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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소재, 단백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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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시계를 손으로 더듬어 끄고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한다. 이를 닦은 뒤 다양한 용기에 담긴 세제를 이용해 씻고서는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옷을 입고 가방과 휴대폰을 챙겨 집을 나선다.

출근을 준비하는 잠깐 사이에 쓰인 물건들만 봐도 대부분이 플라스틱 소재로 되어 있다. 시계에서 시작해서 칫솔, 세제 용기, 헤어드라이어, 식기, 조리도구, 기능성 섬유, 가방, 휴대폰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보기 어려웠을 물건들이다. 21세기를 가히 ‘플라스틱 시대’로 규정할 만하다.

최첨단을 달리는 수많은 제품들이 플라스틱(합성수지),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 합성 고분자1 물질로 만들어졌다면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는 과연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을까?

1. 고분자: 분자량이 1만이 넘는 큰 분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통 원자 100개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속적으로 늘어선 수십에서 수백 개의 단량체가 합성되어 긴 고분자 사슬을 이룬다.

단백질로 구성된 생명체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들은 단백질이라는 천연 고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인체를 보면, 세포 속의 다양한 물질로부터 피의 구성 성분, 장기와 그 장기를 싸고 있는 근육과 피부, 머리카락과 손발톱 등 대부분이 다양한 형태의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물을 제외한 나머지 인체의 절반이 단백질로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

2. 단단한 뼈도 콜라겐 단백질을 주성분으로 하는 골기질이 굳은 뒤, 인산칼슘 결정이 더해져 완성된다.

헤모글로빈 분자모형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배열에 따라 접히고 구부러져 입체적인 형태를 띤다. 헤모글로빈의 경우, 둥근 공의 형태를 띤 4개의 사슬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플라스틱은 저분자인 단량체가 중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길고 거대한 분자 사슬을 이룬 고분자 물질이다. 마찬가지로 천연 고분자인 단백질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로 이루어진 아미노산이라는 단량체로 만들어진다. 따로 떨어져 있는 아미노산들은 두 물체를 접착제로 붙이듯 ‘펩타이드 결합’으로 연결되어 단백질을 이룬다. 10여 년에 걸친 연구로 가장 먼저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가 규명된 인슐린은 51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단백질은 한 줄의 끈 형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미노산의 배열에 따라 접히고 구부러져 둥근 공이나 판, 긴 섬유, 코일 등 입체적인 형태를 띤다. 그래야만 특정 단백질이 가진 고유한 기능과 특성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다. 피 속에 있는 헤모글로빈은 구부러진 4개의 사슬이 모여 합체 로봇처럼 하나를 이룬다.

이러한 단백질의 구조는 주변 환경에 무척 민감하다. 단백질이 풍부한 달걀흰자는 원래 투명하지만 젓거나 열을 가하면 희게 변하는데, 이처럼 외부 환경의 변화로 단백질의 분자구조가 변화되어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것을 ‘변성’이라고 한다. 고기가 익으면 갈색으로 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단백질

단백질의 재료가 되는 아미노산은 총 20종이다. 단백질의 단량체에 해당하는 아미노산이 20가지 밖에 없어서 합성되는 단백질 종류가 합성 고분자만큼 다양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20가지 아미노산 중에서 10개만 자유롭게 연결한다고 가정해도 2010가지나 되는 조합이 나온다. 단백질은 수백에서 수만 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조합의 경우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덕분에 생체 내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에 맞는 다양한 단백질 합성이 가능하다.

51개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인슐린.

우리 몸에서는 유전자 정보를 따라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순서가 결정된다. DNA 암호가 지정한 아미노산이 줄에 구슬이 꿰이듯 차례차례 이어져 나가는데, 철저히 제어된 상태로 합성이 진행된다. 그 결과, 아미노산의 배열과 개수가 항상 일정하게 조절되기 때문에 사슬의 길이와 종류가 항상 같아서 만들어진 단백질은 일정한 성질을 가진다.

사슬을 구성하는 아미노산들은 각각의 성질에 따라 서로 끌어당기거나 반발한다. 그러므로 단백질은 자발적으로 안정한 상태로 접히게 된다. 때때로 ‘샤프론Chaperone’이라는 또 다른 단백질의 도움을 받아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단백질만 해도 무려 10만 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백질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는 3만여 개에 불과하지만 편집 과정을 거치며 한 유전자에서 조금씩 다른 여러 단백질이 생산되거나 당 사슬 등이 붙어 또 다른 단백질이 되기도 한다.

특별한 능력자, 단백질

단백질의 다양한 종류만큼 단백질이 가진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피부 표면의 각질층이나 머리카락, 손발톱은 모두 물에 잘 녹지 않으며 단단한, 케라틴 단백질로 되어 있다. 뼈도 콜라겐이라는 단백질을 토대로 만들어지며, 투명하고 질긴 수정체와 탄력이 있는 근육도 모두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단백질은 몸의 형태를 만들 뿐만 아니라 체내에서 화학 반응의 속도를 높이는 효소 단백질처럼 촉매, 정보 전달, 수송 등의 생명 활동을 돕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뇌에서는 세포들끼리 신경전달물질을 주고받음으로써 기억이나 감정이 만들어진다. 이 복잡한 과정에도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들이 관여하고 있다. 체내에 침입한 병원체에 대항하는 항체, 감각에 관여하는 단백질, DNA에 붙어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단백질 등 그 임무가 무척 다양하다.

탄성이 좋은 물질로 가장 먼저 고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신체기관인 자궁은 더 놀라운 기능을 보인다. 태아가 다 자란 상태가 되면 원래 크기보다 최대 500배 가까이 커지는데,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간다. 혈관이나 발성기관, 심장과 같이 반복적인 움직임이 많은 기관들도 대부분 탄성력이 좋은 엘라스틴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혈관의 경우 병리학적인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수십 년 동안의 심장박동에도 탄력을 잃거나 끊어지지 않는다.

접착력이 좋은 것도 있다. 주로 따개비와 홍합 같은 돌에 붙어사는 해양 생물에서 발견되는 도파DOPA라는 단백질이다. 접착제는 수분이 있으면 접착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단백질을 이용하면 물속에서도 접착력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성질을 연구해서 수술 봉합사를 대체할 생체용 단백질 풀을 개발 중이다.

남극해에서 사는 물고기들은 극저온에서도 얼지 않는다. 어는점 이하의 수온에서도 얼음 결정의 성장을 억제하는 부동 단백질이 몸속에 있기 때문이다.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부 곤충과 식물에서도 발견되는 이 부동 단백질은 혈액 보존이나 냉동식품의 품질 관리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다.

방탄복을 만들 수 있는 단백질도 있다. 거미에게서 얻을 수 있는 실크 단백질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강도가 5배 이상 강해서 지름 1센티미터의 거미줄로 제트기를 끌 수 있을 정도로 질기다. 강도와 탄성력이 우수한 거미 실크 단백질은 낙하산, 인공 인대, 현수교 케이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될 전망이다.

단백질 하면 보통 고기나 콩, 달걀 등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단백질의 진정한 본질은 체내에서 광범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천연 고분자라는 데 있다. 다양한 단백질은 탄생과 성장,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의 생명 활동을 관장하고 있다. 합성 고분자보다 단량체의 종류는 훨씬 적지만, 인체를 이루는 소재라는 관점에서 그 다양성과 우수한 특성은 합성 고분자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생체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의 기능 및 변화에 관해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단백질체학Proteomics유전체학Genomics만큼이나 21세기 과학 문명을 이끌어나갈 고성장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유전자만을 연구해서는 알 수 없는 비밀을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진 단백질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체에는 아직 우리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미지의 단백질이 무수히 존재한다. 인류가 밝혀낸 부분은 사실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