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은 해 뜨기 직전의 새벽이라고 하지요. 하나님을 만나기 전 제 삶이 그때와 같았습니다. 출산 후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고 하루하루가 우울했습니다.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온 뒤로도 사막 한복판에 혼자 떨어진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분들을 통해 처음 접한 성경 말씀은 말 그대로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조금도 틀리지 않고 성취된 성경 예언을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 어머니시며 나를 당신의 전부로 여길 만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가슴 벅찬 위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귀한 진리를 가족과 나누고 싶은 마음, 시온 식구들은 다 공감하실 겁니다. 친정 엄마와 동생들에게 망설임 없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다들 듣기만 하면 곧바로 진리를 영접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엄마와 첫째 동생은 제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나마 군 복무 중이던 막냇동생과, 모처럼 고향에 내려온 둘째 동생이 “그렇지. 어, 맞는 말이네” 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았지만 금세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가족도 꼭 구원받아야 하는데…’ 마음만 간절할 뿐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자매님, 한 영혼을 인도하려면 자매님 자신부터 사랑의 모습으로 변화돼야 해요.”
저를 인도한 집사님의 말이 뼈아프게 와닿았습니다. 힘든 일을 겪기 전에도 저는 친정에서 정 없는 맏딸, 까칠한 언니이자 누나였습니다. 저에게 서운한 기억이 많은 첫째 동생이 제 말을 곱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다른 동생들이 제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듯 저도 사랑의 자녀로 거듭나고 싶었습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본 기억이 별로 없는 저로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만 낯간지럽고 어색하더라도 달라져야 했습니다. 내 작은 변화로 가족들이 마음을 열고 진리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으니까요.
일상에서부터 “그래서? 뭐?” 같은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투는 피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말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힘들었겠다” 한마디 하기가 너무 어려웠지만 처음만 그렇지 의외로 그다음부터는 쉬웠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어색해하는 동생들을 보면서 다시금 제 모습을 반성했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는 결실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5년째 서울에서 혼자 지내던 둘째 동생이 갑자기 제주도로 내려와 살겠다고 하더니 결심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동생과 같이 이삿짐을 나르고 한숨 돌리면서 넌지시 말을 꺼냈습니다. 다시 시온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요.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동생은 선뜻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제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빛이었듯 동생에게도 그랬나 봅니다. 매일 시온에 가서 말씀을 살피고 하나님과 식구들의 사랑을 받으며 영육 간에 밝고 건강해지는 것이 확연히 보였습니다. “시온에 오니까 너무 좋다”며 규례도 열심히 지키고, 친구에게도 진리를 알려주려 애쓰는 동생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이제 저는 둘째 동생과 힘을 모아 엄마와 다른 동생을 하나님께 인도할 날을 꿈꿉니다. 모난 성품과 아직 남아 있는 거친 언행을 다듬고 더욱더 온전한 사랑으로 거듭난다면 가족 모두가, 아니 저와 연이 닿는 모든 사람이 사랑의 실체이신 엘로힘 하나님을 깨닫고 구원의 길로 나아오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합니다. 온유하고, 무례히 행치 않고, 교만하지 않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만 품게 해달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