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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한국 안양, 김정하

2994 읽음

‘오늘 저녁은 뭐 먹지?’

퇴근길에서부터 싱크대 앞에 서기까지, 머릿속에 맴도는 고민거리다. 직장을 옮기면서 시작한 자취 생활로, 지금까지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던 일들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저녁을 차리는 일이다.

저녁 식사 타이밍을 놓친 어느 날이었다. 늦은 저녁이라 거창한 요리를 하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전날 먹은 밑반찬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먹을 만한 게 있나 찬장을 살펴보다가 볶음김치 통조림을 발견했다.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딱 떠올랐다. 김치볶음밥이다. 이왕이면 맛있게 먹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조리법을 찾아보았다. 필요한 재료도 집에 다 있고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 곧바로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냉동실에 얼려둔 대파를 잘라 넣었다. 파기름을 내려고 살살 저어가며 볶기 시작하자, 폭죽 터지듯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급하게 불을 줄였지만 파에서 나온 수분이 기름을 만나 내뿜는 소리는 요란했다. 서둘러 참치를 넣고 뒤적거린 후 팬의 가장자리 쪽으로 간장을 부었다. 그러자 간장이 확 끓으면서 2차 폭죽, 아니 폭격이 시작됐다. 깜짝 놀라 불을 껐는데도 폭격은 주방 곳곳에 검은색 흔적을 남겼다.

프라이팬의 열기가 식을 즈음 나는 반 포기 상태로 볶음김치와 고춧가루를 넣고 재료를 섞은 뒤 밥을 볶아 마무리했다. 완성품은 인터넷상의 사진과 사뭇 달랐다. 맛 보기가 겁나 식사를 미루고 일단 사태 수습부터 하기로 했다.

타일 벽에서부터 싱크대 주변까지, 행주를 몇 번이나 빨아가며 닦고 또 닦았다. 그렇게 주방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서야 밥 한술을 뜰 수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요리 시작하고 한 시간 반 정도가 흘러 있었다. 식은 김치볶음밥은 배고픔 때문인지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상을 펴서 본격적인 식사를 하려다가 ‘전화 좀 자주 하라’는 아빠의 부탁이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아빠.”

“어, 그래. 저녁은 먹었어?”

나는 먹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이제야 먹는다고 하면 이어서 듣게 될 말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수화기 저 멀리 엄마와 동생의 웃음 섞인 말소리가 들렸다. 나도 마치 한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는 순간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다 식은 김치볶음밥이 엄마가 챙겨준 따듯한 집밥과 비교되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엄마도 주방에서 폭죽 쇼를 경험했을까?’

‘엄마도 예상치 못한 폭격을 피해가며 가족들을 위한 요리를 만드신 걸까?’

밥상에 가려졌던 엄마의 수고를 들여다본다. 우리가 알아주지 않아도 엄마는 끼니때마다 묵묵히 당신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드셨다. 그사이 나는 쉬거나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러면서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란 한마디로 값을 치르고 그 수고를 당연시했다.

밥상 차리는 일이 이렇게 힘든 건 줄 알았으면 엄마가 밥 먹자 부를 때 바로 달려가 상 앞에 앉기라도 할걸. 평범한 반찬이어도 투정하지 말고 감사히 먹을걸. 왜 그렇게 못했을까?

엄마가 해주신 집밥이 그립다. 아니, 집밥을 사랑으로 만들어준 엄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