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랑’. 사랑은 곧 삶의 본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사랑은 눈으로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고로, 사랑하는 대상에게 그 마음을 꺼내어 보여줄 수도, 상자에 포장해 건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 때 사랑을 느끼고, 또 어떤 방법으로 전할 수 있을까.
사랑은 ‘마음×표현’이라는 공식으로 성립된다. 사랑하는 마음은 표현할 때 수면 위로 드러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묘약이 된다. 사랑하는 마음이 100이라도 표현이 0이면 아무 소용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는 내가 아니기에 나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좋아하는 대상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눈을 맞춘다. 고래는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고, 원숭이는 털을 정리해 준다. 펭귄은 돌멩이를 갖다 준다. 동물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상대에게 화가 나거나 실망했을 때는 쉽게 표현하면서도 사랑은 ‘마음이 중요하지, 그걸 꼭 표현해야 하나’, ‘표현 안 해도 알겠지’, ‘표현에 익숙하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생략하곤 하는데, 좋은 마음일수록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흙 속에 웅크리고 있는 씨앗과 같다.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추는 행위가 수반되기 전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을 표현하면 더 사랑하게 된다
영국에는 부모가 아이를 때리지 않더라도 사랑을 주지 않고 방임하는 행위를 범죄로 간주한다. 부모의 무관심과 애정결핍이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에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자녀의 가장 큰 심리적 욕구이므로,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아이는 과잉 행동을 하거나 의존적이 되기 십상이고 때로는 퇴행하는 모습 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이는 정서가 안정되어 인격과 사회성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의식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는 성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낄 때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자신감을 얻는다. 부모로부터, 배우자로부터, 자녀로부터 받는 사랑은 마음을 여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고 삶에 애착을 갖게 한다. 애정결핍은 보통 어린 시절 애정을 경험하지 못한 데서 오는 증상이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날 수 있다. 성인의 애정결핍은 상대를 통제하려고 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피해의식이 강하고 불안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다른 사람과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라도 직장과 살림, 자녀 양육으로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의무감으로 서로를 대하기 마련이다. 의무적으로 하는 일은 힘이 든다. 그러나 진심 어린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의 표현을 주고받으면 서로에게 큰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가정에 갈등 상황이 닥치더라도 수월히 넘길 수 있다.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돈을 벌어오는 자체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표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기 어렵다.
심리학자 대릴 벰(Daryl Bem)은, 어떤 일에 대해 머릿속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린다는 ‘자기지각 이론’을 제시했다. 예컨대 사랑을 느껴 그에 따른 행동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그 사람을 위해 꽃을 사는 등의 행동을 함으로써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라고 각인한다는 것이다. 즉,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면 상대방이 더욱 긍정적으로 보이고, 애정도 더욱 깊어진다. 서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 가정이,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행복하고 결속력이 강한 이유다.
사랑은 사랑답게 표현되어야 한다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올바른 건 아니다.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행위라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물질적 보상, 집착, 잘못을 저지르는데도 칭찬하거나 방관하는 태도,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고칠 것만 강요하는 행위, 훈육을 핑계로 비난하고 비교하는 말을 하는 등 잘못된 사랑의 표현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사랑하는 감정과 그 감정을 어떻게 올바르게 표현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국내 한 결혼정보회사가 남녀 41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가장 받고 싶은 사랑 표현법은 ‘애정 어린 말’로 꼽혔다. “사랑해”라는 말이 흔하디흔하다고는 하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에 가장 울림을 주는 말임에는 틀림없다.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표현 외에도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말은 얼마든지 있다. “엄마가 우리 OO 많이 사랑해서 만든 간식이야”,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줘서 고마워요”, “아빠는 우리 OO가 너무 좋아”, “당신이 곁에 있어서 행복해요”…. 지그시 바라보는 눈빛과 다정한 말투에 감사, 칭찬, 격려, 사과의 뜻을 담아 가족에게 사랑의 음성을 들려주자.

사랑은 언어로도 전달되지만, 행동이 뒤따를 때 진정 효과를 발휘한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말뿐인 사랑은 상대에게 진심으로 와닿지 않는다. 특히 영유아기 아이들은 언어보다 피부로 전해지는 사랑을 더 크게 느끼기에, 안아주고 살을 비비며 함께 놀아주는 방법으로 교감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부드러운 신체 접촉은 서로 친밀하게 연결된 느낌을 갖게 하고 스트레스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함께 시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정을 이해하는 일, 상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임하는 태도는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 함께하며 웃는 시간이 많을 때 서로의 만족도는 높고 좋은 관계도 오래 이어갈 수 있다.
사랑의 표현은 무조건적이면서도 일관적이어야 한다. 자녀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 배우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따라줄 때, 부모가 뭔가를 베풀어줄 때 등등 내가 상대로 인해 기쁠 때만 사랑을 표현한다거나 나의 기분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사랑하고 있음을 변함없이 보여주어야 상대도 그 사랑을 확신할 수 있다.
‘사랑의 등가물은 사랑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존중하고, 도움을 주고,
따뜻하고 친밀하게 대하는 것이다.’ 『물건 이야기』 애니 레너드(Annie Leonard)
상대방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사랑하기
세간에 알려진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소와 사자가 사랑해서 서로를 배우자로 맞았는데, 소는 사자에게 날마다 풀을 대접하고 사자는 소에게 사냥한 고기만 대접하다가 결국 갈라서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우습지만 슬픈 이 이야기는 현실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자신이 주고 싶은 대로 사랑을 표현했다가 상대가 고마워하거나 감동하지 않으면 섭섭해하고 실망하는 경우다.
사랑의 표현법은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가 공감하는 사랑의 표현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고, 같은 표현도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 대개는 자신이 받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상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아끼고 좋아하는 것을 주었지만 서로 상처만 남긴 소와 사자처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라도 상대방이 행복해하지 않으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상대방이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느껴야 제대로 된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라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상대방이 내 방식에 길들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언제 행복한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 기준을 뒤로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의 사랑 표현법에 맞추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애정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며 상대의 사랑 표현법을 무시하면 곤란하다. 받기 위해 주는 사랑은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개념이나 표현 방식이 다른 건 각자 사랑에 대한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사랑한다는 말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일에 서툰 사람도 있다. 살아온 환경, 성장 과정에 따라 몸에 익은 방식은 한순간에 바뀌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하고, 나름의 사랑 표현을 알아주자.
나의 사랑 표현법을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상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덜 되었다는 뜻이다. 나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을 늘려가자.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상대방에게 어떨 때 사랑받는 느낌이 드는지 물어보는 게 좋다. 서로가 만족하는 사랑의 표현을 찾아가며 조율하려는 노력 역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다.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라 말했다. 심리학자 조지 크레인(George W. Crane) 역시 비슷한 뜻으로 ‘사랑이란, 표현과 행동에 의해 양육되는 것’이라 했다. 아름다운 꽃밭처럼, 사랑도 화사하게 피어나려면 정성껏 가꾸어야 한다.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듯 사랑도 마찬가지다. 가족 간에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면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된다.
시간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지금 표현하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나의 사랑의 방식이 적절한지 돌아보고, 가족을 향해 무조건적이고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자. 사랑은 아무리 많이 주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 그리고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방법으로 전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일상 속 곳곳에 때때로 사랑을 끌어들이면, 일상은 그 자체로 특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