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효도(孝道)는 효심(孝心)에서 비롯된다.”

노부모 봉양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효도는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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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자봉지 들고 와서/아이 손에 쥐여주나/부모 위해 고기 한 근/사올 줄을 모르도다/개 병들어 쓰러지면/가축병원 달려가나/늙은 부모 병이 나면/노환이라 생각하네/열 자식을 키운 부모/한결같이 키웠건만/열 자식은 한 부모를/귀찮다고 싫어하네/자식 위해 쓰는 돈은/한도 없이 쓰건마는/부모 위해 쓰는 돈은/한 푼조차 아까우네… (권효가 中)』

‘권효가’는 효도를 권장하는 규방 가사로, 윗글은 한문으로 된 원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내용이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인 것은 어린아이들도 아는 사실이나, 그것을 가르치는 어른조차 100% 완전한 효도를 하기는 힘들다. 자식을 낳아 보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는 것과 효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내가 낳은 자식에게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더 이끌리는 탓에, 또는 먹고살기 바빠서, 타지에 있어서, 다른 형제가 잘하니까 등등 다양한 이유로 효도를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부모에게 자식은 인생의 전부다. 부모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자식에게 무슨 빚을 그리도 많이 졌는지 베풀고 베풀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그런 하늘 같은 부모님의 은혜를 땅바닥에 내던지듯, 뉴스에는 패륜 범죄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으니 “효도는 흉내만 내어도 좋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캥거루족 늘고, 부모 부양 줄고

캥거루는 생후 8개월까지 어미 몸에 있는 새끼주머니에서 자란다. 다른 동물에 비해 어미에게 오랫동안 의존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경제적으로 자립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서 쓰거나 부모 집에 얹혀사는 성인을 가리켜 ‘캥거루족’이라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효도받으며 편하게 지내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도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부모에게서 독립한다고 알려진 미국에 이르기까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은 점점 줄고 있다. 2013년 잡코리아가 20~30대 남녀 직장인 461명을 대상으로 ‘부모님 부양 계획’에 대해 물었을 때, 33.2%는 향후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부양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3명 중 1명꼴이다. 그 이유는 ‘당장 자녀 양육과 내 가정 꾸리기에도 여유가 없어서’가 1위, ‘부모님이 저축이나 연금 등을 마련해두었기 때문’이 2위, ‘경제적인 부분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철저히 해야 하기 때문’, ‘내 노후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 공동 3위였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노부모 부양을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1998년에는 89.9%에 달했지만 2014년에는 31.7%로 감소했고, 반대로 노부모가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은 8.1%에서 16.6%로 증가했다. 한편, 부모 부양을 가족이 아닌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

‘100세 시대’니 ‘인생은 50부터’니 하며 평균수명은 늘어나는데, 노후의 삶은 더 이상 자식에게 기댈 수 없는 시대로 변해 가고 있다. 부양하겠다는 말만 믿고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었지만 재산만 받고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는 자녀, 부모 부양 문제로 형제간 유혈극까지 벌이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자녀에게 짐이 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다는 노인이 많아짐에 따라 고독사(死)도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효도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자식이 많으면 어버이의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식이 한 명이라도 바람 잘 날 없는 건 마찬가지다. 부모의 걱정은 자녀를 잉태하는 그 순간부터다. 배 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아이가 태어나면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아이가 학교에 가면 친구와 사이좋게 잘 지내는지, 선생님 말씀은 잘 듣고 있는지, 사춘기가 되면 삐뚤어지지는 않을지, 수험생이 되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을지, 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을지, 결혼적령기가 되면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을지, 가정을 이루고 나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닌지… 그렇게 끊임없이 걱정하다 나이가 더 들면 혹여 자식에게 버림받지 않을지 걱정하는 것이 부모다. 제 살을 자식에게 다 내어주고 빈 껍데기만 남는 우렁이처럼.

부모는 때로 거짓말쟁이가 된다. “바쁜데 오지 마라”, “건강하게 잘 있으니 내 걱정은 마라”, “필요한 거 하나 없다” … 자식이 보고 싶고, 아프고, 힘들어도 이렇게 감추기만 한다. 게다가 부모의 뻔한 거짓말을 자식은 그대로 믿는다. 부모의 속마음은 ‘보고 싶으니 한번 다녀가거라’, ‘몸이 성한 데가 없으니 마음도 서럽구나’, ‘용돈이 부족해 아껴 쓰고 있단다’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이 잘사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라고 오인하기도 한다.

‘효도’ 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은 어려운 게 아니다. 안부 전화 자주 드리는 것,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는 것, 명절이 아닌 날에도 찾아뵙고 하룻밤이라도 부모님 곁에서 묵고 오는 것, 거칠어진 손 잡아드리는 것 등 어찌 보면 단순한 일이다. 나이가 들면 소외감을 느끼기 쉽고 스스로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끼기 쉬우니, 무조건 쉬게 해드리는 것보다는 연세에 맞는 소일거리를 드리는 것도 좋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이 그냥 가만히 계시면 좋은데 여기저기 참견하신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가끔은 부모님을 귀찮게 해드리자. 반찬을 만들어 달라고 하거나 간을 봐달라고 하거나 가정사에 대해 의견을 여쭈는 등 가족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기쁨을 드리자.

효심(孝心)이 바탕이 되어야

같은 일이라도 효심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효도가 될 수도 있고 불효가 될 수도 있다.

증자는 “효자가 늙은 부모를 봉양할 때는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고, 뜻을 어기지 않으며, 귀와 눈을 즐겁게 해드리고, 잠자는 침실을 편안하게 해드리며, 음식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봉양해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부모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해야 되고 부모가 공경하는 것을 공경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장자는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효도하기는 쉬워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효도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효도의 핵심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효심(孝心)’에 있는 것이다. 사랑하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흡족하게 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자식이 제아무리 부모를 사랑한다고 해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는 조금도 미치지 못하니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되, 아낌없이 해야 할 것이다.

『가신 후에 후회 말고/살아생전 효도하면/하늘에서 복을 주고/자녀에게 효를 받네』 앞서 소개한 권효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조차도 막상 떠나신 뒤에라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불효자도 효자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느 누가 나를 위해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할 수 있을까. 부모의 사랑이 없이 어찌 여기까지 왔겠는가. 이제는 그 사랑에 보답할 차례다. 보답하고자 하나 할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