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생각하라

조회 13,071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뀔 때마다, 각자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 그 모든 계획을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일의 계획은 사람에게 있을지라도 그 일을 성사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리고 우리의 삶을 통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열매를 볼 때 뿌리를 생각하라

사람들은 열매가 풍성하게 맺힌 나무를 바라볼 때 눈에 보이는 열매와 가지만을 주목하고, 보이지 않는 뿌리의 역할과 힘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열매 자체나 열매를 달고 있는 가지를 주목할 것이 아니라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까지 물과 양분을 공급했던 뿌리의 존재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지가 아무리 탄탄하고 실하다 해도 뿌리라는 존재가 없으면 그 나무는 유지될 수 없고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복음의 열매를 맺으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잊어버리고, 열매가 달린 가지로서 드러나는 우리 자신을 먼저 생각할 때가 간혹 있지 않은가 합니다. 일이 이루어지는 여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것이지 우리의 능력과 지략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경영하시고 열국과 열족들을 이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겠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 각자의 목표와, 또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목표가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옛적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왕의 경험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를 다시 한번 회개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느부갓네살의 꿈

다니엘 2장에서 세계 역사에 대한 중대한 꿈을 꾸었던 느부갓네살왕은 4장에서 다시금 자신에게 일어날 중요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는 꿈에 한 나무가 자라서 끝이 하늘에 닿고 아름다운 잎사귀와 풍성한 열매를 달아 많은 새들이 깃들며 들짐승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사람들이 거기서 양식을 얻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하늘에서 거룩한 자가 내려와서 외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 뿌리의 그루터기만 땅에 남겨 일곱 때를 지내리라.”

바벨론의 박사와 술객과 점쟁이들이 이 꿈을 해석하지 못하자 왕은 다니엘을 불러 해몽하게 하였습니다(단 4장 4∼19절). 다니엘의 해몽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멸하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 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하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더라 하시오니 왕이여 그 해석은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명정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단 4장 20∼27절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때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줄 깨닫지 못하고 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뿌리는 항상 감추어져 있고, 나타나는 것은 가지요 가지 끝에 매달린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뿌리가 나무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줄 깨달을 때에 왕의 나라가 견고할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왕에게 보여 주신 이상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누구든 왕위에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며, 모든 나라를 강하게도 하시고 약하게도 하시는 등 하나님께서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고 운영하신다는 가르침입니다.

“내가 했다” 했을 때 떠나버린 하나님의 은총

느부갓네살왕은 이런 교훈을 듣고서도 잊고 지내다가 약 1년이 지난 어느 날 궁성 지붕을 거닐며 바벨론 도성을 굽어보게 되었습니다. 문득 그에게는 우쭐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한 것이 아니냐!” 그의 몰락은 바로 그때 시작되었습니다.

“…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조회하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단 4장 28∼37절

‘내가 했다’는 생각을 갖는 순간 느부갓네살왕은 모든 지혜가 사라지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서 왕의 보좌에서 쫓겨났습니다. 7년 동안 짐승과 다름없이 생활하던 그는 문득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데 어찌 이 바벨론 도성을 내가 건설했다 하겠는가?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로구나.’ 이렇게 깨달았을 때 짐승의 마음이 사라지고 잃어버린 지혜와 총명이 돌아온 고로 그는 왕위에 다시 나아가 국정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했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놀라워하고 감탄할 때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사단의 화전(火箭)임을 알아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왕이 ‘내가 했다’는 생각을 품는 순간 모든 지혜가 사라지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짐승같이 생활하게 된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내가 했다’는 생각이 자라나게 된다면 짐승의 마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결코 짐승의 마음을 받지 않도록 늘 하나님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진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결코 자고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 능력으로 식구를 많이 찾았고, 내가 말씀을 잘 전해서 식구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매달렸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능력을 주시고 여건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한 사람의 영혼도 올바르게 건사할 능력이 없는 연약한 존재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시는 데 특별한 사람을 필요로 하시지는 않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바벨론 왕으로 택하셨더라도 계획하신 대로 이루실 수 있었고, 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영광을 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열두 사도의 자리에서 탈락했을 때에도 맛디아라는 제자가 이내 그 자리를 채우지 않았습니까(행 1장 15∼26절)? 세계 60억 인구 중에 이 자리에 올 사람이 없어서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더 뛰어나고 잘났기 때문에 불러주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나라는 존재도, 나의 가정도, 우리 교회도 모두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개인이나 가정, 교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왕도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비로소 그 나라가 견고해졌습니다. 비록 작고 약한 존재이지만 우리에게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리라”(사 60장 22절)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했다” 했을 때 잃어버린 가나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위대한 선지자로 기록되어 있는 모세는 정작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가 느부갓네살왕처럼 ‘내가 했다’는 생각을 품고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 …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민 20장 2∼13절

백성들이 물이 없다 하여 온갖 악한 말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자 40년간 백성들로부터 수없이 원망의 말을 들어온 모세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화가 난 모세는 그만 일생 일대의 오점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이 물을 내는 것처럼 말해 버린 것입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40년간 하나님을 가까이한 모세가 그렇게 말한 데 대해 하나님께서는 매우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면 마치 느부갓네살왕이 영광과 권세,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들을 잃고 짐승처럼 생활했던 것처럼 그러한 불행을 자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했다’는 생각에 대해 엄중히 견책하시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민 27장 12∼14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내가 했다’고 말한 그 일이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데 결격 사유가 되었습니다. 하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우리들이 진정 경계해야 할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나 느부갓네살왕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였지만 우리들은 6천 년 동안 내려온 성경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이 “내가 했다” 했을 때 떠나버린 하나님의 은총, 모세가 “우리가 물을 주겠다” 했을 때 들어가지 못한 가나안, … 지난 시대에 있었던 이런 일들은 이 시대에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들의 교훈과 경계를 위하여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지구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왕 같은 제사장들을 훈육하시고 연단하시는 도가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모든 시대와 역사, 내 주위에 얽혀 있는 수많은 인연들과 주변의 환경, 조건 등 모든 것을 조합해서 현재의 나 자신을 바라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고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 각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을 주셨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모든 과정을 이끄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게 해 달라고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어야겠고, 작고 미약한 우리를 택해 주시고 모든 여건을 조성하시며 연단하시는 은혜를 생각하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찬양을 돌려야겠습니다.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 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렘 13장 15∼17절

스스로에게 영광을 돌림으로써 멸망하는 이들을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는 슬퍼하시며 곡하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들은 그 과정에 부르심을 입어 하나님의 말씀이 영생인 줄 알기에 순종할 뿐입니다.

우주를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굳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셨겠습니까? 이는 우리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천국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겸손한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크든 작든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매사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습관을 가져야겠습니다. 시편을 통해 하나님을 항상 찬양한 다윗은 이런 습관을 가졌던 믿음의 선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가 하나님께 합한 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편 1∼2절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시 115편 1∼18절

이런 마음을 보셨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고 의지했으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진실한 마음이 있었던 까닭에 전장에 나아가 싸울 때마다 승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윗처럼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때 우리가 더 강성해질 수 있고, 세상 만민 중에 뛰어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진리를 전할 때 진리의 빛은 더욱 밝게 빛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열매를 맺고, 내가 뛰어나 직분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느부갓네살왕이 품었던 마음이요, 모세가 품었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데 대해 늘 감사하고 기뻐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영광을 뒤로하고 스스로에게 영광을 돌리는 교만한 마음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빛이십니다. 빛이 없이는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발이 있어도 올바로 걸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작은 마음에서부터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게 될 때 새 언약의 모든 진리가 더욱 크게 빛을 발할 수 있고, 진리 안에서 은혜로운 형제자매의 연합과 사랑도 구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꾸 ‘나’라는 존재가 강하게 살아 있을 때는 내 안에 하나님은 안 계시고 오직 ‘나’만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십사만 사천 개체일 뿐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이끄시고 진행해 가심을 깨닫게 될 때 그 나라가 더욱 강성해진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아버지 어머니 주신 귀한 진리 말씀 안에서 은혜롭게 복음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