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에 숨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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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먹을거리다. 그러나 달걀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하나의 세포이기 때문에 유정란의 경우, 어미 닭이 3주만 정성스럽게 품어주면 마술처럼 그 안에서 병아리가 태어난다. 어떠한 생명의 징후도 보이지 않던 달걀에서 살아있는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생명을 감싸 안은 달걀은 또한 많은 비밀을 잉태하고 있다. 먼저, 달걀의 내부 구조부터 살펴보자. 달걀의 안쪽을 대충 살펴보면 노른자, 흰자, 껍데기로 구분되는 매우 간단한 구조다. 하지만 달걀은 사실 여러 막으로 둘러싸인 꽤 복잡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단단한 껍데기는 주로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석회암의 주성분이기도 하다. 달걀 껍데기를 까려다 보면 거추장스러운 반투명의 얇은 막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겉껍데기 안의 두 층으로 이뤄진 난각막이다. 난각막은 얇고 약해 보이지만 겉껍데기에 내구성을 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난각막 안에는 묽은 흰자가 있고 된 흰자가 막에 싸인 노른자를 감싸고 있으며 노른자는 중앙에 위치하도록 알끈으로 고정되어 있다. 난각막 사이의 한쪽에는 공기집이 있다.

달걀의 겉껍데기는 전혀 빈틈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약 7천 개의 기공이 뚫려 있고 이 기공을 통해 병아리가 호흡한다. 겉껍데기는 큐티클이라는 얇은 막으로 덮여 있는데 이 막이 호흡을 조절하고 외부로부터 세균 침입을 막아준다. 특히 달걀의 뭉툭한 쪽에 많아서 그 부분에 공기집을 만든다. 갓 낳은 달걀은 공기집이 작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걀 안에서 생성된 기체가 배출되면서 점점 커지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의 세포인 달걀의 어느 부분이 병아리가 될까? 병아리와 색이 똑같은 노른자가 병아리가 되는 것일까? 답은 흰자도, 노른자도 아닌 배아다. 막으로 둘러싸인 노른자 안의 아주 작은 배아가 흰자와 노른자를 양분 삼아 세포분열을 거듭하면 병아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달걀 대부분은 어미 닭 혼자 낳은 무정란으로, 배아가 없어서 아무리 품어주어도 병아리가 깨어나지 않는다. 수탉과 암탉 사이에서 태어난 유정란만이 병아리가 될 수 있다. 포유동물은 엄마 배 속에 있으면서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받을 수 있지만 알은 그럴 수 없기에 어미 닭으로부터 병아리가 될 때까지 쓸 영양분을 한꺼번에 받아서 태어난다.

달걀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모양이 완전한 원형도, 균형 잡힌 타원도 아니다. 새의 알은 대부분 한쪽 끝은 평평하고 다른 쪽은 뾰족한 비뚤어진 타원형이다. 알이 암탉의 수란관을 지나면서 형태가 변형되기 때문이다.

바닥에서 달걀을 굴리면 특이한 모양 때문에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굴러가지 못하고 뾰족한 쪽으로 휘어진다. 바닥이 평평하면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오기도 한다. 달걀이 비뚤어진 타원형이라 무게중심점과 운동중심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알이 완전한 구형이거나 균형 잡힌 타원형이었다면 둥지를 벗어나 멀리 굴러가 버릴 것이다. 그러나 알이 비뚤어진 타원형이기 때문에 멀리까지 가지 못하고 멈추거나 제자리로 돌아온다. 알의 형태는 태어날 새끼의 안전을 위한 최적의 구조인 것이다.

작은 병아리도 쉽게 깨고 나오는 달걀이지만 달걀의 위아래를 잡은 채 힘을 주면 성인 남성도 쉽게 깰 수 없다. 달걀판 위를 걷는 묘기를 부리는 사람도 있다. 무게에 눌려 와장창 깨질 것 같지만 달걀은 거뜬히 한 사람의 무게를 버틴다. 이 연약한 달걀에 숨겨진 엄청난 힘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겉껍데기는 두께가 0.3밀리미터로 얇고 가볍지만 암탉이 알을 품는 동안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병아리를 보호할 만큼 강하다. 그렇다면 달걀은 얼마만큼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속을 비운 달걀을 건물의 지붕처럼 돔 모양이 되도록 반으로 잘라 사방에 놓고 그 위에 책을 하나씩 올린다. 연약한 달걀 껍데기가 쉽게 깨져버릴 것 같지만 달걀 껍데기 네 개는 무려 12킬로그램 이상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실험하면 작은 메추리알은 4킬로그램 이상을 견딜 수 있고, 좀 더 크고 단단한 타조 알은 200킬로그램도 거뜬하다.

달걀의 공학적 구조에는 신비한 점이 많다. 달걀을 세운 상태에서 단면은 아치, 입체적으로는 돔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달걀이 큰 힘을 견뎌내는 원리는 아치형 다리를 이루는 돌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달걀의 껍데기 조직이 아치형 다리의 쐐기 모양 돌처럼 바깥에서 작용하는 힘에도 안으로 밀리지 않고 그 힘을 분산시키는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달걀을 감싸 쥐고 깨뜨리기 위해 생각보다 큰 힘이 필요한 것도 달걀의 공학적인 설계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병아리가 달걀에서 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달걀은 뾰족한 물체에 부딪히는 경우와 같이 하중이 한곳에 집중되는 것에 약하다. 그러므로 달걀 속 병아리가 작은 부리로도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달걀에서 볼 수 있는 아치와 돔은 큰 무게를 견디기에 안정적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지금까지 건축에 많이 응용되어 왔다. 숭례문, 흥인지문의 석축, 고풍스러운 고궁의 석조 무지개다리 외에도 아치는 흙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터널이나 지하구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둥이 없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체육관이나 전시장을 지을 때는 압력에 강한 돔 구조가 활용된다.

달걀은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내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치 누군가가 설계하고 준비한 것처럼 구조부터 형태까지 매우 과학적이다. 한 손에 쥐어지는 작은 달걀 속에는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신비로운 비밀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참고
『신나는 요리 맛있는 과학』(최진 著)
『달걀의 지혜』(기젤라 뤼크 著)
『생명 교향곡』(권오길 著)
EBS Sci-teen ‘달걀의 힘-힘의 분산’편 (2013. 11. 14.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