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

가족 사랑 수기

잔잔하면서도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비 오는 날

장대비가 내립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에 밖에 나갔다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겠지만, 저는 비 오는 날이 참 좋습니다. 문득 ‘비 오는 날이 왜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기억의 초점이 과거로 돌아가 초등학생 때에 머물렀습니다.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님은 저희가 먹을 아침밥을 차려놓고 이른 새벽 논과 밭으로 나가곤 하셨습니다. 하루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에 갔는데 하교할 때쯤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그 시절에는 휴대폰도 없었을 뿐더러, 부모님과 연락이 된다 한들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올 만큼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다가 멈출 기미가 안 보여서 그냥 맞고 가기로 했지요. 빗속을 헤치며 걷다 보니 옷도 가방도 책도 쫄딱 젖고 말았지만 손에 막대기 하나 들고 개구리와 풀들에 장난치며 집에 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흠뻑 젖은 채로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반기며 부랴부랴 수건과 갈아입을…

한국 서울 윤주영

어머니의 사랑 안에서

어린 나이에 종갓집에 시집와 시부모 봉양에 시동생들 뒷바라지에 5남매 낳아 기르며 고된 농사일까지. 엄마는 정말이지 일복을 타고난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살림살이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큰언니 수술과 더불어 아빠의 건강도 나빠져 엄마는 공장 일까지 해야 했습니다.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밀린 집안일 하느라 편히 쉬지도 못하셨지요. 그땐 세탁기가 없을 때여서 추운 겨울에 빨래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수도가 얼기라도 하면 냄비에 물을 끓여 퍼 나르느라 바빴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저희 남매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엄마가 뭐 먹을 거 안 주시나’ 하며 늘 배고프다고 졸라대기만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간혹 수업료나 육성회비가 밀릴 때면 그런 경우를 대비해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고 바지 안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 두었던 돈을 몰래 쥐여 주시며 학교에서 기죽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면, “엄마한테는 고맙다고 하는…

한국 인천 김순호

따뜻한 하루

갑자기 등에 담이 오는 바람에 꼼짝도 못하고 말하기도 힘든 날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통증이 더해, 설거지와 집안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방에서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해도 쉽게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등이 아프니 똑바로 눕기도, 옆으로 눕기도 힘들고, 기침에 열까지 나기 시작했습니다. 방에서 혼자 끙끙 앓고 있자니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뜨거워진 이마에 물수건을 얹어주시고 옆에서 병간호를 해주시던 엄마 생각에 조금 잠이 들었나 싶었을 때, 머리에 차가운 물수건이 올라왔습니다. 큰딸이었습니다. 큰딸은 엄마가 아파하는 것을 보고 어느새 옆에 와서 물수건도 올려주고, 다리도 주물러주고, 발바닥까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지만 이제 엄마를 보살펴 줄 정도로 장성하게 컸구나 싶었습니다. 큰딸이 엄마를 보살피니 작은딸도 옆에서 저를 토닥토닥하며 재워주었습니다. 이렇게 예쁜 딸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하늘 어머니께서 딸들을 통해…

한국 인천 서현주

37년 만의 고백

엄마는 곱디고운 스물네 살에 버스 한 대 다니지 않는 외딴 시골에 시집와, 시부모님 모시며 시동생과 자식 삼 남매 뒷바라지를 하셨습니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형수로서 그 역할에만 충실하여 살다 보니 자신의 이름은 잊은 지 오래되셨지요. 그런 엄마가 어느덧 61번째 생신을 맞으셨습니다. 온 가족이 다 모인 자리, 손주들의 사랑 공세가 끝나갈 무렵 아버지가 종이 한 장을 들고 오셨습니다. 그러고는 쑥스러우신 듯 “여보”라는 말로 손수 쓰신 편지를 읽기 시작하셨습니다. “61번째 생일을 축하하네. 박씨 가문에 출가하여 시어른 모시고 시집 산다고 고생이 많았네. 우리가 결혼한 지 어언 37년이 되었는가 봐. 세월은 정말 빠르기도 하지.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게 마음이 아프구먼. 앞으로는 잘할 것을 약속하네. 결혼해서 똘똘한 삼 남매를 낳아줘서 정말 고맙고, 또한 다들 결혼해서 손자 손녀 다섯 명이나 봤으니 얼마나 흐뭇하고 좋은지. 앞으로 당신과 남은…

한국 구미 박영경

남편의 기도

제가 진리를 영접하기 전, 저희 가정은 대화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저희 가정에는 많은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우울했던 저의 삶을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바꿔주신 후부터 남편은 변화된 저를 보고 비록 더딘 믿음이지만 하나님이 계심을, 그리고 그분이 아버지 어머니이심을 마음에 새기며 깨달음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제게 할 얘기가 있다며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습니다. “나 요즘 하나님께 기도 많이 드려.” “진짜요? 무슨 기도요?” “제발 우리 아내 차 사고 나지 않게 해주세요. 안전운전 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믿습니다, 라고.” 하나님은 없다며 자신을 믿는다던 남편이 시온에 나오는 것도 큰 변화인데, 운전면허를 딴 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믿고 기도했다는 말이 제 마음에 잔잔한 감동으로 밀려왔습니다. 참으로 부족한 믿음의 가정이지만,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것에 정말…

한국 의정부 오혜인

사랑하면 쉬운 양보

“엄마가 바라는 것은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둘이서 잘 지내는 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아이들이 싸울 때마다 하는 말입니다. 초등학생인 딸과 아들은 꾸지람을 듣는 순간은 반성하는 것 같지만 돌아서면 또다시 싸우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둘이 잘 지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한 번 양보할 때마다 별 스티커를 하나씩 주는데, 별 스티커를 열 개 모으면 약간의 용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받을 스티커 용지를 만들어 놓고 무엇을 양보할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는 실천에 돌입. 2학년인 딸아이는 오빠에게 물을 떠서 주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 걸 참고 양보하기도 했습니다. 딸아이가 그렇게 별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열심히 양보하는 반면, 아들은 양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나 봅니다. 별 스티커를 두 개밖에 모으지 못했는데,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양보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라고…

한국 대구 권순혜

남편의 아침

아침잠이 많다 보니 출근하는 남편의 식사를 제대로 못 챙겨준 날이 많았습니다. 어쩌다 잠을 설쳐 일찍 일어나는 날에도 남편은 회사에서 주는 샌드위치를 먹으면 된다며 식사보다는 저의 컨디션을 더 염려했습니다. 하루는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빈속으로 출근하면 얼마나 속이 허할까?’ 그날 저녁, 남편의 아침을 차려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장을 봤습니다. 혹여나 남편이 만류할까 싶어,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하루를 알차게 보내지 못하는 것 같으니 일찍 일어나 같이 아침을 먹어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러자 남편도 그전처럼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부리나케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메뉴는 떡만둣국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아침을 먹은 남편은 든든하고 좋다며 고마워했습니다. 그러고는 아침에 회사에서 받는 샌드위치를 제게 가져다 주겠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퇴근하면서 약속대로 샌드위치를 하나씩 가져왔습니다. 먹어보니 냉장 보관용이라 차가웠습니다. 그동안 남편이 아침마다 빈속에 차가운 샌드위치를 먹었다고 생각하니…

한국 화성 김윤옥

노력으로 변화되는 가정

퇴근하고 돌아오면 늘 피곤에 찌든 저의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아내는 “어서 오세요. 오늘 많이 힘들었죠?” “와! 남편이다. 보고 싶었어요” 하고 반기며 미소 띤 얼굴로 저를 맞아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뚝뚝하게 “네” 하고 내뱉은 한마디가 전부였죠. 아내는 이에 굴하지 않고 매일같이 웃으면서 저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저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제가 밝은 얼굴로 “저 왔어요” 했을 때 아내는 무척 기뻤다고 합니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닭살이 돋는 것도 참아가며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보람을 느꼈다며 말입니다. 저희 부부도 처음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언어 습관으로 부딪힐 때가 많았으니까요. 저의 모난 성품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내는, 상황을 개선하고자 대화에 도움이 되는 책을 사서 저에게 보여주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을 보니 오히려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김포 백광운

무엇을 줄까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깬 다섯 살 딸아이가 눈을 비비며 다가왔습니다. “아빠! 회사 가는 거야?” “응, 아빠 회사 가려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딸아이에게 저는 서랍 속에 있던 작은 비스킷을 내밀었습니다. “윤지야! 아침 먹고 나서 이 과자 먹어.” “아빠가 나한테 주는 거야?” “그래. 윤지 밥 잘 먹고, 과자도 먹으라고.” 딸아이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나는 아빠한테 무엇을 줄까? 음⋯ 이 과자 하나 남겨줄까?”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니야, 윤지 다 먹어. 아빤 괜찮아. 회사 다녀올게!” 아직 어린아이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법도 한데, 작은 비스킷 하나에 자신도 뭔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특했습니다. 그날 출근길 내내 딸아이가 한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나는 아빠한테 무엇을 줄까?’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딸에게 무엇을 해줄까, 아내에게는 무엇을 해줄까?’ 하고 말입니다.…

한국 대전 여인원

부모의 기쁨과 행복은

저희 가족은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위스콘신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계획된 여행이 아니라, 병이 있다는 걸 감추어 오신 시어머니가 이제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어 조금이나마 함께할 기회를 갖고자 급작스럽게 떠나는 길이었습니다. 시어머니 걱정도 많이 되고, 어린 세 딸들을 긴 시간 동안 카시트에 앉혀 놓아야 했기에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부지런히 달려 몬태나를 지날 때였습니다. 눈앞에는 쫙 펼쳐진 도로만이 햇빛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져 피곤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세 딸들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습니다. 왜 웃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넘어갈 듯 웃어댔습니다. 그러자 남편도 따라 웃었습니다. 저도 곧 웃음이 터졌지요. 저희 가족은 그렇게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고, 감동이 스며듭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과 두려움, 불안을 떨쳐버릴 수…

미국 WA 시애틀 크리스티

한 사람이 힘들고 아플 때

얼마 전, 배가 점점 아프다가 고열이 나더니 나중에는 구토까지 나왔습니다. 결국 응급실 신세를 져야 했지요.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하나를 받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더군요. 하지만 뚜렷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병인지 알 수가 없으니 입원실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의사와 대면하려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니, 몸도 마음도 지쳐 갔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제 곁에 있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응급실에 있는 나흘 동안 제 곁을 지키며 저의 손과 발이 되어준 남편입니다. 보호자를 위해 마련된 것은 의자 하나뿐. 남편은 그 작은 의자에 앉아 쪽잠을 자며,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저를 밤낮으로 간호해주었습니다. 물도 마시지 못하는 저를 배려해 제 앞에서는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았지요. 또, 제게 열이 나는지 수시로 체크하고, 제가 시도 때도 없이 구토하는데도 싫은…

한국 김제 김상선

날마다 특별한 날

어느 화요일이었습니다. 늘 하던 대로 남편 출근을 도와준 뒤 아이들이 등교 준비를 하는 동안 방에 잠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제 앞에 아이 둘이 나란히 손을 잡고 다가와서는 동시에 말했습니다. “엄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평소 안 하던 말을 하니,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습니다. “응? 갑자기 왜?” “그냥요. 엄마에게 뭐 사 드리고 싶었는데, 이걸로 사고 싶은 것 사세요.” 그러고는 꼬깃꼬깃한 용돈을 내밀었습니다. 용돈을 받는 순간 왠지 아이들의 정성이 손에 닿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은 제 생일도 아니었고, 결혼기념일도 아니었고, 어버이날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날이었는데 아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주니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키워주신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특별한 날에 특별히 뭔가를 해주는 것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늘 부모를 생각해주는 마음에 더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 의정부 조윤주

붕어빵 아빠와 딸

“엄마! 왜 나는 엄마 안 닮았어?” “무슨 소리! 엄마 딸인데 왜 엄마를 안 닮아?” “거짓말! 오늘도 동네 아줌마가 ‘딸들이 다 엄마를 닮아 이쁘네요’ 하면서 언니들한테는 엄마 닮았다 하고 나 보고는 ‘아이고, 막내는 아빠를 닮았나 보네요’ 했잖아. 그래서 엄마랑 언니들이 다 웃었잖아.” 어릴 적, 언니들과 엄마 손잡고 나가면 어김없이 듣는 말이었습니다. 혼자 심통이 나서 입이 댓 발 나와 있으면 엄마와 언니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곤 했습니다. “엄마가 봤을 땐 우리 막내가 엄마를 제일 많이 닮았어. 아줌마가 보는 눈이 없네.” 엄마의 말에 엄마를 쏙 빼닮은 큰언니, 작은언니도 ‘너는 엄마와 입술이 닮았다’느니, ‘손이 닮았다’느니 하며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귀가 솔깃해져 거울을 가져다가 엄마 입술 한 번 보고, 내 입술 한 번 보고, 엄마 손 한 번 보고,…

한국 전주 고수정

찹쌀도넛 두 개

교회에서 학생부 모임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집에 계신 엄마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나 모임 끝나서 집에 가고 있어.” “응. 서현아, 근데….” “응?” “엄마 찹쌀도넛이 너무 먹고 싶다.” 저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고 가방을 뒤졌습니다. 가방에서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 원짜리 동전 몇 개가 나왔습니다. 찹쌀도넛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아 빵집에 들렀더니 간신히 두 개를 살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좋아하실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발걸음도 가볍게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찹쌀도넛을 내밀었습니다. “엄마! 빵 사 왔어!” “진짜?” “응, 근데 돈이 없어서 두 개밖에 못 샀어.” “고마워, 서현아.” 엄마와 찹쌀도넛을 한 개씩 나눠 먹으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평소 찹쌀도넛을 좋아하는 엄마의 영향으로 찹쌀도넛을 종종 먹곤 하지만 그날만큼 맛있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습니다. 도넛은 고작 두 개였지만 엄마와…

한국 서울 김서현

내게 힘이 되는 사람

근래에 개인적으로 준비할 일이 있어 며칠을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잠은 잠대로 못 자고, 집안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8시쯤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니 불이 켜져 있고, 식탁에는 마트 전단지가 활짝 펼쳐져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퇴근하고 먼저 돌아온 남편이 현관문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장을 보러 간 거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고 휴대폰을 보니 이미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트에 갔어?” “어, 일찍 왔네? 자기 삼계탕 끓여 주려고.” “진짜?” 놀랍고 감동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삼계탕이 먹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남편이 그걸 생각했을 줄이야! 남편이 압력솥에 밥 짓는 것을 어려워해, 식사 준비를 해주려고 서둘러 일을 마감하고 퇴근하던 차였다. 통화를 마치고 너무나 행복했다. 이 사람,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이런 살뜰한 남편을 내게…

한국 화성 안하정

비바람이 부는 날이면

나는 비가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중충한 날씨를 보면 기분이 가라앉는 것도 그렇지만 옷과 신발이 젖어 축축하기 때문이다. 기상청도 울고 갈만큼 정확하게 비를 예보하는 관절 때문에 신경통에 시달리는 것도 싫은 이유 중 하나다. 그런 내가 빗속을 걸으며 피식 웃음 지을 때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나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다. 시골이긴 해도 우리 집은 면 소재지의 중심에 있었다. 집이 학교와 가까워서 가끔 학교 운동장에 나오면 엄마가 옥상에서 빨래 너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30분은 기본이고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아이들도 적잖았던 그 시절에 나는 좋은 조건 속에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굵은 빗방울에 바람까지 더해져 힘겹게 운동장을 지나 집으로 향한 적이 있다. 체격이 작아 등에 멘 가방과 같이 학교를 다닌다는 말을 들었던 나로서는 비바람을 헤치며 걷는…

한국 군포 최재정

엄마를 대신한 사랑

“미숙아, 딸기 먹으러 와.” “미숙아, 옥수수가 너무 맛있게 됐어. 쪄 놓을 테니 와서 먹어.” “미숙아, 산에 가서 두릅이랑 취나물 뜯었는데 너무 맛있어. 먹으러 와.” 먹을 것이 생길 때마다 부르는 큰언니. 육 남매의 맏이인 큰언니는 내가 바쁘다는 걸 알면서도 맛있는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연락을 한다. 언니 집에는 대형 냉장고가 둘, 김치냉장고가 둘, 총 네 대의 냉장고가 거실 한편에 나란히 병풍처럼 서 있다. 막내아들까지 군대 보내고 집에는 언니와 형부 단 둘이라 굳이 냉장고가 많이 필요할까 싶지만, 서울에 있는 동생은 물론 미국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오는 동생들 몫까지 챙기느라 냉장고가 하나씩 늘어난 것이다. 냉장고 안은 조그만 밭에 매달려 손수 농사지은 옥수수, 고추, 감자, 토마토, 갖가지 푸성귀 등 본인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동생들을 위해 짬짬이 쟁여 놓은 것들로 늘 풍성하다.…

한국 서울 권미숙

행복한 과제

방학이 끝나기 전에 중학교 2학년 아들에게 뜻깊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부모님 직업 체험’. 유통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한 통에 18㎏이나 되는 식용유를 하루에 수백 개씩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이 매우 고된 일이라 남편은 잠시 망설이다 동의했고, 아들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아빠 일을 체험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아들은 무거운 식용유 통을 운반하는 아빠를 보며 “아빠, 팔에 핏줄이 튀어나온 게 남자다워서 완전 멋져요” 하더니 식용유 두 통을 옮기고 나서 자신의 팔뚝과 손등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엄마, 나도 아빠처럼 핏줄이 튀어나오면 멋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래, 아직까지는 힘든 것보다 외모에 관심이 있을 테지. 오늘 얼마나 버틸까?’라고 생각하며, 오늘이 아들에게 값진 경험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아들은 거래처에 도착해 아빠가 차에서 내리면 목장갑을 손에 끼고 따라 내려서 “여기는 몇 통이에요?” 하며 아빠를 도와 식용유를…

한국 의정부, 권성은

아들이 차려준 저녁을 먹으며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뜬금없이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엄마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어.” “학교에서 요리하는 법 배웠니?” “아니, 엄마는 나한테 밥 많이 차려줬는데, 나는 엄마한테 밥을 한 번도 차려준 적이 없어서 밥 한 끼 차려주고 싶어.” 아들은 오므라이스를 만들 거라고 했습니다. 할 줄 아느냐고 물었더니 인터넷으로 요리법을 알아본다더군요. 저는 아들에게 가스레인지 사용법과 오므라이스 만드는 순서를 알려준 뒤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아들도 야채를 사러 마트에 간다기에 함께 나서서 야채 살 돈을 쥐여 주고는 헤어졌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진료 시간이 길어져 남편이 퇴근할 시간까지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자 남편은 아들이 10분만 늦게 들어와 달라고 했다며,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아들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만나서 집에 천천히 들어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아들은 예상대로 오므라이스 두 접시를 만들어 놓았더군요. 자기는 만들고 남은…

한국 파주, 박경숙

가장 큰 선물

며칠 전, 제 생일이었습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어쩌다보니 하루 종일 식사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딸아이가 쏜살같이 뛰어나와 그림 편지를 내밀며 “엄마, 생일 축하해요”라고 하더군요. 노란색 종이에 볼펜으로 얼굴은 크고 몸은 작은 사람을 그려 놓고 엄마라고 했습니다. 아직 글씨를 쓸 줄 몰라 글은 아빠에게 부탁했다면서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슈퍼에 가서 샀다면서 제가 어릴 때 먹었던 추억의 과자도 선물로 주었습니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이뻤습니다. 아들도 선물이 있다며 케이크와 화장품을 가져왔습니다. 용돈을 아끼려 일요일에는 절대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짠돌이 아들인데, 자전거 사려고 모아둔 용돈으로 선물을 샀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선물도 열어보았습니다. 정장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스카프와 제가 좋아하는 색의 립스틱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족의 선물을 한가득 받은 저는 너무 행복하고…

한국 대구, 최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