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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7일

엄마의 반쪽짜리 기억

한국 서울, 박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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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어느 늦은 밤, 갑자기 아랫배가 심하게 아렸습니다. 단순한 체증으로만 생각했는데, 엄마는 증세가 심상치 않다며 저를 응급실에 데리고 갔습니다. 엄마의 예감대로 진단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며칠만 늦었어도 복막염으로 번질 만큼 맹장이 부풀어 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고요. 엉겁결에 곧바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대에 누웠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면서 신음이 절로 났습니다. 신음은 곧 비명이 되었습니다. 병실에 다른 환자도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의사 선생님의 부탁도 소용없었습니다. 제 비명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병실에 들어오려던 아빠와 남동생이 밖에서 듣고는 차마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엄마가 엄살을 떠는 저를 달래셨지만 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서 아프게 만들었느냐고 억지를 쓰기까지 했으니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제가 아픈 이유는 엄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급히 병원에 데려온 사람도, 늦은 시간에 수술이 끝날 때까지 애태우며 기다려준 사람도 엄마였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은커녕 애꿎은 원망만 늘어놓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합니다.

소리소리 지르며 온갖 난리를 피우던 저는 진통제를 맞고서야 겨우 잠잠해졌습니다. 통증과의 사투는 끝났지만, 며칠 동안 움직이는 것은 고사하고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엄마는 제 옆에 꼭 붙어서 남은 링거 주사액을 시시때때로 확인하고, 제 몸을 씻겨주는 등 간호에 온 정성을 쏟았습니다. 딸 간호하랴 틈틈이 집안일 하랴 심신이 말도 못하게 고단했을 텐데도 엄마는 제가 퇴원할 때까지 한 번도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궁금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나 옛날에 맹장 수술 끝나고 나서 엄청 소리 질렀던 거 기억나?”

엄마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때 언제 제일 힘들었어?”

“당연히 네가 수술실에 들어갔었을 때지.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렸는데….”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어?”

“지루할 틈이 어딨니? 수술하는 내내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지.”

어쩌면 엄마가 일부러 모른 척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엄마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신기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다 깰 정도로 난리를 쳤는데 정작 엄마의 기억에는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요.

하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하늘에서 지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를 살리시려고 이 땅까지 오셨지만, 저는 감사드리기는커녕 힘든 상황이 닥치면 내 아픈 것만 생각하고 원망을 내뱉었습니다. 철없는 자녀에게서 가시 돋친 말을 들으시면서도 속상한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시고, 더욱 따뜻한 사랑으로 위로해주시고 감싸주시며 더 큰 관심과 걱정으로 보살펴주시는 하늘 어머니.

어린 시절의 철없던 제 모습을 교훈으로 삼아, 이제부터라도 원망과 불평의 싹은 잘라 버리고 하늘 어머니께 항상 감사드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혹시 모를 고난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제 영혼이 살기 위해 걸어야 하는 여정으로 여길 겁니다.

당신의 평안보다 자녀의 안위를 더 바라시는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 그 사랑을 받고 사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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