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사춘기라 불리는 ‘갱년기’

갱년기는 병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현상이다. 본인은 느긋한 마음으로, 가족들은 배려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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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엄마가 이상해졌다. 짜증을 내는 횟수가 점점 늘고, 감정 기복도 심한 데다, 만사가 다 귀찮다는 말을 자주 한다.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돌아보면 어느새 무기력한 듯 누워 있곤 하는데, 대체 왜 그런 걸까?’

엄마의 낯선 모습에 불안한 자녀. 당사자인 엄마도 거울을 볼 때마다 웬 나이 든 여인이 앉아 있는 것 같아 낯설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가슴은 시도 때도 없이 두근두근, 아무리 감정을 다스리려 해도 제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 이런 날이 계속되면 중년의 사춘기라 불리는 ‘갱년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인생은 계절의 흐름과 같다. 우렁찬 울음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는 유아기에서 한창 성장하는 때인 청소년기까지는 마치 어두운 땅속에 있던 씨앗이 힘차게 땅을 박차고 돋아나는 봄과 같고, 인생의 꽃을 피우는 혈기 왕성한 청년의 때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여름과 같다. 중년은 씨앗이 결실을 거두는 수확의 계절 가을이요, 기력이 쇠하고 머리에 백발이 성성해지는 노년기는 활동을 멈춘 대지 위에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을 닮았다. 청소년기에 찾아오는 사춘기(思春期)가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면, 중년에 맞는 갱년기는 가을을 생각하는 시기다. 그런 뜻에서 누군가는 갱년기를 사추기(思秋期)라 부르기도 한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몸이 변해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과정이 쉽게 지나가면 좋으련만, 중년 여성의 90%가 각종 갱년기 증상에 시달린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갱년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의 삶의 질과 행복이 크게 좌우된다고 말한다.

갱년기의 원인과 증상은?

사전에는 갱년기를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라 정의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노화가 진행되면 난소의 기능이 쇠퇴하고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겪는데, 폐경 전후로 약 10년 사이에 갱년기가 온다. 이때 갑자기 덥고 열이 나거나, 쉽게 피곤해지고, 안면 홍조, 가슴 두근거림, 소화 불량, 불면증, 건망증, 신경 과민, 우울증, 어깨 무릎 등 근골격계 통증, 무기력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우울증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폐경으로 인한 여성성 상실, 노화에 따른 자괴감, 자녀들의 독립·결혼으로 인한 빈둥지증후군 등으로 인해 복합적인 공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주부가 갱년기를 겪을 즈음 자녀들의 사춘기와 맞물리게 되면 엎친 데 덮친 격, 그야말로 집안은 전쟁터가 되기 십상이다. 자녀와의 갈등은 갱년기 여성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갱년기가 비단 여성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도 나이가 들면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어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는데, 갱년기를 갑자기 겪는 여성과는 달리 남성은 서서히 진행되므로 변화를 느끼지 못하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갱년기를 겪고 있는 남성들은 “예전에 비해 힘도, 마음도 약해져 종종 좌절감에 빠진다”고 토로한다. 흔히 남자가 나이 들면 여성스러워진다고, 안 보던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거나 아내에게 보호받으려는 성향을 보이는 것도 남성 호르몬이 감소하면서 상대적으로 여성 호르몬의 수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목소리가 커지며, 사회생활을 왕성하게 하는 등 남성적인 특징을 갖는다.

갱년기 극복은 이렇게

갱년기를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치부하지 말고, ‘인생 제2막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신호로 생각해보자. 100세 시대, 갱년기 이후에도 아직 인생의 1/3이 남아 있다. 사춘기를 잘 보내야 멋진 성인이 될 수 있듯이, 갱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심리적으로 보다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규칙적인 운동을 하거나, 갱년기에 좋은 음식물을 섭취하고,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또, 주위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좋으며, 자신의 능력을 살려 일을 하거나, 삶의 의미를 찾아 여가·취미·봉사 활동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치료 차원에서 영양제, 호르몬 주사, 심리상담 등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낙관적인 마음가짐이다. 스트레스는 갱년기 증상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부모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자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그 와중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힘들 땐 가족과 소통하며 풀어나가야 한다.

갱년기 증상은 음주·흡연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혹은 비만·고혈압·당뇨가 있는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러한 것들이 호르몬 분비를 억제시키므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습관들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가족의 배려가 최고

갱년기에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만큼 특효약도 없다. 가족의 무관심, ‘저러다 말겠지’ 하고 방치하는 행동은 갱년기 우울증을 더욱 악화시킨다. 마음이 약해지고 민감해져 있을 때 배우자나 자녀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면 심리적으로 큰 힘이 된다.

자녀는 부모의 업적을 존중하고 경험과 경륜을 인정하자. 고민 상담을 하며 부모님께 조언을 구하면 부모는 상실감을 회복하며 부모로서의 자신감도 얻는다. 산책·운동·요리 등을 함께하는 방법도 있다. 배우자는 부부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자. 또, 사랑의 표현을 통해 안정감을 주고, 취미 활동을 적극 장려하며, 가사 일도 분담하여 도와주자. 부부가 힘을 모아 함께 대처한다면 갱년기도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링컨은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밝고 긍정적인 마음은 고운 얼굴로, 부정적이고 불만 가득한 마음은 찌푸린 얼굴로 나타나는 법. 내면의 향기는 좋은 인상을 만들고, 그것은 젊음보다 값진 아름다움이 된다. 갱년기라고 ‘나도 이제는 시들어 가는구나’ 하고 한탄할 일이 아니라,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요, 화창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