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50대 여성에게, 의사는 남은 시간이 9개월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할 말을 잃고 마는 여성. 이는 바이럴영상(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특정 기업이나 상품을 홍보하도록 만든 영상) 속 한 장면으로, 9개월이라는 시간은 앞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수명이 85세라 가정할 때 53세 주부에게 남은 시간은 32년. 그중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TV 및 스마트폰 보는 시간, 그 외 혼자 있는 시간을 빼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9개월인 것이다.
현대인들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퇴근 시간이 늦어서, 피곤해서,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가족과 오붓이 함께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그저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여러 기업과 관공서에서는 직원들이 퇴근 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장려하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은 먼 듯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이런저런 일들에 밀려 가장 나중 순위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가족과의 시간과 행복지수는 불가분의 관계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이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사랑은 시간을 내주는 것
아이들이 어린이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일까? 게임기, 스마트폰, 용돈? 2015년 직업체험 테마파크 업체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 1위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값비싼 선물보다 온 가족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월시 박사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두 배로 늘리고, 아이에게 쓰는 돈은 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물질적인 선물은 순간의 기쁨에 지나지 않지만 가족과 함께한 행복했던 시간은 오래도록 남기 때문이다. 2016년 미국의 한 초등학교가 새 학기부터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단순한 숙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숙제를 안 내는 대신 집에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유대감을 쌓을 것을 당부했다.
“네 장미가 너에게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장미를 위해 네가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야.”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다. 무언가에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 ‘사랑은 시간을 내주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듯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가족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으며, 함께할 때 즐겁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
휴일에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는 하나 실상은 각자 잠을 자거나 TV를 보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갖는 목적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대감을 쌓기 위해서인데, 몸은 한 공간에 있으면서 서로 각자의 일을 한다면 어떻게 공감대와 유대감이 형성될까.
중요한 것은 시간의 물리적인 양보다 질이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보다 뜻깊게 보내려면 뭔가를 같이해야 한다. 찾아보면 TV 앞에 앉아 수동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도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일들이 많다. 같은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좋고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실행하는 것도 좋다. 그리 거창할 필요 없이 가벼운 산책, 운동, 등산, 놀이, 청소, 요리 등 무엇이든 함께하면 된다. 김장도 혼자 하면 힘든 숙제 같지만 가족이 함께하면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다.
유념해야 할 점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운전하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화를 내거나, 함께 수제비를 만들면서 제대로 못한다고 꾸중해버리면 소중한 시간을 망치게 되고 결국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한 것은 가족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가족을 소중히 대하고,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TV 시청, 스마트폰·컴퓨터 사용을 자제하고 가족에게 집중하자.
행복한 기억, 시련을 극복하는 버팀목이 된다
“마음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저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남긴 말이다. 실제로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는 간단한 활동만으로도 청소년의 비행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연구 결과 입증되었다. 한 지방경찰청에서는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을 대상으로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더니 가정폭력이 줄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게임이나 인터넷, 약물 등에 의지하지 않는다. 가족과의 좋은 기억은 가정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백신과도 같다.
어느 회사에 부도가 나서 사장과 그의 가족들이 작은 셋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사장 가족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불화는커녕 화목하게 지냈다. 비결은 ‘추억 놀이’였다. 예전에 행복했던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니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만의 추억이 담긴 사진, 소품 등을 집안 곳곳에 두고 행복을 떠올리자. 가족과 함께 웃고 즐거워하는 사이 차곡차곡 쌓인 행복한 기억은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시련을 극복하게 하는 버팀목이 된다.
“아빠가 다음 휴일에 꼭 놀아줄게”, “오늘은 친구랑 약속 있어요” ….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과의 시간을 자꾸만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가족.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다.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시간도, 자녀가 부모를 필요로 하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가족이니까 언제라도 함께할 수 있잖아’ 하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이 그 ‘언제라도’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바쁘더라도 짬을 내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행복을 공유해나가자. 살아가면서 매 순간 중요하지 않은 시간은 없겠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단란한 시간은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