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소비의 시대다. 홈쇼핑에서는 ‘매진 임박’, ‘선착순 한정 수량’ 등의 문구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집에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까딱하면 원하는 물건이 배송되어 오는 데다, 밥값보다 비싼 테이크아웃 커피쯤은 마셔줘야 폼이 난다니, 여기저기서 부추기는 소비의 유혹에 돈을 안 쓰고는 못 배기는 세상이다.
그렇다고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며 살 수는 없다. 소비 욕구를 마음껏 충족한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가정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경제적인 가치관 차이로 인한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헤픈 씀씀이로 인한 생활고, 파산 등의 상황에 이르게 되면 가정의 행복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가족 간 대화가 부족하거나, 재정을 어느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관리하며 공개하지 않는 경우 위와 같은 형편에 놓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가정의 재정 상태가 어떠한지, 소비지출은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가족이 함께 공유하고 신뢰할 수 있을 때 가정 경제는 순조롭게 흘러가고, 가족 간에 한배를 탔다는 공동체 의식도 단단해진다.
돈으로 인한 부부 싸움 줄이는 법, 대화
2013년 취업포털 커리어가 기혼 직장인 27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부 싸움의 원인 1위가 ‘경제적 문제(25.5%)’였다. 부부가 돈 때문에 다투는 이유는 수입이 적어서라기보다 서로 경제관념이 달라서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남편은 저축하는 것을 좋아하고 아내는 돈 쓰는 것을 좋아한다면, 남편은 집에 새로운 물건이 보일 때마다 불만이 생길 것이고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이 쌓일 것이다. 경제관념이 엇갈려 다툼이 일어날 땐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자라온 환경과 개인적 성향을 존중하며 대화와 노력으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경제권은 남편이든 아내든 알뜰하게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가지되, 경제권을 가졌다고 해서 혹은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로 권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경제권을 가진 사람은 정기적으로 배우자에게 가계 내역을 알려주고, 많은 금액을 지출할 일이 있거나 고가의 물품을 구입할 땐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 경조사비, 병원비, 명절 또는 집안 행사 비용 등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지출이 빈번하게 발생하니, 부부가 미리 의논하여 예비비를 마련해 놓으면 갑작스러운 지출에 대비할 수 있다. 또, 지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지출을 줄일 방법은 없는지 함께 모색해 보고 계획적으로 지출하는 등 경제적인 문제를 충분한 대화로 풀어가면 가족 간 소통도 원활해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일로 가정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를 가정해 대화를 나눠본다거나 돈 문제로 힘들었던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부부가 함께 장을 보러 가서 시장 물가를 파악해 보는 것도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된다. 단, 가계 상황과 금전적인 성향에 대해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좋지만 어느 한 사람이 예민해져 있거나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에서는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좋다.
아이의 경제관념은 어릴 때부터
아이가 서너 살이 되면 돈이 뭔가를 살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쯤은 안다. 아이의 경제관념은 그때부터 올바르게 심어주어야 한다. 경제관념은 성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절제하고 분별 있게 소비하는 습관은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주지만 원하는 것을 다 갖는 것이 생활화되면 조금만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도 견디기 힘들어진다. 자신은 안 먹고 안 쓰더라도 자식만큼은 기죽지 않고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도 지나치면 왜곡된 애정표현으로, 아이가 건전한 소비의식을 갖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이는 부모가 의식하지 못한 채 하는 행동도 그대로 보고 배운다. 부모가 돈을 지나치게 중요시한다면 아이는 돈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요, 돈으로 타인을 판단하거나 보이지 않는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을 본다면 아이도 은연중에 따라 하게 될 것이다. 돈은 언제든 부모님 지갑만 열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가 힘들게 일해서 벌어 온 결과물이라는 것, 누구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 갖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하는 법, 소비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내용 등을 조목조목 알려주며, 부모가 이성적으로 의논하고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가 갖고 싶은 것을 사 달라고 떼를 쓸 땐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갖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주며 이해시켜주자. “이 장난감 자동차가 집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니?” “이것을 사면 네가 원하던 다른 것은 사줄 수 없어” 하고 대화를 시도하며, 미리 적어간 목록 이외의 물품은 구매하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는 본을 보이자. 쇼핑은 필요에 의한 행위이지, 보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유념하자.
가정 경제는 부모가 이끌어가니 아이들은 몰라도 된다 생각하지 말고, 대략적인 내용은 공유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이들도 자신의 욕구보다 가족 전체를 생각하는 안목을 갖게 되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소속감도 높아진다.
알뜰한 소비 습관으로 가정 경제를 튼튼하게
소비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과소비와 충동구매다. 과소비는 단순히 명품 가방, 고급 자동차를 사는 것을 일컫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소비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는 것, 덜 필요한 데 소비함으로써 정작 필요할 때 소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노동의 대가로 번 돈을 가치 있게 쓸 줄 안다. 가계 규모에 맞는 알뜰한 소비 습관을 갖기까지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로 소소한 행복도 느낄 수 있다.
- 알뜰 소비 노하우
- 1. 가계부 쓰기
- 가계부를 꾸준히 쓰면 가정 경제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쓸데없이 낭비되는 지출을 발견할 수 있다. 쓰기 어렵거나 번거로우면 잘 안 쓰게 되므로 작성이 편리한 휴대폰 앱을 사용하는 것도 좋다.
- 2. 현금 사용하기
- 신용카드는 지출이 곧바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과소비를 조장한다. 또한 부모가 카드를 자주 사용하면 아이는 돈을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우므로 현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교육상으로도 좋다.
- 3. 싸다고 사지 않기
-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사려고 계획한 것도 아닌데 싸다고 일단 샀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 ‘1+1판매’, ‘묶음행사’라고 덥석 사지 말고 내게 꼭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해보자.
- 4. 지갑을 열기 전에 체크하기
- 더 싸게 살 방법은 없는지,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집에 있지는 않은지, 이것이 없이도 지금껏 불편 없이 살았는데 왜 꼭 사야 하는지, 정해진 예산 안에서 살 수 있는지 등을 따져보자.
- 5. 쇼핑 시간·횟수 줄이기
- 장을 볼 때는 사야 할 물건을 미리 적어서 가고, 목록에 있는 물건만 사고 돌아오자. 구매 계획이 없다면 홈쇼핑 시청과 온라인 쇼핑몰 접속을 자제하고, 대형마트나 쇼핑매장을 가족 나들이 장소로 삼지 말자.
- 6.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기
- 대량으로 사면 싸기 때문에 합리적일 것 같지만, 많은 양이 비축되어 있으면 아끼지 않고 사용하게 되고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경우까지 생겨, 결과적으로는 과소비가 될 수도 있다.
- 7. 유행 따라가지 않기
- 유행 따라 산 옷은 오래 못 입는다. 옷을 살 때는 앞으로 활용도가 얼마나 높을지를 생각하고, 유행보다는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자.
돈에 너무 욕심을 부리거나 허투루 사용하여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돈이 삶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가정 경제의 틀 안에서 필요에 의해 쓰여야지, 그것에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돈에 지배받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족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닐까.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고 배우자를 타박하지 말고, 반찬이 없으면 밥이라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자동차가 없으면 걸으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림을 규모 있게 꾸려나가자. 그러면 행복은 가득, 가정 경제도 ‘맑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