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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손 꼭 잡고

한국 서산 이주미

1644 읽음

저희 할머니는 연세가 92세이십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저와 제 동생은 할머니 손에 컸습니다. 어리고 철없던 제 눈에는 할머니가 남동생만 예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장사와 집안일로 힘들어하시는 할머니를 돕기는커녕 반항하기 일쑤였습니다. 차별받고 있다는 서러움에 북받쳐 할머니를 미워했던 저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집을 떠나던 날, 담담하게 짐을 싸서 나오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보아왔던, 흔들림 없이 강인한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괜스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난 뒤 고향에 내려와 할머니 집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가끔 할머니를 찾아뵀지만 안부를 챙길 뿐 진리 말씀은 전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몰래 교회에 다니다 회초리를 든 할머니에게 몇 번 쫓겨났던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온갖 미신을 믿는 할머니에게 교회 이야기를 꺼내면 역정 내실 것이 분명해 아예 입도 뻥긋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할머니 집에 들어설 때의 풍경은 매번 비슷했습니다. 할머니는 귀가 안 들려 TV를 크게 틀어놓으시기 때문에 저는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가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방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가 음소거를 해놓고 TV 화면만 보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왜 TV 소리를 꺼놨어요?”

할머니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듯 물었습니다.

“응, 어차피 안 들리는데 켜놓으면 뭐한다니. 그냥 입 모양이나 보는 거지.”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홀로 일곱 남매를 키우시고, 오갈 데 없는 어린 손주들까지 거두어 고생하며 살아오셨는데 할머니의 말년이 너무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이후 할머니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문득 제 자신이, 키워주신 할머니의 은혜를 갚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도 너무 죄송했습니다. 유월절을 앞두고 긴장된 마음으로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할머니, 저랑 같이 유월절 지켜요. 이생이 다가 아니라 우리가 돌아갈 천국이 있대요. 지금까지 고생하고 사셨으니 좋은 곳으로 가셔야죠.”

말을 마치고 할머니 손을 꼭 잡았습니다. 되돌아보니 지금까지 할머니 손을 잡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듯했습니다.

“그려, 그러자꾸나.”

기적 같은 대답을 한 할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유월절을 지키고 안식일도 지키셨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곱게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할머니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 이것이 과연 현실인가 싶었습니다. 진정한 효도를 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매달 힘든 내색 없이 안식일을 지키러 시온에 나오시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믿음 없던 저의 지난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주변의 영혼을 잘 돌아보리라 다짐하며 그간 마음속에 묻어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봅니다.

그동안 정말 죄송했어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