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누린 호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김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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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릴 적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대략 열 살 때였어요. 학교를 오가며 자주 다니는 거리에 화장품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가게 밖에는 매니큐어가 수북이 쌓인 바구니가 노상 나와 있었습니다.

하루는 두 살 어린 여동생과 화장품 가게 앞을 지나다 매니큐어 바구니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알록달록 빛깔 고운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들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요. 손톱을 한 번도 칠해본 적 없는 저는, 친구들이 이따금 색칠한 손톱을 자랑할 때면 내심 부러웠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저도 모르게 바구니에 있는 매니큐어 하나를 재빨리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때, 점원이 오랫동안 가게 앞에 있는 우리를 수상쩍게 여기며 가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눈치 빠른 동생은 제가 슬쩍한 매니큐어를 얼른 제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동생에게 창피한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동생이 그 일을 엄마에게 낱낱이 고하는 바람에 꾸중을 들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 갔다 집에 오니 엄마가 현관에서 반갑게 맞으며 두 손을 뒤로 숨긴 채 말씀하셨습니다.

“엄마가 선물 사 왔다!”

엄마가 손을 펴서 보여준 것은 바로, 매니큐어였습니다. 시원한 바다색에 반짝이는 별 모양 조각이 뿌려진 매니큐어를 갖게 된 저는 방방 뛰며 기뻐했지요.

20년이 흐른 지금, 그 일을 떠올리면 엄마께 참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엄마는 가게 물건을 훔친 철없는 딸을 나무라시고서는 내심 안쓰러우셨나 봅니다. 그깟 매니큐어 없어도 그만인데, 마음에 걸려 당장에 가서 사 오신 것을 보면요. 없는 살림에 자식 키우며 살기 바빠 당신 손에도 바르지 못한 매니큐어는, 그렇게 저의 작은 손을 호사스럽게 빛내주었습니다. 그 애틋한 사랑에 감사하며, 다음 만날 때 엄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