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추수 때가 되면 농가에서는 일손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부지깽이도 누워 있을 틈이 없다고 할 정도로 바쁘지만 일손은 늘 모자라지요.
안타까운 마음에 볕 좋은 어느 휴일, 시온 식구들과 함께 농촌 일손돕기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저희가 간 곳은 경북 영주에 위치한 사과밭이었습니다. 과수원은 새빨갛게 잘 익은 사과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과수원 주인에게 오늘 할 일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들었습니다. 사과를 딸 때 유의해야 할 점부터 박스에 담는 일까지 쭉 이야기한 주인은, 수확한 사과를 박스에 담는 마지막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며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던져서 담는 것은 물론 꾹꾹 눌러 담아도 안 되고, 특히 땅에 떨어진 사과는 절대 박스에 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흠집이 없어 보여도 껍질을 벗겨 보면 속이 멍들고 곪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의사항을 다 듣고, 본격적으로 사과 수확에 나섰습니다. 2~3미터 남짓한 높이의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는 정말 탐스러웠습니다. 사과나무를 처음 본 저로서는 작고 가냘픈 가지에 열매가 잔뜩 달린 모습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과수원 바닥에는 은박 비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열매가 잘 익으려면 햇빛을 충분히 쬐야 하는데, 사과의 밑부분과 뒷면에는 빛이 잘 닿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때 은박 비닐을 깔아 놓으면 빛을 반사시켜서 사과가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분주하게 사과를 따던 중, 잎이 열매에 찰싹 달라붙은 사과를 발견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잎을 떼어내니 햇볕을 충분히 받은 부분은 빨갛게 잘 익었지만, 잎으로 가려졌던 부분은 푸른 빛이 감돌았습니다. 햇빛이 열매의 생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부분이 설익어도 그 사과는 상품 가치가 뚝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장 주인은 사과를 상자에 포장할 때, 일일이 살펴서 새빨갛게 잘 익은 극상품 사과만 담고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다른 데에 담았습니다.
사과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동안 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적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알곡과 가라지를 선별하실 때 이와 같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나는 과연 극상품으로 분류될 수 있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혹 겉모습은 알곡처럼 보이지만 속사람은 아직 덜 익거나 상해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춰주신 생명의 빛에서 멀어져 아직 여물지 못한 성품은 아닌지도요.
겸손, 섬김, 배려, 말씀의 전신갑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르침은 전부 우리를 완성품으로 만들어 천국 곳간에 들이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곡 대열에서 탈락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시며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으로 돌봐주고 계십니다.
저를 비롯한 하늘 가족들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빛으로 심령을 가득 채우고, 하나님의 본을 따라 서로 돌보고 보살피다 보면 언젠가 알곡의 모습으로 영글어 있을 것입니다.
시작할 때만 해도 농가에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끝나고 보니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깨달음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제 깨달은 만큼 행하는 일만 남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