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상 속, 크고 작은 깨달음을 나눠요.
고향 그리고 어머니
모처럼 쉬는 날, 미뤄둔 집안일을 정신없이 하느라 휴대폰 벨이 울리는 것도 몰랐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하셨네요?” “그래, 자는 걸 깨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어났니?” “그럼요. 지금이 몇 신데요.” 엄마는 애들 교육비에 보탤 겸 몇 년째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나를 몹시 안쓰러워하셨다. 엄마는 윗집에서 실한 무를 두어 개 얻었는데 내 생각이 나서 깍두기를 담가 택배로 보냈다며 물건을 받으면 확인 전화를 달라고 했다. “힘들게 뭐하러 하셨어요. 나도 낼모레면 오십이구만. 저는 제가 해먹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너는 일하느라 바쁘고⋯ 음식도 잘 못하고 그래서 그러지.” 다음 날 택배가 도착했다. 꼼꼼하게 붙인 테이프 사이로 고향 집 주소와 엄마 이름이 보였다. 기분이 묘했다. ‘엄마가 있는 곳. 그래 여기가 우리 집이었지. 여기서 함께 살았었지.’ 떠나온 고향이 그립고, 오늘도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홀로…
한국 의정부, 김향순
잃어버린 추억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를 무척 좋아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만화를 볼 생각에 늘 설렜다. 만화 상영이 끝나면 아쉽기 짝이 없었다. 재미있는 만화를 두고두고 볼 방법을 궁리하다가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앞부분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을 막으면 테이프에 원래 있던 내용이 삭제되고 보고 싶은 만화가 녹화됐다. 집에는 내 유치원 재롱 잔치, 볼링 가이드, 해외 영화, 부모님의 결혼식 등 여러 종류의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가지고 녹화를 시작했다. 물론 부모님께 허락받은 비디오테이프에만 녹화가 가능했다. 녹화해둔 만화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만화 비디오테이프의 양은 늘었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를 한 편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비디오테이프가 부족했다. 급기야 허락받은 것 외에 필요 없어 보이는 비디오테이프를 내 마음대로 골라서 녹화하기에 이르렀다. ‘해외 영화는 많이 봐서 내용을 다 아니까 더…
한국 강릉, 홍순태
어머니의 심부름
저는 삼 형제 중 둘째입니다. 저희 형제들은 호주 멜버른에 흩어져 살고 있고, 부모님은 멜버른에서 차로 아홉 시간 걸리는 애들레이드에 거주하십니다. 저희는 일 때문에 자주 부모님을 뵈러 가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저희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와서 돌봐주십니다. 한 날은 형이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렸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어머니가 당장 형 집으로 가셨을 텐데 하필 당신도 몸이 편찮으신 데다 바쁜 일까지 겹쳐서 움직이기가 힘든 처지였습니다. 늦은 밤, 어머니는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연욱아, 혹시 엄마 대신 형한테 죽 좀 쑤어서 갖다줄 수 있을까?” “죽이요?⋯ 네, 알았어요. 그런데 내일 제가 일찍 일어나야 해서 지금은 곤란해요. 내일 해서 갖다 줘도 되죠?” “지금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내일이라도 꼭 부탁한다, 아들.” 사실 귀찮았습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었지만…
호주 멜버른, 정연욱
진정한 휴식
많은 직장인들이 새해 달력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연휴 날짜를 세어 보는 것이다. 그만큼 연휴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큰 행복을 준다.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2018년 가을은 행복의 절정이었다.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추석 연휴가 5일, 뒤이어 개천절과 한글날이 있어 장장 7일이나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 ‘충분히 쉬었으니 오늘부터 열심히 일해보자’는 각오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거뜬히 해결하던 일이 갑자기 헷갈리고, 여러 절차를 거쳐서 진행해야 할 일을 그냥 처리하다 반려가 됐다. 서류를 작성할 때는 주요 업무 내용을 빼먹어서 상사에게 혼나기도 했다. 예전의 빠릿빠릿하던 상태로 돌아가기까지 며칠 고생했다. ‘내가 요즘 왜 이러지?’ 퇴근하고 나서 대충 씻은 뒤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봤다. 추석 연휴 때 하루 종일 뒹굴뒹굴하면서 TV를 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한국 사천, 이재욱
해가 지기 전에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올 때쯤 영국 모든 도시에 록다운(lockdown, 봉쇄)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연일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서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회사도 재택근무를 시행해 평소 같이 모이는 시간이 적던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편하다는 이유로 툭툭 던지는 말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하루는 사소한 일로 시시비비를 가리다 언성이 살짝 높아졌습니다. 집 안에 감도는 불편한 공기를 애써 모르는 체하며 ‘그래도 내가 옳았어’ 하는 마음으로 창밖을 응시하는데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며칠 전 설교 영상에서 들은 어머니 말씀이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미안하다고 말해보세요.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어도 먼저 미안하다고 해봅시다. 상대방이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닌데 왜 미안하다고…
영국 맨체스터, 김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