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상 속, 크고 작은 깨달음을 나눠요.
육 남매의 엄마
엄마는 무척 상냥하고 차분한 분이셨다. 조용조용 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모습이 참 좋았다. 다섯 살까지 공주같이 커온 내게 동생이 생겼다.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에 빨간 볼이 터질 것 같던 동생은 간절히 손자를 바라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실망시킨, 남자같이 생긴 여자아이였다. 동생이 돌이 지나고 엄마 배가 또 불러왔다. 위에서 보면 발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남산 같은 배를 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유치원 행사에 온 엄마가 살짝 창피했다. ‘다른 엄마들은 예쁘게 하고 왔는데⋯.’ 엄마의 배가 그렇게 컸던 것은 그다음으로 태어난 동생이 쌍둥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딸 쌍둥이. 그때부터 엄마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빽빽 울어대는 갓난아기 둘도 모자라 말 잘 듣던 둘째까지 동생들에게 샘을 내는지 아무 곳에나 대소변을 누었고 하루 종일 징징거리면서 엄마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그때마다 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고는 했다. 가끔 새벽에…
한국 창원, 조은진
들어주소서
성품이 온화하고 한없이 여릴 것만 같은 이웃에게 어린 딸이 하나 있는데 아이도 엄마를 닮아 그런지 얌전하고 순하다. 낯도 안 가리고 혼자서 잘 노는 모습을 볼 때면 “아이고, 착하고 예쁘네”라는 칭찬이 진심에서 우러나고는 한다. 이렇게 얌전한 아이라면 데려다 키울 수 있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니 아이 엄마가 손사래를 친다. 잠깐 봐서는 모르지만 하루 종일 데리고 있다 보면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루는 꽤 오래 그 집에 머물렀는데, 아이는 제 뜻대로 되지 않자 엄마를 붙들고 징징거리며 떼쓰기 시작했다. 고집에 못 이겨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던 아이 엄마도 그게 자꾸만 반복되니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듯 결국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에 본 기사에 따르면 아이들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최악의 소음’으로 꼽혔다고 한다. 뉴욕 주립대…
한국 군포, 임지민
부모님의 관심사
저는 러시아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자주 찾아뵙기가 어려워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제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으로 근황을 전해드리고는 합니다. 지난겨울, 처음으로 우박이 내린 날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우박이 신기해서 손으로 우박을 받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습니다. 사진을 본 부모님은 거기는 벌써 우박이 내리느냐, 춥지는 않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건강히 잘 지낸다고 답했습니다. 대화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다 끝났습니다. 며칠 후 엄마가 따뜻한 장갑을 하나 사서 보내주겠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으레 날이 추워서 하는 말인 줄 알았더니 이유가 뜻밖이었습니다. 사진 속에서 우박을 받는 손에 꼈던 장갑이 너무 낡아 보여 내내 마음에 걸렸다는 겁니다. 엄마는 딸 사진은 그냥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웃으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부모님이 사준 패딩을 입고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곧바로 잘 어울린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러시아 첼랴빈스크, 강요나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수개월 동안 몸이 아팠습니다. 약국에서 여러 종류의 약을 사다가 할 수 있는 약물 치료는 다 해보았지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민간요법도 시도했는데 나아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지경까지 이르러서야 일하면서 알고 지내던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저와 상담을 진행한 후 일주일 치의 약을 처방해주며 약을 먹는 동안에는 설탕 섭취를 중단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설탕이 면역 체계를 약화시켜 회복을 더디게 만든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매일 먹는 식단에서 설탕을 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맛있는 음식에는 대부분 설탕이 들어 있었고 과일이나 주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처음 삼 일이 제일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뭐든 먹고 나면 여지없이 후식으로 달달한 음식이 당겼습니다. 간식도 참기 힘든 유혹이었습니다. 그래도 몸을 생각해서 ‘설탕이 들어간 음식은 보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결심대로 행하기 제일 힘든 순간은 좋아하는 커피가 앞에 있을 때였습니다. 평소 즐기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호이전
이삭과 같은 자녀
‘웃음이 보약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웃으면 좋은 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웃지 않는다.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웃을 일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일생에 가장 많이 웃는 시기는 이런 것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유아기인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떤 자료를 보니 아기들은 신생아 때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 행동으로 웃는다고 한다. 생후 약 8주부터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기 시작하고 사회적 교류가 왕성해지는 생후 52주 무렵에는 그야말로 웃음의 전성기란다. 우리 시온에도 이 시기의 유아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유독 웃음이 많은 아기가 있다. 평소 울음소리를 들어 볼 수 없을 정도로 순한 데다 어찌나 잘 웃는지 졸음이 와서 눈꺼풀이 무겁거나 배가 몹시 고프거나 감기가 걸려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에도 눈을 마주치고…
한국 대전, 조문경
엄마의 반쪽짜리 기억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어느 늦은 밤, 갑자기 아랫배가 심하게 아렸습니다. 단순한 체증으로만 생각했는데, 엄마는 증세가 심상치 않다며 저를 응급실에 데리고 갔습니다. 엄마의 예감대로 진단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며칠만 늦었어도 복막염으로 번질 만큼 맹장이 부풀어 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고요. 엉겁결에 곧바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대에 누웠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면서 신음이 절로 났습니다. 신음은 곧 비명이 되었습니다. 병실에 다른 환자도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의사 선생님의 부탁도 소용없었습니다. 제 비명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병실에 들어오려던 아빠와 남동생이 밖에서 듣고는 차마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엄마가 엄살을 떠는 저를 달래셨지만 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서 아프게 만들었느냐고 억지를 쓰기까지 했으니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제가 아픈 이유는 엄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급히 병원에…
한국 서울, 박수빈
진정한 영웅
미국에서는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 안내자들을 영웅으로 평가합니다. 그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노예 해방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600년대부터 1865년까지 미국에서 흑인 노예 제도는 합법이었습니다. 1800년대에 미국 북부에서는 노예제도가 금지되었지만 남부에서는 여전히 합법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노예들이 자유롭게 살고자 북부로 도망가려 했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 노예들을 자유로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많은 흑인과 백인 자유인들은 ‘지하철도’로 알려진 조직을 결성하고 함께 일했습니다. 지하철도는 노예들을 이끌어 북부로 안전하게 탈출시키던 조직으로, 조직원들은 탈출 경로를 ‘코스(trails)’, 숨겨주는 안전가옥을 ‘역(station)’, 북부로 무리를 인솔하여 안전하게 인도하는 사람을 ‘차장(conductor)’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작업은 무척이나 위험해서 지하철로의 차장들은 노예들을 해방시키고자 여러 번 생명의 위험을 무릅썼습니다. 먼저 북부로 도망친 해방 노예들은 다시 노예가 되거나 죽임을 당하는 위험을 감수하며 다른 노예를 해방시키고자 다시 남부로 돌아갔습니다. ‘차장’ 중에서…
미국 코네티컷, 칼리
아빠의 사랑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절대로 사업가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빠 때문이었다. 사업을 하셨던 아빠는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출장이 잦았고, 출장이 없는 날에도 거래처 사람들과의 식사 약속이 잡혀 있어서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어쩌다 집에 계신 날에도 아빠는 늘 통화 중이었다. 이 통화를 끝내면 또 다른 전화를 받느라 때로는 몇 시간씩 수화기를 붙들고 있기도 했다. 아빠가 집에 계시든 안 계시든 불만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투덜거렸다. “아빠는 일밖에 몰라요.” “너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는 거야.”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가 가족보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고, 당신이 좋아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믿었으니까. 아빠가 나처럼 내성적이고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사업적인 대화가 끊이지 않는 식사보다 조용한 곳에서의 독서나 산책을 더 선호하시지만 엄마 말대로…
싱가포르, 웨이웨이
사랑의 기억
어린 시절, 막내인 저는 항상 엄마의 심부름을 도맡았습니다. 시장에서 사 와야 할 품목을 엄마가 종이에 적어주시면 종이를 쥐고 집 근처에 있었던 시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팔려고 내다놓은 귀여운 강아지들을 발견했습니다. 조그만 상자 안에 담긴 서너 마리의 강아지들의 목에는 각각 다른 색의 리본이 예쁘게 매여 있었습니다. 까맣고 동그란 눈과 코, 살짝 접힌 귀가 너무 귀여워서 심부름하는 것도 잊고 쪼그리고 앉아 강아지들을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아줌마, 강아지들 태어난 지 얼마나 됐어요? 한 마리에 얼마예요?” 그중 연두색 리본을 한 강아지가 유난히 저의 손길을 잘 따랐습니다. 가슴과 발에 흰색 털이 있는 강아지가 너무 예뻐서 제가 사러 올 때까지 절대 팔면 안 된다고 아주머니에게 신신당부한 뒤 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습니다. “엄마, 엄마. 지금 시장에서 어떤 아줌마가 강아지를 팔고 있는데 너무 귀여워!…
한국 부산, 류미경
싱고니움이 되살아난 이유
몇 해 전, 식물을 키우고 싶어서 화분 가게에 들렀습니다. 정성 들여 키울 자신은 없었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라는 식물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가게 아주머니가 ‘싱고니움’을 권했습니다. 녹색 바탕에 은백색 무늬를 품은 싱고니움의 싱그러운 잎을 보니 기분도 상쾌해지고, 게을러야 잘 키울 수 있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어 그대로 집에 데려왔습니다. 아주머니의 말처럼 싱고니움은 정말 잘 자랐습니다. 햇빛도 바람도 없는 장소에 두고 가끔씩만 물을 줘도 새 잎이 나왔고, 먼저 나온 잎들은 건강한 초록빛을 파릇파릇 뽐냈습니다. 바라던 대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한동안 잘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녹색 잎들이 누렇 게 변하면서 축 늘어졌습니다. 반짝이 던 은백색 무늬도 눈에 띄게 흐려졌습니 다. 이유를 몰라서 햇빛이 잘 드는 창가로 옮기고 평소보다 물을 더 자주 주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처음과 달리 몇 개 남지…
한국 서울, 정은정
관심으로 되살아난 산세비에리아
텔레비전에 식물을 잘 키우는 한 아이가 나왔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던 저를 집중하게 한 것은 식물을 대하는 아이의 태도였습니다. 아이는 밖에 버려진 죽은 식물을 살리려고 집에 가져오기도 하는 등 식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식물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듯 말을 거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아이의 인터뷰 내용은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식물은 생명이에요. 생명이 죽는 것은 슬픈 일이에요.” 아이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감탄하다가 슬며시 부끄러워졌습니다. 집에 있는 식물들을 건성으로 키우다 얼마 전, 비교적 키우기 쉽다는 산세비에리아를 두 개나 시들게 한 전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실 한쪽에 힘없이 늘어진 산세비에리아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죽은 식물도 관심을 주면 살아날까?’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기대도 되었고요. 그날부터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산세비에리아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다시 예쁘게 자랄 수 있으니 힘내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한국 부산, 유승희
경건에 이르는 연습
나는 꽤 공격적인 사람이었다. 마음먹은 일이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금방 답답해하고, 조금이라도 수틀린다 싶을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들이받기 일쑤였다. 그 탓에 주변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든 에피소드는 일일이 손꼽지도 못할 정도다. 학창 시절, 시온에서 동네 인근의 산으로 환경정화활동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쓰레기 수거와 함께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캠페인도 진행됐다. 많은 인원이 모인지라 오가는 이웃들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런데 이 성격이 또 말썽이었다. 등산로 보수를 위해 흙을 잔뜩 담은 무거운 포대를 계속해서 나르는 일이 힘에 부치자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또래 식구들의 조그마한 장난에도 과하게 반응하다가 기어이 일을 냈다. 묵직한 포대를 지고 오르막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창창한 나이에 그 정도밖에 못 드냐는 어느 식구의 농담에 불끈 화를 내고 만 것이다. 그날 밤 부모님께 흠씬 혼이 나고 방에서 한참을…
한국 서울, 유우승
내 죄로 팔아버린 형제
창세기에서 시기심 때문에 동생 요셉을 미디안 사람에게 노예로 팔아버린 야곱의 아들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죄를 지은 그들이 안타깝습니다. “···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창 42장 36절 야곱은 라헬이 낳은 요셉과 베냐민만 아끼고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갔다가 포로로 잡힌 시므온에 대하여 요셉을 잃은 슬픔과 동일하게 언급하는 장면에서, 이들을 똑같이 사랑한 야곱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위치에 불만을 품어 형제를 팔아버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사실 제 모습도 야곱의 아들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훌륭한 달란트를 가진 형제자매를 보면 하나님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듯해 공연히 못마땅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보다 못한 영적 철부지가 바로 저였습니다. 이야기…
호주 케언스, 김민주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학교 과제를 하다가 ‘필사본’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해 책이 귀했던 조선시대에는 책을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가 빈번했습니다. 이렇게 필사로 만들어진 책이 ‘필사본’입니다. 필사는 필사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 주로 했지만, 가족 단위 특히 자녀를 둔 부모와 조부모들에의해 행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제 막 글을 배우는 자녀들은 부모님이 직접써준 글씨체를 따라 적으며 글을 익히고, 책에 담긴 교훈적인 메시지를 배울 수 있어 필사본은 교육 자료로 곧잘 쓰였다고 합니다. 멀리 사는 자녀들은 필사본을 통해 자주 뵙지 못하는 부모님의 향취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임경업전 필사본’입니다. 많은 필사본 중에서도 이 필사본이 특별한 것은 소설 끝에 쓰인 필사 후기 때문입니다. 한 아버지에게 소설을 매우 좋아하는 딸이 있었습니다. 딸은 멀리 시집을 갔다가 집안에 일이 있어 친정에 잠시 들렀습니다. 온 김에 아버지가…
한국 서울, 이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