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에는 ‘유머리스트’가 산다

사람은 웃을 때 마음이 열린다. 상대의 마음을 여는 유머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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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장례식장. 엄숙한 애도 분위기 속에 갑자기 조문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고인이 자신의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을 웃게 해달라고 당부하며 미리 녹음해둔 유쾌한 작별 인사를, 그의 딸이 재생했기 때문이었다. 지병을 앓으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고인은, 마지막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떠났다.

“질병과 슬픔이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강하게 살도록 하는 것은 웃음과 유머밖에 없다”는 찰스 디킨스의 말처럼,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유머의 효용 가치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유머 감각은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자리 잡았고, 재치 있는 인재가 기업의 선호를 받으며, 유머 넘치는 광고가 매출을 올리는 등 유머는 21세기 성공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장례식장에서의 웃음’이 미담으로 전해지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가 아닐는지.

가정에서도 유머는 필수 요소다. 가족 구성원들이 익살스러운 표정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때 가정은 편안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된다. 유머가 없으면 그냥 넘어갈 만한 일도 경직된 분위기로 인해 심각한 일이 돼버리곤 한다.

유머는 삶의 윤활유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사는 40년 이상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항공사의 허브 켈러허 회장은 ‘고객 만족을 위해서는 먼저 직원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개그맨 못지않은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 회사를 신나게 만들고 고객을 웃게 하는 그의 ‘유머 경영’이 장기간 이익 창출의 비결 중 하나인 것이다.

유머는 단순히 웃음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웃는 행위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마음이 열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어느 한쪽이 유머를 건네면 서먹한 느낌이 사라져 금방 친해지지 않는가. 사람은 함께 웃을 때 경계가 허물어지고 서로 가까워진다.

상대에게 원하는 바가 있을 때도 유머를 사용해서 말하면 훨씬 효과적이다. 웃으면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해 상대의 말을 좀 더 너그럽게 수용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을 웃겨주는 이에게 설득당하기 쉽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불만이 싹트거나 대화가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유머로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면 논쟁과 갈등을 피할 수 있다. 한번 웃고 나면 불쾌한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게 마련이다.

2011년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는 실험 참가자들의 팔에 차가운 천을 대거나 서서 다리를 굽히게 하는 등 고통을 느낄 만한 상황을 유도했다. 그러고는 다양한 영상을 보여주며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측정한 결과, 코미디 영상을 본 참가자들이 가장 오랜 시간 고통을 견뎌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처럼 유머는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어기제(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취하는 행위) 중에서도 유머는 성숙하고 수준 높은 범주에 속한다. 그래서 항간에는 이런 말도 있다. ‘선사시대에는 인간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두 가지였다.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는 것. 그러나 최근에는 세 가지의 대안이 있다.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웃는 것이다.’

유대감을 돈독히 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와 피로도를 낮추고 활력을 얻게 하는 유머. 유머는 삶의 윤활유다.

자녀의 유머 감각, 부모 영향 크다

부모라면 대개 자녀가 사회성이 뛰어나고 밝게 자라기를, 이왕이면 창의력도 높고 공부도 잘하기를 바란다. 유머 감각은 이러한 바람을 이루어줄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지능지수(IQ), 감성지수(EQ), 열정지수(PQ), 도덕성지수(MQ) 등은 모두 유머 감각과 통한다.

유머로 즐거운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는 친화력이 좋아 또래들로부터 호감을 얻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아이는 웃고 웃기는 일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데, 이런 공감 능력은 사회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면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자주 보여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머를 잘하는 아이는 사고가 유연하고 창의력이 있다. 창의적인 인간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는 죽기 직전까지 유머를 구사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고의 흐름에서 벗어났을 때 웃고, 창의력은 생각의 틀을 깬 엉뚱한 발상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유머와 창의력은 뿌리를 같이한다. 따라서 유머를 잘 구사하면 생각을 전환하는 능력과 순발력,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 지능의 발달로 학습 능력까지 향상한다.

부모가 집에서 유머와 장난을 생활화하는, 유쾌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레 유머러스한 사람이 된다. 아이가 웃긴 말을 하거나 기발한 발상을 할 때 크게 웃으며 맞장구만 쳐도 아이의 유머 감각은 높아진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다른 사람이 웃으면 자신감이 상승해 계속해서 웃음을 주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재미있는 책을 읽거나,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때 큰 소리로 웃어서 자녀가 함께 웃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좋다. 그러나 아이가 분명히 잘못을 저지르는데도 매번 웃으며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은 안 된다. 유머로 감정 대립을 완충시키되, 잘잘못은 짚어주어야 한다.

자녀에게 건네는 유머는 ‘엄마(아빠)는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만큼 너를 사랑해’라는 메시지와도 같다. 그렇게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부모 밑에서 웃으며 자란 아이는 부모에게 웃을 일을 많이 선사한다.

진정한 유머는 마음에서

밖에서 아무리 큰일을 하고 인정받아도 사랑하는 가족과 나눌 웃음이 없다면 진정으로 행복하다 할 수 없다. 집에 돌아오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족과 호탕한 웃음을 나눌 기회를 만들어보자. 가족 중에 누군가 골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표정이 그게 뭐야? 좀 웃어” 하기보다는 직접 웃겨주는 쪽이 낫지 않을까. 자녀에게 효과 없는 잔소리로 괜히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보다 유머를 적절히 섞어 바른 행동으로 유도하고, 배우자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을 때도 직설적이거나 공격적인 말 대신 여유를 가지고 유머로 응수하자.

화려한 말솜씨나 타고난 유머 감각이 있어야만 웃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흉내 내기, 언어유희, 반전, 수수께끼, 패러디, 흥겹게 노래 부르기, 몸짓과 표정 및 목소리 톤을 이용하기, 사투리, 웃긴 이야기 한 토막을 메모지에 써서 붙이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족의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웃기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유머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대상과 상황을 고려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하거나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말, 누군가를 조롱하고 얕잡아보는 식의 농담, 과도하게 억지로 웃기려는 유머,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할 유머,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유머는 오히려 분위기를 흐려놓는다. 많은 의미를 전달하려는 유머도 유쾌하지 못하다. 배려와 애정 없는 유머는 빈정거림에 불과하다. 좋은 유머는 나와 타인 모두를 즐겁게 하고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는 데 의욕이 샘솟게 하는 유머다.

‘진정한 유머는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진정한 유머리스트는 단순히 뛰어난 순발력이나 재치로 타인을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과 따뜻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부정적이고 권위 의식이 가득 차 있거나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따뜻한 유머를 낼 수 없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이 하면 재미있고 어떤 사람이 하면 재미없는 경우가 있는데, 대체로 평소 유쾌한 사람이 하는 유머가 재미있게 전달된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소소한 즐거움에 크게 기뻐하자. 그러면 유머 감각도 더해질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죽기 얼마 전에 “좀 더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의 후회는, 즐겁게 사는 것도 열심히 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즐거운 삶은 날마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거나 소문난 맛집을 섭렵하는 삶이 아니다. 행복은 일상에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재미있는 대화로 환한 웃음꽃을 피우며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 즐겁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사랑의 마음으로 가족을 웃게 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고, 가족의 유머에 후하게 웃어주자. 가족의 웃음소리는 곧 그 가정의 심장이 뛰는 소리다. 혹시 심장 뛰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유머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보자.

이럴 때 이런 유머
배우자가 만든 반찬이 맛있을 때,
“당신, 나 모르게 요리학원 다녔어?”
“식당 차려도 되겠네.”
자녀의 귀가 시간이 늦었을 때,
“우리 이쁜 딸 누가 잡아가면 어떡해.”
“우리 딸, 신데렐라인 줄 몰랐네. 무도회 다녀오느라 늦었어?”
모처럼 일찍 귀가한 날,
“우리 OO(아들, 딸,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일찍 왔지.”
배우자와 대화하다 다툼이 생기려 할 때,
“예뻐서(멋있어서) 봐준다!”
“내가 더 사랑하니까 참자!”
아이들이 싸울 때,
(딸에게) “내 아들 괴롭히지 마.”
(아들에게) “내 딸 속상하게 하지 마.”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한 가족을 칭찬할 때,
“와, 우렁이 각시가 다녀갔나 봐!”
“오성급 호텔이 안 부럽네.”
아이가 장난감 로봇을 또 사달라고 조를 때,
“(로봇 흉내를 내며) 웅 치키, 웅 치키. 주인님, 분부만 내리십시오!”
가족이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왜 입이 만리장성만큼 나와 있대?”
“누구야? 누가 잠자는 우리 OO의 코털을 건드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