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말은 참 고마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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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외딴곳에서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생활하지 않는 이상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삶의 법칙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타인으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과 호의를 받는다면, 받은 사람 역시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나의 행복과 평안에 보탬이 된 이에게 보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바로, 고마움의 표현이다.

그런데 때로 어색하고 쑥스럽다는 이유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는 생각에, 혹은 상대방의 행위를 당연시하여 고맙다는 말을 생략하곤 한다. 고맙다는 표현이 가진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인데, 고마움의 표시가 상대방에게 미치는 효과가 작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카고대학의 심리학자 니컬러스 에플리(Nicholas Epley)에 의하면, 감사 표현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기쁨과 감동은 표현하는 사람의 예상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1

1. “Undervaluing Gratitude: Expressers Misunderstand the Consequences of Showing Appreciation”. Amit Kumar, Nicholas Epley. SAGE journals. 2018.6.27.

고맙다는 말이 상대에게 얼마나 가닿을까 싶지만, 하고 안 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말은 단 한마디만으로도 큰 파장을 부른다. 더욱이 고맙다는 말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어서, 소소하게 건네는 말일지라도 그 효과는 결코 소소하지 않다.

고맙다는 말의 힘

고맙다는 말은 누구나 듣기 좋아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인간의 본성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표현을 듣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고 말했다. 고맙다는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당신 덕분에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는 의미를 전한다. 그 속에는 상대방을 향한 칭찬과 인정까지 포함돼 있다.

어떠한 행위를 한 뒤에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상대에게 좋은 행동을 했다는 확신이 들고,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는 기분이 든다. 어렵고 힘들거나 혹은 번거로운 일을 하더라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나면 피로가 풀리고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는 이유도 그와 같다. 사람은 자신을 고마워하는 사람에게 더욱 친절을 베푸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자신을 인정해 준 기쁨에 보답하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말은 자기효능감2을 높여줄 뿐 아니라, 때로는 남모를 괴로움과 아픔을 보듬어 주기도 한다. 그 한마디 말에 위로를 받고, 행복을 느끼고, 힘이 나는 것이다.

2. “자기효능감”. 《두산백과사전》.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감사의 언어는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물론, 하는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뇌는 자주 사용하는 영역일수록 발달하므로 ‘감사합니다’, ‘고마워’와 같은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면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긍정적인 말로 인해 상대방의 행동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자연히 불필요한 오해와 왜곡도 줄어든다.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는 감사

고맙다는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만족감을 주어 서로 간에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200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세라 앨고어(Sara B. Algoe) 교수는 134명을 대상으로 2주간 매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가까운 연인에게 고마움을 느꼈는지, 상대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지, 그 말을 들은 기분은 어땠는지 등등. 조사 결과,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이일수록 서로에게 만족도가 높았다.3

3. “It’s the little things: Everyday gratitude as a booster shot for romantic relationships”. Sara B. Algoe, Shelly L. Gable, Natalya C. Maisel. Personal relationships. 2010.5.21.

2015년 조지아대학교에서 연구한 바에 의하면 ‘부부간에 고맙다는 말은, 배우자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과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믿음을 주어 결혼 생활이 지속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4 결혼 생활을 개선하는 핵심 요소가 고마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행동습관 전문가 사토 덴은 관계가 소원해진 부부에게 건성으로라도 고맙다는 말을 건네라고 조언해 실제로 관계가 회복된 사례를 들어,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할수록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고 강조했다.5

4. “Linking financial distress to marital quality: The intermediary roles of demand/withdraw and spousal gratitude expressions”. Allen W. Barton, Ted G. Futris, Robert B. Nielsen. Personal relationships. 2015.9.6.

5. 《50부터 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좋은 습관》. 사토 덴. 문예춘추사. 2020.12.15. 137-143쪽.

타인의 행위가 도움이 되었고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주고받음으로써, 조직의 구성원 간에는 친밀감이 커지고 나아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어 조직의 결속력도 높아진다. 선행과 감사의 선순환이 건강한 공동체를 이룬다.

고마움을 표현할 때는 상대방의 이름을 함께 말하는 것이 좋다.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진심이 느껴지도록 감정을 넣어 말하자. 고맙다는 말만 아니라 고마운 이유를 구체적으로 곁들이면 효과는 배가된다. 고마운 마음을 편지나 카드에 글로 적어 전달하는 방법은 진정성을 더할 수 있다. 또, 상대방이 스스로 큰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나 감사의 인사를 기대하지 않을 때 하는 감사의 표현도 관계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호스피스6 전문의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면서 쓴 책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의 첫 번째 목록이다. 가족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고맙다는 말도 가장 많이 해야 할 대상이다. 가족은 일상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고받지만, 가족이라는 조직의 특성상 사랑을 바탕으로 맺어지다 보니 서로의 친절과 호의에 무감각하고 반응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6. “호스피스(hospice)”.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죽음이 가까운 환자를 입원시켜 위안과 안락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특수 병원. 말기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치료를 하며, 심리적·종교적으로 도움을 주어 인간적인 마지막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가족이 베푸는 그 어떤 일도 당연하지 않다. 부모가, 배우자가, 자녀가 한 좋은 일을 당연하다고 치부하거나 그렇게 해주기를 기대하면 어떤 일에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식사 준비를 했다고 나머지 사람이 의무적으로 뒷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식사 준비도 뒷정리도 서로 고마워해야 할 일인 것이다.

고맙다는 말은 거창한 일을 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물건을 빌려주거나 창문을 닫아주거나 불을 꺼주는 등 소소한 일들에 고마움을 표현하는 습관을 들이자. 꼭 대가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도, 때로는 함께하는 자체만으로도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다. 고맙다고 말할 대상이 있고, 고맙다고 표현할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가. 고맙다는 말은 참 고마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