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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대화, 결코 소소하지 않다!

일상 속 가벼운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가족은 친밀감이 높을뿐더러 행복감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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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에는 ‘용건 있는 대화’와 ‘용건 없는 대화’가 있다. 용건 있는 대화는 전자기기가 고장 나 서비스 센터에 전화한다거나, 매장 직원에게 물건이 얼마인지 물어본다거나, 직장 상사에게 매출을 올릴 방안을 제시하는 등 어떠한 정보를 얻거나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말 그대로 목적과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람이 꼭 필요한 말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오랜만에 먼 친척을 만났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과 맞닥뜨렸을 때, 회사 휴게실에서 타 부서 동료와 마주쳤을 때⋯. 용건이 없다는 이유로 입을 꾹 닫고 있으면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그런 자리가 불편해 피하고만 싶어질 것이다. 가족이라도 필요한 말만 하다 보면 한자리에 있어도 딱히 할 말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된다.

그럴 때 누군가 사소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대화를 시도하면 적막했던 분위기는 한결 유연해진다. 이렇게 특별한 용건 없이 가볍게 나누는 대화를 영미권에서는 ‘스몰 토크(Small Talk)’라 한다. 우리말로 하면 한담, 담소, 사담, 수다 정도가 된다.

용건 없는 대화를 쓸데없는 말, 시간 낭비라 여겨 필요한 말만 하고 산다면 세상은 참으로 삭막하지 않을까. 진지하고 의미 있는 대화도 물론 필요하지만, 가볍고 싱거운 대화도 꼭 필요하다. 사람들의 대화를 유심히 관찰하면 유쾌한 대화는 주로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가볍고 소소한 대화가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접착제가 된다.

소소한 대화가 만들어내는 친밀감

유능한 경영자들은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가벼운 대화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준다. 노련한 의사 역시 진찰하기 전 환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우수한 영업 사원은 물건을 소개하기에 앞서 간단한 대화로 고객의 기분과 상황을 살핀다. 명강사도 마찬가지,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실없는 유머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띄운다.

그렇게 소소한 대화로 경직된 분위기를 풀면 상대와의 심리적 거리가 좁아져 서로 친밀감을 가지게 된다.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을 보이는 것으로 비쳐 상대방이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딱딱하고 불편한 분위기에서 다짜고짜 용건부터 말하면 일도, 대화도 원만하게 진행되기 어렵다. 먼저 소소한 이야기로 물꼬를 터서 상대의 마음을 열면, 하고자 하는 말을 좀 더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다.

사랑하지만 친밀감이 부족한 가족은 이런 소소한 대화가 부족하다. 가족은 말 안 해도 잘 안다는 생각에 소소한 대화를 생략하면 할 말은 점점 줄어들고 정작 해야 할 말도 그냥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 친밀감이 떨어져 형식적인 대화가 되고 만다. 부부끼리 나누는 대화는 무미건조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유익한 말도 잔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평소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가족은 깊이 있는 대화도 어려움 없이 나누고, 위기 상황에서 협력해서 대처도 잘한다. 사소한 말들로 채워지는 대화가, 내용에는 큰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뜻 듣기에는 쓸데없는 말 같아도 그것이 어느 때에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서로의 관심 분야나 상대의 생각을 잘 알게 됨으로써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소한 대화라도 결코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행복을 준다

우연히 지인을 만나 서로 안부를 묻거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수다를 나누고 돌아서면서 기분 좋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대화의 내용은 잊혀도 즐거웠던 느낌은 두고두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 있었던 일들을 자유롭게 말하며 웃는 동안 뇌에서는 세로토닌도파민과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는 강력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1인 가구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행복도가 높은 까닭도 이와 관련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통해 타인과 정서적 관계를 맺는 일이 행복감에 큰 영향을 준다고 분석한다. 아내가 전화로 지인과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떤 다음, 끊을 때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고 말하면 남편들은 당황스러워한다. 그러나 이는 아내의 정신 건강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실제 수명 연장에도 도움이 된다.

행복도가 높은 덴마크 사람들은 행복한 이유가 ‘휘게(Hygge)’에 있다고 말한다. 휘게는 덴마크어로 ‘편안함, 안락함, 아늑함’ 등을 뜻하는 말이다. 안락한 공간에서 가족 혹은 지인들과 함께 도란도란 여유롭게 대화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적인 생활 요건이 충족된 이후에는 인간관계의 질에 의해 행복이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가족이든 타인이든 좋은 관계는 친밀한 대화에서 시작된다. 요점도, 결론도 없는 대화일지라도 이를 통해 행복하다면 이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지만 그런 소소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가족은 그렇지 않은 가족보다 더 행복하다. 서로 연결된 기분이 들고 일체감과 소속감도 커진다. 가족끼리 주저리주저리 잡담이나 할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가정의 분위기가 유연하고 화기애애하면 구성원의 행복도만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맡은 일에도 긍정적인 성과를 얻게 된다.

가볍고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려면

특별한 용건 없는 대화라고 해서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되는 건 아니다. 소소한 대화의 이점이 상대와의 친밀감을 높이는 것인 만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 예민한 소재나 험담, 불평 등 유쾌하지 않은 대화는 피하고, 일상생활에 기반한 날씨, 요리, 기사, 그날 있었던 일 등 상대가 대화에 편하게 동참할 수 있는 주제를 화두로 삼아, 본인이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가능하면 상대편이 더 많이 말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취조하듯 질문을 쏟아내면 곤란하고, 상대방이 기분 좋게 이야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사람은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상대가 흥미 있어 하는 화제로 대화의 주도권을 쥐여주면 대화는 저절로 물이 오른다.

소소한 이야기라고 해서 대충 흘려들으면 상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게 되고, 대화는 중단되고 만다. 중요한 건 진정성이 보이는 경청과 진심 어린 공감이다. 상대가 말할 땐 귀담아들으며 표정, 눈 맞춤, 맞장구 등으로 호응하면서 가벼운 미소를 보내자. 상대의 말에 부정적인 반응이나 조언, 훈계를 삼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자세도 피해야 한다. “그것도 몰랐어?”, “그래서 결론이 뭐야?”라는 말로 상대의 말문이 막히게 해서도 안 된다. 문제의 답을 찾거나 결론을 짓지 않더라도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의미가 있다.

기분 좋은 대화의 비법은 기술이나 요령인 것 같지만 사실은 태도에 있다. 상대방을 향한 관심과, 대화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가능하다. 의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나의 의도대로 대화를 끌어가겠다는 심산은 버리고,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려고도 하지 말자. ‘이 대화는 친밀한 관계를 위한 것’이라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자.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더라도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자세, 자잘한 이야기라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는 상대를 존중한다는 또 하나의 표현이다.

밖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와 아내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던 어떤 남자가,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데 큰 상실감이 든다며 인터넷에 사연을 올렸다. 그러자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소소한 대화를 나눌 말벗이 사라진 데 대한 아픔에 공감하며 힘내라는 위로를 전했다.

가족과 시시콜콜한 이야기, 자잘한 말을 주고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알고 보면 우리 삶의 커다란 활력소가 된다. 학교나 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 점심 메뉴는 뭐였는지⋯ 조금만 힘을 빼고 가벼운 대화를 풍성하게 나누자. 가족과 함께 간식을 먹으며 별것 아닌 일에 깔깔거리며 웃는 사이 가정의 활기가 돋는다. 그것은 작은 관심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와 마음을 열어놓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