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부모님, 이제는 사랑을 드려야 할 때

자녀의 진정 어린 사랑이 연로한 부모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조회 4,255

어린 자녀에게 부모는 그야말로 큰 나무와도 같다. 비가 쏟아지고 강풍이 몰아쳐도 끄떡없는 나무. 자녀는 그 나무가 주는 양식을 먹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마음껏 뛰놀며 곤히 잠든다. 그러다 장성하면 나무를 떠나 살아간다. 언제까지나 푸르고 건실할 것 같던 나무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다. 태어나 일 년이 지나야 겨우 걸을 수 있고, 삼 년은 지나야 기저귀를 뗀다. 스스로 벌어 먹고살기까지는 근 이십 년이 걸린다. 그렇게 부모는 젊음을 바쳐 자녀를 키워낸다.

자녀들은 세상에 늙고 병든 노인은 많아도 부모만큼은 평생 안 아프고 안 늙을 줄 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부모 속을 썩일 때면 들었던 말대로 자신을 쏙 빼닮은 자식 낳아 속 썩는 일을 수없이 겪고 나서야 부모의 마음을 깨닫지만, 그즈음이면 부모는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팬 노인이 되어 있다.

부모가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자녀로서 마음 아프고 서글픈 일이다. 그렇다고 세월을 되돌려 자신을 키워준 나무를 다시 푸릇푸릇하게 만들 수도 없는 일.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앙상해진 나무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뿐이다. 바야흐로 그동안 받았던 끝없는 사랑을 갚아야 할 때다.

노년기 특성 이해하기

노년기에 겪는 고통은 크게 네 가지다. 수입 감소로 인한 ‘빈곤’, 건강 악화에 따른 ‘질병’,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을 상실하는 ‘무위(無爲)’, 이 같은 문제가 상호작용하여 일으키는 ‘고독’이다. 이러한 고통은 노화현상과 관련이 깊다.

나이가 들면 인체 조직의 퇴화로 흰머리, 주름살, 검버섯 등이 생기면서 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특히 시각, 청각, 미각 등 감각기관의 이상이 두드러진다. 노화가 오면 눈이 흐려져 작은 글씨를 보기 어렵고, 계단이나 경사진 곳을 오르내릴 때 넘어질 위험이 커진다. 난청이 생겨 작은 소리를 못 알아들으며 귀가 어두워지는 만큼 목소리는 커진다.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여러 명과 대화할 때 정확히 알아듣지 못해 약속을 못 지키는 경우도 생긴다. 미각이 둔해지면서 음식을 달고 짜게 먹고, 쓰고 매운 음식은 기피한다. 식욕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폐활량이 감소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운동 능력도 떨어지며, 그와 함께 면역체계도 약화돼 각종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 골격근이 감소해 넘어지면 골절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고, 치아 상태가 나빠지며 소화장애를 겪는 일도 늘어난다.

사람이 생각하고 움직이도록 명령하는 중앙제어장치인 뇌 역시 나이가 들면 퇴화한다. 이로 인해 두뇌 기능이 저하되고 기억력과 집중력, 인지능력이 감퇴한다. 깜빡하는 경우가 잦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나 편리한 무인기기가 속속 등장하는 이 디지털 시대가 노인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딱히 물어볼 데도 없으니 난관에 부닥치면 자연스레 포기하게 된다.

이렇게 신체적·정신적 제반 능력이 떨어지면 우울감도 쉽게 느낀다. 사회적 신분을 상실하고 경제적 능력이 없어져 열등감에 휩싸이거나 의존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 활동이 줄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둘 떠나보내며 대인관계의 폭도 좁아지다 보니,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외로움도 많이 탄다.

자녀들은 나이 든 부모에게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성격이 바뀌는 등의 심리적·정신적인 변화를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님의 행동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변화일 수 있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해야 한다. 노년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부모님의 변화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기

살아가면서 쌓이는 방대한 경험은 세상과 사물을 보는 관점은 물론 인생관과 가치관을 형성하고, 행동 양식과 습관을 만든다. 노년기에 이르면 다소 완고해지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보니 이제까지 해왔던 익숙한 방법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혹 부모님의 삶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세대 차이를 들먹이며 답답해하거나 짜증을 낼 것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지혜와 경험을 존중해 드려야 한다. 이를테면, 몸이 안 좋으신 부모님이 일을 계속 할 때 무조건 그만두시라고 성을 내는 것보다 일을 돕거나 안마를 해드리거나 몸에 좋은 것을 사 드리는 게 낫다.

② 작은 일도 의논하고 함께하기

젊은 시절만큼의 성취를 내지 못하는 노인들은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자녀가 부모를 위한답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시도록 하면 부모는 자신이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할 때 자식들은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알아서 한다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도리어 서운할 수 있다. 가끔은 아는 것도 모르는 척 여쭙고, 궁금해하시지 않도록 무엇이든 상냥하게 미리 말씀드려 고립된 느낌이 들지 않게 해드려야 한다. 지나치게 보호하고 활동 범위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해드리며, 가족과 함께하는 기회도 자주 갖도록 하는 게 좋다. 가만히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조금씩이라도 활동하는 게 노부모님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③ 부모님의 물건 소중히 여기기

추억이 깃든 손때 묻은 물건은 노인에게 심리적 안정과 위안을 준다. 그러므로 부모의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하거나 만지지 말고, 처분할 때는 반드시 의사를 여쭈어야 한다. 청소와 정리정돈을 할 때도 물건의 위치를 마음대로 바꾸기보다는 부모님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해드려야 한다. 노인들은 기력이 달려 깔끔하게 청소하는 것이 힘에 부칠 뿐 아니라, 필요한 물건이 눈에 안 보이면 찾기 어려워 물건을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생활하는 공간이 산만해 보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물건이 찾기 쉬운 곳에 있는 것을 원한다. 그 점을 충분히 배려해 드리자.

④ 즐거운 대화 나누기

부모는 자식과 대화하는 걸 가장 즐거워한다. 얼굴을 맞대고, 혹은 전화를 통해서라도 자녀와 이야기 나눌 때 큰 행복을 느낀다. 늘 자식의 안부가 궁금하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많다. 그래서 노부모와 대화 나눌 때는 잔소리처럼 들리거나 다소 지루하더라도 맞장구치며 끝까지 듣는 인내가 필요하다. 톤이 높은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므로 말할 때는 목소리를 낮춰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고, 설명은 차근차근 알아듣기 쉽게 한다. 노인들은 대화 내용을 모두 확인하는 게 번거로워 알아들은 척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으므로, 대화가 끝나면 중요한 부분은 요점을 정리해서 확인시켜 드리는 게 좋다.

⑤ 관심을 가지고 사랑과 감사 표현하기

부모님의 기호나 생각을 알지 못하고서는 행복하게 해드리기 어렵다. 평소 관심을 갖고 부모님을 살피며, 드시고 싶은 게 무엇인지, 건강은 어떠한지, 기분이 어떤지, 걱정이 있는지 등을 여쭙자. 부모님은 자식에게 누가 될까 봐 원하는 것이나 불편한 점이 있어도 참고 계실 수 있다. 아울러, 손도 잡아드리고 사랑과 감사 표현도 자주 하자. 노부모는 자식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느낄 때 활기를 얻는다.

⑥ 웃는 얼굴로 대하기

자식이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하거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으면 부모는 그보다 몇 배나 근심하며 잠 못 이룬다. 어른 앞에서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거나, 아랫사람에게 꾸중하는 말을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부모님을 대할 때는 밝고 온화한 표정과 공손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비록 하는 일이 잘 안되거나 어디 불편한 데가 있어도 긍정적인 말로 안심시켜 드리자. 그래도 부모는 알아차리겠지만, 걱정 끼치지 않으려는 자식의 마음만은 고맙게 여긴다.

사람·동물 심지어 식물까지, 모든 생명은 부모에게서 나온다. 자녀에게 생명을 주고 한순간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부모다. 부모가 자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주었으니, 자녀 역시 부모에게 힘써 사랑을 되돌려 드려야 하지 않을까.

자녀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 사랑과 지지를 받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이 오랫동안 좋은 상태로 유지된다. 성인인 자녀는 연로한 부모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기쁘고 행복하게 해줄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지 말고, 거창하지 않더라도 상황과 형편에 맞게 진심을 담아 사랑을 전해보자. 부모님께 드리는 사랑은 아무리 해도 과하지 않다.

“부모님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꾸며주셨듯이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의 여생을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 생텍쥐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