다. 나이가 들면 육체적으로 쇠퇴하고 한정된 수명이 그만큼 짧아지므로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365일을 지나면 한 살이라는 나이를 먹고 그만큼 육신은 늙는다. 팽이처럼 돌아가는 지구에 몸을 싣고 있을 뿐인데 노화라는 현상이 일어나니, 어찌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노화의 원인을 설명하는 학설은 많다. 신체의 세포 중 일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모되어 결국 세포분열이 멈추게 된다는 마모 이론, 인간의 DNA 속에는 태어나서 늙어가는 과정이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는 유전자 조절 이론, 신체의 특정 호르몬 분비가 감소되어 신체 기능이 떨어진다는 신경 호르몬 이론 등.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나이 들기 전에는 젊음이 영원한 줄 안다. 노화는 남의 얘기일 뿐, 이가 부실해 고기를 씹지 못한다거나, 위장이 약해 맵고 짠 음식을 먹지 못한다거나, 날씨가 흐리면 관절이 쑤신다는 말 등은 와닿지도, 공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이를 먹는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다.

노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 가상의 하루를 살아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출연자들은 노인으로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는 순간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고 만다. 깊게 팬 주름, 짙은 검버섯, 희끗희끗한 머리⋯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자신의 모습이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20대 이상 성인 1,251명을 대상으로 물었다. ‘나이 들었음을 스스로 체감할 때는 언제인가?’ 2위부터 5위는 유행어, 신조어 등을 못 알아들을 때(40%), 교복 입은 학생을 보고 좋을 때라고 생각할 때(28.6%),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생각해 보고 대답할 때(21%), 거울 볼 때(20.3%)였고, 1위는 아무리 푹 쉬어도 피곤하다 느낄 때(51.4%)로 나타났다.

이처럼 나이가 들면 겉모습은 바뀌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게 된다. 늙는 것을 피하려 약물 복용과 수술을 서슴없이 감행하는 이들도 많다. 육체의 외모와 젊음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을 ‘도리안 그레이 증후군’이라 한다. 이는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유래되었는데, 소설 속 주인공 도리안은 영원히 늙지 않는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을 부러워하다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만다.

100세 시대,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노년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노년은 무거운 짐이 아닌, 적극적으로 개척해야 할 인생의 중요한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창 때 생기 있던 모습도 내 모습이지만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모습도 내 모습이다. 여름날의 푸릇푸릇하고 싱그러운 나뭇잎도 좋지만 붉은색으로 물든 가을날의 단풍잎도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 눈가 주름살 걱정에 제대로 웃지도 못하는 사람과 ‘나이 들면 주름살 생기는 건 당연하니 많이 웃어야지’ 하는 사람 중 누가 더 건강하고 행복할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듯, 가는 세월 막을 수 없다면 즐겁게 받아들이자.

꿈을 가진 사람은 늙지 않는다

성공한 삶을 살다 65세에 당당히 은퇴한 어느 박사가 퇴직 후 30년이 지난 95세 생일에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퇴직과 함께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덤이다’라는 생각에 시간을 의미 없이 보냈기 때문이다. 95세 인생 중 퇴직 이후의 30년이라는 세월은 인생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었다. 뼈저리게 후회한 박사는 10년 후 맞이할 105세 생일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어학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UN에서 재정립한 평생 연령 기준에 의하면 노년기는 80세부터 시작, 66세~79세는 중년, 18세~65세는 청년으로 분류된다. 65세에 은퇴한다 해도 노년기가 되려면 아직 한참 먼 셈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아들러는 나이 들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자각하면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열등감에 시달리기 쉽다고 말했다. ‘이 나이에 뭘 하겠어?’라는 절망감보다는 ‘내 나이가 어때서?’ 하는 당당함이 백배 낫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발산한 이들이 있다. 63세의 나이로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을 기록한 김명준 씨, 60세가 넘어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사업을 시작해 대박을 터뜨린 할랜드 샌더스, 70세에 대통령에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두 눈이 실명된 상태에서 59세에 ‘실낙원’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존 밀턴, 현재 93세의 나이로 전설적인 투자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워런 버핏⋯.

누군가 꿈을 잃는 순간 늙는다고 했다. 연령대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과 언행은 자칫 눈살을 찌푸리게 하므로 나이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으나, 꿈에는 나이가 없다. 사도 중의 사도라 불리는 바울은 천국 향한 꿈을 좇아가며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다’고 했다.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젊은 날인 오늘, 날마다 맞이하는 오늘에 꿈을 싣자.

나이와 함께 무르익기

나이가 들면 잃는 것이 많은 것 같지만 좋은 점도 많다. “지하철 요금을 안 내도 된다”, “부끄러움을 덜 타게 된다”, “보험에 가입하라는 강요를 받지 않는다” ⋯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이런 이유들뿐만이 아니다.

나이 들어 좋은 점은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는 것과 연륜이 쌓여가는 것이 아닐까. 시력은 나빠져도 마음의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 작은 일에 조급해하며 쉽게 분노하고 좌절하던 사람도 나이 들어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느긋하고 너그러워졌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또, 나이 든 사람일수록 곤경에 처하더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해 힘든 상황을 의연하게 잘 대처한다고 한다.

아프리카에는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고, 중국에는 늙은 말이 길을 잘 찾아간다는 뜻의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가 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터득한 노인의 경험과 지혜가 매우 귀하다는 뜻이다. 인스턴트 음식이 진득한 시간 속에 숙성·발효된 장(醬)의 깊은 맛을 결코 흉내 낼 수 없듯, 나이가 들어서 얻게 되는 지혜와 연륜은 젊은이의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고 지혜와 연륜이 저절로 쌓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조건 대접받으려 하거나 경험을 앞세워 자기주장만 고집하면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옹졸한 사람이 되고 만다. 관용과 배려로 타인을 대하며 늘 배우는 마음자세로 자신을 되돌아볼 때, 세상을 보는 안목은 더욱 깊어지고 다른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는 덕스러운 사람이 된다.

공자는 40세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하여 ‘불혹(不惑)’이라 했고, 50세를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地天命)’이라 했다. 60세가 되면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깨달아 알 수 있다 하여 ‘이순(耳順)’, 70세는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에 어긋남이 없는 나이 ‘종심(從心)’이라 했다. 오곡백과가 세찬 바람과 뙤약볕을 견디며 무르익는 것처럼, 세상 풍파 속에 연단 받으며 내면을 채워가는 사람에게는 늙는다는 말보다 무르익어 간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10대 때는 시간이 시속 10km로, 30대에는 30km로, 50대에는 50km로 흐른다고들 한다. 이에 대해 컵에 있는 주스를 마실 때 양이 적게 남을수록 주스가 빨리 없어진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7세 아이에게 1년은 인생의 1/7을 차지하지만 나이가 50세인 사람에게 1년은 1/50에 불과하기에 갈수록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것이라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돌아보면 한순간 꿈과 같은 인생. 나이 들고 늙는 것은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나이 드느냐’이다. 살아 숨 쉬는 한 결코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도 되는 시간은 없다. 남은 인생이나 덤으로 주어지는 삶도 없다. 나이 들었다 푸념하며 시들어버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나날이 성숙하고 무르익어 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