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어보고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쫄면을 만들 때 썼던 깻잎과 콩나물 약간, 비빔밥을 해먹고 남은 당근과 베이비채소 몇 줌, 미나리와 쑥갓과 알배기 배추 1통. 음식 재료로 쓰고 조금씩 남은 채소와 나물들이 냉장고 한편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두었다가는 시들어버릴 자투리 재료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부침개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해 날씨와 어울리는 음식이 될 것 같았습니다. 부추전, 김치전, 배추전, 감자전, 파전 등 보통 부침개에는 주 종목 재료가 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쑥갓처럼 씁쓸한 맛을 지닌 나물이 향이 진한 깻잎과 어울릴까? 독특한 맛이 나는 당근과 고소한 콩나물이 서로 맞을까? 미나리와 배추는?’
채소들의 향과 맛과 모양이 워낙 제각각이라 걱정은 됐지만 싱싱할 때 한번에 먹으려면 부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냉장고 안에 있던 채소와 나물들을 몽땅 꺼내 다시 한 번 깨끗이 씻고 다듬었습니다. 그다음으로 약간의 성질 죽이기(?)에 들어갔습니다. 억센 배추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간을 해서 재워두고 미나리는 굵은 대를 제거한 뒤 싱싱한 이파리만 남겼습니다. 향이 진한 쑥갓과 깻잎은 잘게 채 썰어 물에 담가두었습니다. 콩나물도 적당한 크기로 썰었습니다.
잘 손질된 재료들을 한데 모아 얼음물에 밀가루와 부침가루를 풀고 청양고추와 계란을 넣어 조물조물 버무리자 알록달록한 반죽이 그럴싸해 보였습니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진리가 통하기를 바라며 정성껏 부침개를 만들었지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맛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쑥갓은 고급스러움을, 깻잎과 미나리는 좋은 향을, 콩나물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배추는 아삭한 식감을, 베이비채소와 당근은 예쁜 색을 내면서 우려와는 달리 일품 부침개가 탄생했습니다. 맛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태 먹어보지 못한 훌륭한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서로 다른 재료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이 어우러져 맛있는 반찬으로 거듭난 것을 보면서, 이 시대 우리 하나님의 교회에서 놀랍게 이루어지고 있는 복음의 역사에도 이와 같은 이치가 배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 각자의 개성대로 살던 우리가 시온에 모여 자신의 성정을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로 연합하니 지금과 같은 은혜로운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 남은 시간도 하나님 안에서, 나의 과하고 부족했던 부분들을 말씀으로 세세히 고침받고 시온 식구들과 더욱더 연합해 온 인류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