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

깨달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상 속, 크고 작은 깨달음을 나눠요.

엄마에게 중요한 것

일요일 저녁, 친구를 만나고 집에 와보니 엄마의 새끼손가락에 반창고가 여러 겹 붙어 있었다. “엄마, 손 왜 그래요?” “응, 뭐 좀 하다가 살짝 베였어.” 한눈에 봐도 살짝 벤 정도가 아니라서 빨리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엄마는 별것 아니라며 내일 가도 된다고 했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다음 날 퇴근하고 집에 와서 본 엄마의 상태는 심각했다. 엄마는 손가락 하나가 아닌 손 전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늦게 병원에 왔다고 나무랄 정도로 상처가 컸던 것이다. 까딱하면 다친 부위를 잘라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는데 엄마는 나의 놀란 표정을 보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 마. 끄트머리만 살짝 베여서 잘라도 조금밖에 안 자를 거야.” 태연한 엄마의 태도에 더 속이 상해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느냐, 왜 빨리 병원에 가지…

한국 서울, 이선미

고향 그리고 어머니

모처럼 쉬는 날, 미뤄둔 집안일을 정신없이 하느라 휴대폰 벨이 울리는 것도 몰랐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하셨네요?” “그래, 자는 걸 깨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어났니?” “그럼요. 지금이 몇 신데요.” 엄마는 애들 교육비에 보탤 겸 몇 년째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나를 몹시 안쓰러워하셨다. 엄마는 윗집에서 실한 무를 두어 개 얻었는데 내 생각이 나서 깍두기를 담가 택배로 보냈다며 물건을 받으면 확인 전화를 달라고 했다. “힘들게 뭐하러 하셨어요. 나도 낼모레면 오십이구만. 저는 제가 해먹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너는 일하느라 바쁘고… 음식도 잘 못하고 그래서 그러지.” 다음 날 택배가 도착했다. 꼼꼼하게 붙인 테이프 사이로 고향 집 주소와 엄마 이름이 보였다. 기분이 묘했다. ‘엄마가 있는 곳. 그래 여기가 우리 집이었지. 여기서 함께 살았었지.’ 떠나온 고향이 그립고, 오늘도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홀로…

한국 의정부, 김향순

잃어버린 추억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를 무척 좋아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만화를 볼 생각에 늘 설렜다. 만화 상영이 끝나면 아쉽기 짝이 없었다. 재미있는 만화를 두고두고 볼 방법을 궁리하다가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비디오테이프를 보면 앞부분에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을 막으면 테이프에 원래 있던 내용이 삭제되고 보고 싶은 만화가 녹화됐다. 집에는 내 유치원 재롱 잔치, 볼링 가이드, 해외 영화, 부모님의 결혼식 등 여러 종류의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가지고 녹화를 시작했다. 물론 부모님께 허락받은 비디오테이프에만 녹화가 가능했다. 녹화해둔 만화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만화 비디오테이프의 양은 늘었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만화를 한 편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비디오테이프가 부족했다. 급기야 허락받은 것 외에 필요 없어 보이는 비디오테이프를 내 마음대로 골라서 녹화하기에 이르렀다. ‘해외 영화는 많이 봐서 내용을 다 아니까 더…

한국 강릉, 홍순태

어머니의 심부름

저는 삼 형제 중 둘째입니다. 저희 형제들은 호주 멜버른에 흩어져 살고 있고, 부모님은 멜버른에서 차로 아홉 시간 걸리는 애들레이드에 거주하십니다. 저희는 일 때문에 자주 부모님을 뵈러 가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저희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와서 돌봐주십니다. 한 날은 형이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렸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어머니가 당장 형 집으로 가셨을 텐데 하필 당신도 몸이 편찮으신 데다 바쁜 일까지 겹쳐서 움직이기가 힘든 처지였습니다. 늦은 밤, 어머니는 저에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연욱아, 혹시 엄마 대신 형한테 죽 좀 쑤어서 갖다줄 수 있을까?” “죽이요?… 네, 알았어요. 그런데 내일 제가 일찍 일어나야 해서 지금은 곤란해요. 내일 해서 갖다 줘도 되죠?” “지금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내일이라도 꼭 부탁한다, 아들.” 사실 귀찮았습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었지만…

호주 멜버른, 정연욱

진정한 휴식

많은 직장인들이 새해 달력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연휴 날짜를 세어 보는 것이다. 그만큼 연휴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큰 행복을 준다.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2018년 가을은 행복의 절정이었다.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추석 연휴가 5일, 뒤이어 개천절과 한글날이 있어 장장 7일이나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터로 복귀했다. ‘충분히 쉬었으니 오늘부터 열심히 일해보자’는 각오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거뜬히 해결하던 일이 갑자기 헷갈리고, 여러 절차를 거쳐서 진행해야 할 일을 그냥 처리하다 반려가 됐다. 서류를 작성할 때는 주요 업무 내용을 빼먹어서 상사에게 혼나기도 했다. 예전의 빠릿빠릿하던 상태로 돌아가기까지 며칠 고생했다. ‘내가 요즘 왜 이러지?’ 퇴근하고 나서 대충 씻은 뒤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봤다. 추석 연휴 때 하루 종일 뒹굴뒹굴하면서 TV를 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한국 사천, 이재욱

생일 케이크

어릴 적,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웠습니다. 엄마는 칠 남매를 먹여 살리려고 벽이나 바닥, 변기를 수리하는 고된 일을 하셨습니다. 인부를 고용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 혼자서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막일을 하는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막내딸이었습니다. 엄마는 식료품을 사려고 밤새 가방을 수선해 공장에 납품하는 일도 했는데, 저는 오래된 재봉틀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곤 했습니다. 밥 한 끼 해결하기가 빠듯한 상황인데도 철없는 저는 생일마다 “한 번도 생일 케이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불평하며 토라지기 일쑤였습니다. 엄마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의 생일에 작은 파티를 열어 엄마를 초대했습니다. 엄마는 매우 기뻐하면서 제가 직접 만든 생일 케이크가 훌륭하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자식까지 낳아도 철이 없는 건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엄마의 칭찬에 우쭐해진 저는 평생 후회할…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 수자나

어느 사형수의 후회

하늘나라에서 지은 우리 죄가 얼마나 흉악한 것인지, 또 엘로힘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절실히 깨닫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제가 소속된 불라와요 시온은 국립과학기술대학교 인근에 자리하고 있어, 나이나 직업 등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어느 날 식구를 기다리던 중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낡은 책과 옷가지가 들어있는 무거운 비닐봉지를 들고 제 쪽으로 다가오더니 인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 귀찮게 해서 미안하네. 나는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있다가 일반사면을 받아 지난주에 나왔다네. 1985년 아내와 삼촌을 해친 끔찍한 죄를 저질러서 사형판결을 받았지. 순간 세상이 끝난 것 같더군. 처음에는 꿈을 꾸는 것 같았는데 차츰 인생의 마지막을 맞게 된다는 게 현실로 느껴졌지. 우리나라에서는 사형이 선고되면 감옥에서 입는 옷에 사형수라는 표가 붙고 명부에도 기록된다네. 사형수는 친척들과 시간을 일절 보낼 수 없고 사회에서…

짐바브웨 하라레, 샤바

어머니의 사랑은 특별한 사랑

어떤 이들은 인생이 사랑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을 보면 그 말은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서로 보살핌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랑으로 연결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연인 간에, 친구 간에, 부모자식과 형제자매 간에… 참으로 다양한 관계에서 사랑을 찾을 수 있다. 심지어 돈이나 소유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사랑의 본질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이기심이라고 생각해왔다. 누군가를 보호하는 이유는 내게 필요하기 때문이고, 함께하기를 원하는 이유도 자신에게 좋고 즐겁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본성을 갖고 있으니, ‘사랑’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어느 사진을 보고 그러한 생각에 대해 의문점을 갖게 되었다. 노루 한 마리가 정면을 쳐다보고 꼿꼿이 서서 표범 두 마리에게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사진이었다. 사진작가는, 표범에게서 도망치던 노루가 충분히 살 수…

몽골 울란바토르, 바야사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가락

초등학생 시절, 이모 손에 이끌려 큰 병원에 갔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간 병원에는 환자복을 입은 낯익은 얼굴이 있었습니다. 엄마였습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엄마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야! 아이고, 아파라.” 의사 선생님이 붕대로 칭칭 감긴 엄마 손에 소독제를 붓자 엄마는 아프다고 하면서도 저를 보고는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엄마가 웃으니 피에 젖은 손가락 끝을 보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엄마는 한 달 만에 퇴원했습니다. 밖에서 만나 같이 집에 들어가자는 연락을 받고 집 근처에서 들뜬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엄마가 왔습니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딸을 안아주려고 두 팔을 벌렸습니다. 그런데 전과 다른 엄마의 손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엄마 손을 뿌리치고 지금까지도 후회로 남은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엄마 손 이상해, 무서워! 나 엄마한테 안 갈래.” “에이, 왜 그래. 안 무서워. 괜찮아.” 저는 애써 웃으며 달래주는…

대만 가오슝, 안지영

최고의 코디네이터

어렸을 때 엄마는 언제나 제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사주셨습니다. 옷뿐만 아니라 신발과 벨트도 엄마가 사준 것들은 항상 제 몸에 딱 맞았습니다.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춘기에 들면서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이 사고 싶어졌습니다. 용돈을 아껴두었다가 난생처음 혼자 옷을 사러 가게에 갔습니다. 여기저기 신나게 구경하다가 깔끔한 셔츠와 바지를 멋지게 차려입은 마네킹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 저거 진짜 내 스타일이다!’ 마네킹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저를 보고 점원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저 옷을 입으면 정말 신사처럼 보일 거예요.” 점원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네킹이 입고 있던 옷을 벗겨서 제게 건넸습니다. 신사 같은 내 모습을 사람들이 부럽게 쳐다보는 상상을 하니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습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옷을 사서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고 마네킹처럼…

짐바브웨 하라레, 타피와

해가 지기 전에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올 때쯤 영국 모든 도시에 록다운(lockdown, 봉쇄)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연일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서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회사도 재택근무를 시행해 평소 같이 모이는 시간이 적던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과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편하다는 이유로 툭툭 던지는 말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하루는 사소한 일로 시시비비를 가리다 언성이 살짝 높아졌습니다. 집 안에 감도는 불편한 공기를 애써 모르는 체하며 ‘그래도 내가 옳았어’ 하는 마음으로 창밖을 응시하는데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며칠 전 설교 영상에서 들은 어머니 말씀이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고 해가 지기 전에 미안하다고 말해보세요.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어도 먼저 미안하다고 해봅시다. 상대방이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닌데 왜 미안하다고…

영국 맨체스터, 김두리

조건 없는 탕감

회계·금융 분야에서는 ‘부채’와 관련된 내용을 다룰 때가 많다. 여기서 부채는 대출 가치와 이자의 합계이며, 이자는 채무자에게 할당된 시간과 관련된 이자율로 계산한다. 만약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빚을 지녔다면, 경제적 활동을 회복하게 해주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부채 탕감 제도’다. 이 제도가 적용되면 채무자는 특정 금액의 채무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탕감받는다. 결국 모든 금액을 변상하는 것이 아니기에 채권자는 탕감된 만큼 손해를 입는다. 물론 부채를 탕감받을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아 신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법원이 채무자의 태도를 지켜보고 탕감을 확정 짓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채 탕감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채무자에게는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하다. 성경에도 이런 제도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 그…

모잠비크 마푸투, 엘리아스

도피성 수감자

철컹. 둔탁한 철문이 열리는 소리. 한 다큐멘터리에서 여자 교도소 수감자들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았다. 과연 그들의 생활은 어떨까. 내 시선은 화면에 집중되었다. 하루 30분의 운동 시간. 유일하게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으로 수감자들은 웃고 이야기하며 운동을 하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 햇볕을 쬐기도 했다. 죄수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수감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한 수감자가 카메라를 보며 방송에 얼굴이 나가는지 물었다. 걱정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집에만 돌려 보내주면 얼굴이 나가도 상관없어요.” 밝게 웃는 웃음소리가 왠지 서글프게 들렸다. 새벽 4시. 교도소의 하루를 여는 이들은 취사를 담당하는 수감자들이었다. 64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손길은 쉴 틈 없이 분주했다. 힘들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40킬로그램짜리 쌀가마니를 들고 나르는 중노동이 쉽지는 않지만,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밥을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식사 시간이 되자 각각의…

한국 울산, 조은영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니

가족 모두 깊이 잠들어 있던 새벽 5시 무렵, 자동차가 충돌하는 듯한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이번에는 총소리 같은 것이 들렸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저는 남편을 깨웠습니다. 바깥에서는 몇 번의 총격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고함 소리 그리고 누군가가 빠르게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소리로 점점 어수선해졌습니다. 집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저희 부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남편은 “아무래도 싸움이 일어난 것 같아. 무서운 장면을 목격할 수도 있으니 밖으로 나가면 절대 안 돼” 하고 저를 단속했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저희 집 마당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군가 저희를 해치려고 집 마당을 둘러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습니다. 어느새 엄마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데 펑 하면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조심스럽게 대문을 열어보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스타팍 셀린

내가 잠든 사이에도

얼마 전, 병든 자녀를 돌보는 한 어머니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아들은 근육이 점점 수축하면서 호흡 기관에 장애를 일으키는 병을 앓고 있었다. 의사들은 아들이 앞으로 18개월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진단했다. 아들을 집으로 데려온 어머니는 아들이 숨을 잘 쉴 수 있도록 때때마다 가슴 부위를 마사지해 근육을 풀어주었다. 아들이 잘 때도 어머니의 마사지는 멈추지 않았다. 문제는 어머니가 잘 때였다. 토막 잠을 자는 순간에도 어머니는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아들이 호흡 곤란으로 죽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3시간 남짓이었다. 어머니는 깊이 잠들지 않으려고 밤새 전등을 켜놓았는데 불빛 때문에 아들이 잠을 설칠까 봐 전등에 갓을 씌워 빛이 자신에게만 비치도록 했다. 극도로 피로가 쌓여 전등마저 무용지물이 되면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더 깨어 있으려고 자신의 팔을 이로…

미국 PA 필라델피아, 웨이웨이

별을 보지 못하는 아이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동네 공터. 아이들은 그곳에서 배고픈 줄도 모르고 뛰놀다가, 어두컴컴해지면 오손도손 모여 별을 세고 별자리도 함께 찾아보며 즐거워했다. 오직 한 아이, 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너, 저렇게 많은 별들이 정말 하나도 안 보여?” “저기를 이으면 북두칠성이잖아. 학교에서 배운 대로 국자 모양.” “….” 친구들이 어스름한 하늘 위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물어볼 때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까만 밤하늘에 보석을 뿌려놓은 듯 아름답게 빛난다는 별들이 내게는 그저 상상으로만 그려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왜 별을 못 보는 걸까?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엄마의 말에 편식도 고치고, 수업 시간에 들은 야맹증이 아닐까 해서 비타민 섭취도 꾸준히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전히 별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밤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면서 별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서서히 잊혔다. 하지만 더…

한국 성남, 장희원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옷 방이 도무지 정리가 안돼 의류 거치대를 하나 주문했습니다. 며칠 뒤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밤에 일을 하고 있어서 여유가 없었지만 얼른 끝낼 요량으로 곧바로 거치대를 설치해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마음과 달리 절반 정도 하고 나니 지쳐서 정리가 덜 된 상태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하루는 일을 끝내고 돌아온 남편이 옷 방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옷 정리를 왜 하다 말아요? 힘들게 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엉망인 방을 보면 기분이 좋겠어요?” 평소라면 “시간도 없고 몸도 안 좋으면 그럴 수도 있죠. 당신은 그런 것도 이해 못 해줘요?” 하고 되받아쳤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말이 다르게 나왔습니다. “한다고 했는데 마무리를 못 했네요. 미안해요. 기분 풀어요.” 남편은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한마디 쏘아붙였을 겁니다. “아니,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그렇지. 상대방이 미안해하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 예의 아니에요? 정말 너무하네요.” 그런데 남편이…

한국 춘천, 박은정

초보 목자의 깨달음

저는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미국에서 가장 추운 북부 지방에서 자랐습니다. 한여름에는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갔지요. 가장 가까운 이웃은 1.6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어서 누군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부친은 노스다코타의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돼지, 소, 말, 닭, 칠면조 등을 기르셨습니다. 한번은 부친에게 양을 방목할 수 있는 목초지와 겨울동안 먹일 건초 더미가 충분히 있는데 왜 양을 기르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부친은 그저 양은 당신이 기르고 싶은 가축이 아니라고만 하셨습니다. 양을 길러본 경험이 없던 저로서는 양은 정말 다루기 쉽고, 저 역시 양들을 잘 관리하는 좋은 목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는 덩치가 크고, 다 자라면 무게가 450킬로그램 또는 그 이상 나가기도 합니다. 건초도 많이 필요하고 단백질이 많은 곡물과 따뜻한 겨울 날씨가 요구되었습니다. 봄이면 예방 접종 등을 해야 해서 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들은 다 자라도 무게가 68에서…

미국 휴스턴, 앨런

미처 깨닫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

제가 태어나기 전 저희 가족은 수도 리마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페루의 한 지역에 아주 강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내무부에서 근무 중이셨는데 지진 피해 지역을 재건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어 전문가들과 팀을 구성하여 그 지역으로 갔습니다. 이런 연유로 저희 가족은 우아라스 앙카시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여섯 남매의 막내인 제가 태어났습니다. 큰오빠와는 13살 차이가 나는 저를 가족 모두가 사랑으로 돌봐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창밖으로 하늘에서 하얀 구슬 같은 것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정말 예쁘다!’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둘러 제 방과 다른 방 사이에 있는 통로를 통해 하얀 구슬로 가득한 밖으로 몰래 나왔습니다.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 차림이었던 저는 손이 퍼렇게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하얀 구슬을 만지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 얼음 바닥에서…

페루 리마, 메르티

엄마의 마음

제게는 한 살 차이 나는 언니가 있습니다. 터울이 얼마 안 지다 보니 친구처럼 티격태격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저만 야단치셨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부모님이 아무리 잘해주셔도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생활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는 했는데,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엄마, 언니와 함께 백화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엄마는 언니의 낡은 신발을 보더니 신발 코너로 가서 신발을 골랐습니다. 저는 ‘내 신발도 사주시겠지?’ 하고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언니 신발만 사고 곧바로 식재료 코너로 가는 것이 아닌가요. 반찬거리를 사서 돌고 돌아 다시 신발 코너를 지나게 되자 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습니다. “엄마, 나도 신발 살래.” “넌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여기서 못 살 텐데.” 엄마 말대로 저는 발이 작아서 제 발에 맞는 신발이 있는 매장이…

한국 인천, 최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