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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3일

축복된 사명, 사랑의 직무

한국 김해, 차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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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조그만 개척교회의 목회자가 살았습니다. 그쪽 집안과 저희 모친의 친분이 두터워 모태신앙인 저도 자연스레 그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이었습니다. 학생부 회장, 총무, 서기, 안 맡은 일이 없어 아침 일찍 교회에 가면 자정이 가까워서야 녹초가 되어 집에 오곤 했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자주 소란스러웠습니다. 심심찮게 갈등이 생겼고, 제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성도들이 다툼을 벌이다 아예 두 편으로 갈라져 더더욱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교회에서 왜 이런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는지 의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시지만 그 교회에는 계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믿음 생활을 그만두었습니다.

삶의 구심점이 사라지고 나니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의미가 없었습니다. 비록 몸은 교회를 떠났지만 항상 하나님이 그립고 하나님만 바라보던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다니는 교회를 여기저기 따라가보기도 하고 이름난 개신교회에서 2년제 성도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텅 빈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에는 유명한 개신교 교단에 몸담고 있는 시댁 식구들을 따라 그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오랜 시간 이 교회, 저 교회 떠돌면서 마음속에 굳어진 결론은 ‘교회는 상관치 말고 하나님만 찾자’였습니다. 안정을 찾은 듯했지만 실은 체념에 가까웠습니다.

둘째 아이 출산일이 가까울 즈음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에게 안식일에 대해 듣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성경도 꽤 읽고 웬만한 신학 서적도 독파했던 내가 기본적인 예배일조차 제대로 몰랐다니. 도서관에 달려가 역사서를 샅샅이 뒤져가며 사실 여부를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안식일만이 아니라 그분들이 전해준 한 말씀 한 말씀이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교회 역사서와 성경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진실이라고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확실한 성경의 가르침대로 진리를 영접했습니다.

애타게 찾고 그리던 하나님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에 계셨습니다. 명쾌한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쉬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성경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나와 있기에 복음 전하는 첫발을 뗀 후, 낮에는 말씀을 전하고 밤에는 늦도록 성경의 진리를 살폈습니다. 지식은 갈수록 쌓였고 열매도 맺었습니다. 친구가 진리를 영접해 금세 전도자로 성장했고, 한 자매님은 하늘 어머니를 깨닫고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깨달음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옆에서 한 식구가 성경 발표를 하는데 웬일인지 한 말씀, 한 말씀이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낱알로 흩어져 있던 진주가 실에 꿰어져 아름다운 목걸이로 완성되는 느낌이랄까요.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예언과 비유가 ‘하늘 어머니’라는 진리의 결정체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한순간에 깨달아졌습니다. 어머니는 멀기만 한 하나님이 아니라 정말 내 영혼의 어머니셨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진리를 전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평생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이 이뤄졌으니까요. 서울에서 김해로 이사한 뒤에도 풍성한 열매가 뒤따랐고 복음의 직책도 허락받았습니다. 세상에 복음처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매사에 신중하고 맺고 끊는 것을 확실히 하는 성격이라, 복음 일을 할 때도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 모든 계획이 착착 이뤄지면 말로 다 못 할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처럼 하지 않는 식구들이 답답했습니다. 목표와 계획을 현명하게 세워서 그대로만 하면 안되는 일이 없는데 복음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낙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해가 안 됐습니다. 알게 모르게 고난을 받는 식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금만 더 지혜롭게 행동하면 굳이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싶었습니다. 아픈 속도 모르고, 안타까운 마음에 나름대로 도움을 준다며 충고한 말들이 식구들에게 상처가 될 줄은 알지 못했지요.

그러던 중 제게도 뜻하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타인의 것으로 치부했던 고난이 막상 제 것이 되니 계획도 논리적인 생각도 아무 의미가 없고, 오직 의지할 분은 하늘 어머니밖에 없었습니다.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힘들고 아픈 이 시간을 이겨낼 수 있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잡아주시지 않았다면 제 영혼은 그때 쓰러져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만 바라보며 참고 견디자 어느 순간 구름이 걷히고 맑은 날이 찾아왔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제 눈에 차지 않던 식구들이 달리 보였습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은 사실인가 봅니다. 믿음의 길에서 마주치는 시련은 누군가의 잘못이나 탓할 일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거듭나기 위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임을 깨달은 거지요.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도 식구들이 왜 힘들어하는지, 얼마나 괴로운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릇된 잣대를 걷어내고 나니 식구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한다며 답답하게 여겼던 식구들은 사실 자신의 십자가를 의연하게 짊어지고 꿋꿋이 역경을 헤쳐나가는, 누구보다 지혜롭고 강인한 하나님의 아들딸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염려하며 한 생명 살리려 희생하는 한분 한분이 자랑스럽고 빛나 보였습니다. 원래 미워할 이유가 없는 형제자매인데 제 마음의 눈이 비뚤어져 있어 사랑으로 바라보려야 볼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후에도 저를 흔들어놓으려는 듯, 이런저런 시련은 몇 번이고 들이닥쳤습니다. 이깟 일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약한 마음은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서러워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힘들어 축 처져 있노라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 제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복음의 사명을 내려놓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이만큼 했으면 충분하다고.

긴 기도 끝에 어머니께서 주신 답은 ‘복음’이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복음의 길에서 엇나가지 않도록 제 영혼을 끌어안아 주셨지요. 더는 안 되겠다 싶은 상황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마음을 먹으면 어느새인가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복음의 발걸음을 옮기면 어머니께서는 한 영혼 살리는 기쁨으로, 지친 심령을 다독여 위로해 주셨습니다.

교회 바로 앞 주택가에 사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젊어서 온갖 종교를 섭렵하셨지만 진리를 못 찾아 지금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마치 예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성경도 얼마나 많이 읽으셨는지 한 말씀 전해드리면 “그래, 그런 말씀 있다. 말해 봐라” 하며 구절을 줄줄 꿰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은 육체로 다시 임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셨습니다. 더 이상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으셨고 저희를 만나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그 집을 지나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습니다.

몇 달 뒤 어느 안식일, 다른 때보다 좀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길을 걸으며 문득 어르신이 생각나던 참에 저 멀리서 걸어오시는 어르신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안녕하셨어요!” 인사를 하며 달려가 어르신께 안겼습니다. 멋쩍으면서도 반가우셨는지 어르신이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내한테 뭐 바랄 게 있다고 내를 이리 사랑하노.”

대가를 바란다면 그것이 사랑일까요. 진리가 아니었다면 얼굴도 이름도 몰랐을 이를 왜 그리 사랑하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제 영혼에 이식되어 이기적이고 계산적이었던 제가 타인을 사랑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은 어르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드릴 것도 없고, 얼렁 달란트를 남겨서 쪼매라도 보답해야 하는데 저 할망구들이 말을 안 듣는다”며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애타하십니다. 어르신의 진심이 곧 누군가의 가슴에 생명의 꽃을 피우리라 믿습니다.

진리를 영접할 때 배 속에 있었던 아이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아이도 이제는 의젓하게 엄마를 챙길 줄 아는데 저는 여전히 어머니께 드리는 것이라고는 걱정뿐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내 품에 있는 것만도 고맙다며 미소 지어 주십니다. 이따금 생각해봅니다. 부족하고 모난 나를 시온으로 이끌어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끝까지 복음의 터 위에 붙잡아주신 뜻이 무엇일까. 제게 아직도 사랑이 부족해서, 더 채워야 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늘 어머니를 깨달았고, 어머니를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리의 결정체는 어머니심은 알았지만 어머니가 사랑 그 자체이신 것은 몰랐습니다. 어머니께 한없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왜 저는 살붙이 형제자매를 오래도록 사랑하지 못했을까요.

각자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역할이 있고 은사가 다르건만 저는 식구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저처럼 행동하기를 바랐습니다. 마치 손이 발에게 “왜 손처럼 행동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식이었지요. 저의 편협한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사랑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사랑은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인데도….

그러고 보면 열 달란트 복음운동은 더 많이 사랑하라고 주신 사명인 것 같습니다. 사랑만 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을, 사랑은 뒤로 미뤄두고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하며 내 고집과 습관에 치우쳤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아직 저에게 선뜻 다가오지 못하는 식구가 간혹 있습니다. 제가 말투도 다르고 다소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실은 저의 모습이 아직 온전히 거듭나지 못해서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티 없고 흠 없는 사랑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음의 발걸음을 옮길 때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되든지 인연이 닿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 다짐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려고 요즘은 파 한 단을 사러 슈퍼에 가도 꼭 한 말씀 건네고 나옵니다. 한번씩 들르는 미용실의 직원은 진리를 듣고 놀라워하다가 근거 없는 비방을 듣고 마음을 닫았지만 얼마 전부터 “하나님의 교회는 참 따뜻해요” 하며 시온에 오기를 즐거워합니다. 결혼 전 하나님을 믿었지만, 집안전통을 중시하는 시댁의 영향으로 신줏단지를 두고 살며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망설였던 자매님도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영혼도 사랑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사랑 앞에 불가능은 없고 진심은 반드시 통하는 법입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하고, 세상 수많은 직업 중에 사랑할 수 있는 직무를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그 사랑을 한 사람, 두 사람에게 전하다 보면 모든 이의 가슴에 어머니의 사랑이 싹틀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사랑하고 사랑하렵니다. 사랑이신 어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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