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를 보면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니까.” 그러면서 여우는 조잘조잘 말을 이어간다. 이 장면은 매우 모순적이면서 대화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 역시 말이기 때문이다.
오해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인해 생겨나기도 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설령 다른 의도가 없었다 할지라도 상대방의 눈에는 의도한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오해받는 일만큼 억울하고 분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오해하고 오해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누구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100% 완벽하게 전달할 수는 없다. 또,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다 알 수 없다. 심지어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는 가족 간에도 오해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러한 오해를 극복하고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바로 이해다. 이해의 범위를 넓히고 오해의 범위를 줄인다면 소통의 대로는 탄탄해질 것이다.
오해를 부르는 요소
① 자기중심적인 태도
고대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어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그래서 천동설과 반대되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당시 엄청난 박해를 받아야만 했다. 그의 주장은 사실이었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생각만 고집하게 되면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 없다. 대화를 할 때에도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한다거나,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가려서 받아들인다거나,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면 상대방의 의중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고 왜곡하게 된다.

② 추측과 속단
공부 중이던 아이가 궁금한 내용이 있어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실수로 게임 사이트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때 간식을 주려고 들어온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혼을 냈고, 아이는 억울한 마음에 상황을 설명했지만 엄마에게는 변명처럼 들렸다.
남편이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왔는데 아내는 나와 보지도 않고 방에 누워 있기만 했다. 서운한 마음이 든 남편은 그만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내 역시 온종일 이불 빨래와 대청소를 하느라 기진맥진했던 것.
이렇게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겉만 보고 속단하면 오해가 싹트기 쉽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미리 넘겨짚거나, 추측을 사실인 것처럼 믿어버릴 때도 마찬가지다.
③ 선입견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이 이웃집 사람을 의심하고부터는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수상해 보였지만, 도끼를 찾고 나자 전혀 수상해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으면 오해와 불신이 쌓인다. ‘엄마(혹은 아빠)는 말이 통하지 않아’, ‘쟤는 말귀를 못 알아들어’, ‘어휴, 또 잔소리’⋯ 가족에게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를 탓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에게 문제점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④ 대화의 부족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소통이 꽉 막힌 어느 경상도 가족을 풍자한 개그 프로가 한때 유행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을 훈계하며, “요즘 뭐하고 돌아다니노?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들어오고, 도대체 밖에서 뭐하는기고?” 하면 아들이 “학교 다녀왔는데예” 하는 식이다. 가족 간에 대화가 부족하면 정말 아끼고 사랑하더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하고, 진심을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고 만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로 속상해하기도 한다.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①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하자
운동하러 갔다 온 형이 동생에게 시원한 물 한 잔 달라고 하자, 동생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주었다. 그러자 형이 대뜸 “시원한 물 달라고 했으면 얼음도 띄워 줘야지!” 하고 다그친다면 동생은 심부름을 하고도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다. 물을 달라고 할 때 형이 처음부터 “시원하게 얼음도 동동 띄워서 줘”라고 했다면 동생이 시원한 물에 얼음을 띄워서 주지 않았을까. 말을 할 때는 의사 전달을 분명히 해야 오해를 막을 수 있다.
②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자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기보다는 자신의 의도나 목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할까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 귀를 세우고 듣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상대의 말을 집중하여 듣고, 말속의 의미를 공감하기 위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③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자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피곤하다고 했을 때 아내가 “맨날 뭐가 그리 피곤해요?”라고 말한다거나 혹은 아내가 피곤하다고 했을 때 남편이 “집안일이 뭐 힘들다고⋯”라고 말한다면 서로 얼굴만 붉히게 될 것이다. 상대가 어디가 아플 수도 있고, 말 못 할 걱정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살며시 “요즘 많이 힘들죠? 일은 좀 어때요?”, “집안일 하랴, 애들 보살피랴 힘들지?”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자연스레 속마음을 풀어놓을지도 모른다.
④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자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는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형제와 자매로 구성되어 있는 가족이 각자 갖는 생각의 차이는 때로는 높은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높다. 그럴 땐 내 마음을 아무도 모른다고 하소연하기보다는 가족이라도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상대방을 자신의 틀에 맞춰 변화시키려는 것은 무모한 생각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전제로 대화를 이어 나가면 쌓인 오해도 풀어진다.
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태도는 삼가자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쓰지 마라’는 말이 있다. 지나가는 행인이 오얏나무 아래서 쉬다가 일어서면서 갓끈을 고쳐 매려고 손을 머리 위로 올렸는데, 그 모습을 오얏나무 주인이 우연히 보았다. 행인은 무심코 손을 올렸을 뿐인데 주인은 ‘저 사람이 오얏을 따려고 하는구나’라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으니, 남의 의심을 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자신에 대해 공통으로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억울해하지 말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보자.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오해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차분하게 설명하여 바로잡아야 한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오해가 나중에는 점점 깊어져서 또 다른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오해는 종종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왜 오해가 생겼는지,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는 가운데 서로 간의 거리가 좁혀지고, 결과적으로 신뢰를 두텁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오해로 다툼이 시작됐다 하더라도 끝은 반드시 이해로 마무리해야 한다. <5-3=2>, <2+2=4>라는 단순한 셈을 기억하자. 오해를 하더라도 타인의 입장에서 세 번 생각하면 이해가 되고, 이해에 이해를 더하면 사랑이 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도 없다. 이해는 영어로 ‘understand’인데 ‘under(아래)’와 ‘stand(서다)’가 결합된 말로, 결국 이해하기 위해서는 낮은 마음,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소중한 사람들을 오해로 밀어내지 말고 이해로 감싸주자. 사랑과 행복은 먼 데 있지 않고 바로 그 안에 있다.
- 참고
- 『결혼 후 10년』 (김달국, 서정애 著)
- 『통하는 사람들의 생산적 대화법』 (전유강 著)
- 『좌절하지 않고 쿨하게 일하는 감정케어』 (최환규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