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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으라

2280 읽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너희는 가서 많은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이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며 제자 삼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다 가서 제자를 삼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고자 하시는 전도자의 자격 조건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고 과연 오늘날 우리 자신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서 부족함이 없는지 되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장 16∼20절

“제자를 삼아”라는 말씀을 영문 성경에서 살펴보면 “make disciples” 즉 “제자를 만들라”고 되어 있습니다. 스승이 지닌 모든 것,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행하는 은혜로운 모든 마음이 제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계승되기 때문에 제자를 만드는 스승은 전도자로서 먼저 갖추어야 될 부분들을 온전하게 갖추어야 합니다. 훌륭한 정신과 훌륭한 믿음이 깃들어 있는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양산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제자들에게 선치 못한 모본이 되어 육적인 것과 인간적인 욕심만 전하게 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하고 가르쳐야 할 과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문화와 영적 세계의 관습을 배우는 과정 속에 있으므로 이를 더욱 열심히 배워서 우리가 배운 바를 모든 족속에게 전할 만한 자격을 온전히 갖추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음의 전도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도자의 자격 요건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도자의 자격 요건

첫째, 성령 충만한 자가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장 8절

사람의 인위적인 계획과 지식, 지혜에 따라서 이루어 가는 복음의 역사가 아니기에 성령의 지도하심과 인도를 따라서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마음 가운데 항상 하나님의 뜻이라면 행하기를 즐겨하는 중심을 온전히 갖추었을 때 전도자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라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전도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든지 자신의 의견과 고집,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줄 아는 믿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선지자로 쓰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의 도구로 쓰셨다는 사실을 신구약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전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전도에 임할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구원의 확신을 소유한 자라야 합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 5장 11∼15절

무엇이든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성령 시대의 구원자이신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것을 전하고, 그 증거를 내보일 수 있는 전도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실천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의 인도를 따르는 우리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의 확신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어야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깨닫고,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을 바라보며 영적 세계에 대한 영안이 열린 순간들이 본인에게 깊은 감명으로 새겨져 있을 때에 제자에게도 역시 그러한 감동을 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가장 강렬한 믿음의 순간들을 확신을 가지고 전해주게 된다면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축복을 구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셋째,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 20장 7∼9절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전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어떤 형식과 권유에 의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전도자가 아닙니다. 누가 권유를 하든, 권유치 않든 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확신하여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 자세를 갖게 될 때에 가서 제자를 삼을 만한 전도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요 민족과 나라들이 대적하여 일어나고 일월성신에 징조가 있으리라 하신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죽어 가는 저들을 살릴 수 있기에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과, 중심이 불붙는 듯한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불붙지 못한 심령으로 전하게 되면 듣는 사람도 불붙지 못한 미지근한 상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애발스럽게, 그리고 애타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히 증거할 수 있음은 불붙는 듯한 뜨거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행 4장 16∼20절

사도들은 세상의 거짓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외치고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택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하시며 깨닫게 하신 것은, 이 시대 우리들로 하여금 보고 들은 그대로 가서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장에도 그저 가라고만 하셨지 초대받은 곳으로 찾아가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든지 가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뜨거운 마음으로 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는 귀한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넷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강인한 믿음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장 16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알며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강인한 믿음을 소유한 자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진리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훼방도 있을 수 있으며 조롱과 핍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신 대로 전해야 되겠습니다.

오직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힘과 권세가 복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우리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복음 전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복음 전도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전도자들이어야 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장 23∼25절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는 사람의 수효가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에서 살아 움직이며 역사하는 사람이라야 복음을 전할 전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영원 세세토록 변하지 않는 생명의 말씀으로 충만히 무장하고 있어야 때에 따라 영의 양식을 나눠줄 수 있는 지혜로운 전도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가진 말씀으로 제자를 만들어 하나님 뜻 가운데서 바르게 자라도록 지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섯째, 기도로 심령에 성령의 불을 지필 수 있는 전도자라야 합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나(사무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 ” 삼상 12장 20∼25절

하나님의 마음과 뜻대로 행하는 충실한 제사장으로 일컬음을 받은 사무엘은 하나님을 진실히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는다 하였습니다.

자기 중심이 뜨겁지 않고서는 남의 중심을 데울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불을 지펴 주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믿음의 불을 지필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써 진리의 횃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여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사랑으로 영혼의 병을 치유하는 영적 의원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영생의 증거를 남겨주실 때 의인을 구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입장을 의원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장 12∼13절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라는 질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 치명적인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사랑과 희생, 정성이라는 치료 방법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을 대신해서 속죄제의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우리들이라면 병든 자에게 꼭 필요한 의원의 입장으로 죽을 병에 걸린 영혼들에게 다가가, 사랑과 희생, 정성이라는 그리스도의 치료법으로 그들을 살려내야 하겠습니다.

영적 의원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참고하기 위해 조선시대의 명의 허준의 이야기를 잠시 살펴볼까 합니다. 명의로서의 허준이 있기까지 그에게는 의술이 인술(仁術)로 옮겨지는 여러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허준이 아직 동네 의원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자신의 어머니가 다 죽게 되었다며 아무 약이라도 빨리 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병명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의원의 입장에서 함부로 약을 지을 수 없었던 허준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곽향정기산 세 첩”이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놀라기도 하고 의아해서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남루한 옷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서서 곽향정기산 세 첩을 빨리 지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허준은 노인의 말대로 곽향정기산 세 첩을 지어주고 그것을 복용한 환자는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복통으로 죽어 가는 며느리를 살리기 위해 시어머니가 찾아와 황급히 약을 지어달라 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또다시 곽향정기산 세 첩을 지으라는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허준은 예사롭지 않은 노인이라 생각하며 곽향정기산 세 첩을 지어 보냈습니다. 그 약을 복용한 환자도 역시 완치되어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이 흘러 병명이 다른 환자가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며 허 준을 찾아왔습니다. 이때도 노인은 어김없이 나타나 똑같은 처방인 곽향정기산 세 첩을 지어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로 약을 지어준 허준에게 약의 효험을 본 환자들이 찾아와 인사를 하게 되자, 허준의 마음에는 의혹이 일어났습니다.

“왜 각각 다른 병명에 같은 약을 써서 낫게 되었을까?”

허준은 노인을 따라가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자네는 약이 사람의 병을 낫게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경지가 낮은 의원의 생각일세. 경지가 높은 의원은 사랑의 기운으로 병을 치료하는 법일세. 자네가 의술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알려주는 것일세.”

허준은 비로소 의원에게서 발하는 사랑의 기운이 환자에게 감흥을 일으키게 되고 그 감흥이 환자의 중심에 믿음을 주어 병을 다스리게 된다는 깨달음과 함께,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정성을 다해서 약을 달이고 시간을 잘 맞춰 제 때에 복용시킨다면 낫지 않을 환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노인의 가르침은 허준에게 의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어 참된 인술(仁術)을 베푸는, 천하에 다시없는 명의가 되게 하였습니다.이런 이야기를 통해, 동네 의원이었을 때의 허준이 약이라는 것에 얽매여 약의 이면에 있는 큰 힘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전도를 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핵심을 모르고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나 돌이켜 봅시다.

사랑은 희생과 정성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장 8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롬 13장 10절),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 13장 34절)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크신 사랑으로 친히 희생하시고 헌신하시며 정성을 기울여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영적 환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영혼의 의원이신 하나님의 뒤를 따라 인류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과 사명을 허락받은 사람들입니다. 환자에 대한 간절한 사랑과 정성, 그리고 열의에 가득 찬 치료가 있을 때 환자의 마음에는 의원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솟아나게 되고 그 병이 깨끗이 치유될 수 있듯이, 우리들도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그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희생과 정성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규례는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희생, 정성으로 세우셨기에 가장 높은 차원에 있는 의원이 베풀어 줄 수 있는 의술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개개인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성령의 각양 은사들을 허락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있는 우리들은 그 성령의 각양 은사대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명수의 위력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 ” 겔 47장 1∼12절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성전에만 있으면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 생명수가 흘러서 온 인류 사회에 스며들어야만 영혼을 소성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복음 전도자의 자격 요건을 갖추고 나아가 국내는 물론이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많은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 수 있는 선지자들이 다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