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랑 수기
잔잔하면서도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언니의 고백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중에 맞은 설 연휴. 근처에 살다 먼 도시로 이사 간 고모가 찾아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고모네 가족과 웃음꽃을 피웠다. 헤어질 때 고모는 못내 아쉬워하며 나랑 동생을 집에 데려가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다고 했다. 나도 고모가 좋아서 따라가고 싶었지만, 곧 개학인 데다 차멀미가 심해 부모님이 만류했다. 결국 고모는 일곱 살 동생만 데리고 갔다. 그날, 동생이 없어서 조금 허전하긴 했지만 같이 놀아주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동생이 돌아오지 않았다. 급기야 계절까지 바뀌었다. 동생이 보고 싶었다. 하루는 동생 생각이 나 숙제도 하지 않고 괜히 이 방 저 방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안방에 있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동생에게 전화하고 싶었지만 고모 집 전화번호를 몰랐다. 나는 빈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보고 싶으니까…
한국 창원, 한유미
아빠의 집
제가 어릴 때, 아빠는 매달 월급을 아껴 벽돌과 시멘트, 철근, 삽 등 건축자 재를 사다가 마당에 모아 놓고 홀로 집을 지으셨습니다. 도랑을 파느라 얼굴 에 먼지가 가득한 채 이마에 땀이 흐르던 아빠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 집은 결코 완성될 것 같지 않았고, 아빠가 집을 짓기 위해 왜 그토록 노력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아빠가 수년 동안 지어오던 집은 결국 완공되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집 중에 가장 예쁜 이층집이었습니다. 멋진 색으로 칠해진 외벽, 엄마를 위한 정원, 따뜻함이 느껴지는 내부⋯. 집 구석구석, 벽돌 하나 하나, 아빠의 사랑이 담기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아빠의 수고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빠도 얼마나 자랑스러우실까, 아빠의 마음을 상상해보기도 했지요. 그러다 저는 결혼을 해서 타국에 오게 되었고,…
스페인 마드리드
열무비빔밥
어릴 적,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가 꽁보리밥에 열무김치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 들기름 한두 방울 떨어뜨려 쓱쓱 비벼주시던 열무비빔밥!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저는 열무비빔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바라만 봐도 목이 메고 눈에 눈물이 고여 차마 먹을 수 없었습니다. 10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친정 오빠로부터 엄마에게 살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엄마가 암 투병 중이긴 하지만 그동안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통화할 때마다 늘 밝고 긍정적이어서 병환을 충분히 이겨내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빠의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친정으로 가는 내내 마음속으로 생각했지요. ‘우리 엄마는 절대로 쉽게 쓰러지지 않아.’ 하지만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저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온몸은 누렇게 변해 있었고, 배는 복수가 차 부풀어 있었습니다. 늘 괜찮다 하시니 정말 괜찮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저의…
한국 인천
엄마는 엄마일 때가 좋다고 했다
대학교 졸업식 전날, 졸업식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장소는 어디인지, 몇 시까지 가야하는지⋯. 마침 엄마가 학사모에 대해 물어왔다. 학사모는 졸업식에 참석하면 당연히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 졸업 때는 학과 사무실에서 학사모를 빌려줬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기저기 찾아보니 엄마 말이 맞았다. 엄마가 귀띔해주지 않았다면 졸업식 당일에 우왕좌왕할 뻔했다. 졸업식 날, 학과 사무실에서 빌린 학사모를 쓰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다가 문득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학사모와 졸업 가운을 벗어 엄마에게 입혀드렸다. 꽤 능숙하게 옷매무새를 다듬는 엄마를 보니 엄마의 학창 시절이 궁금해졌다. 집에 돌아와 앨범을 뒤져서 엄마의 대학 졸업사진을 찾았다. 대학교 졸업할 때의 엄마와 오늘 찍은 엄마 사진을 번갈아 보고 있으니 울컥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였다.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엄마는 그저 엄마였다. 그래서인지 엄마에게 엄마가 아니었던 시절을 쉽게 배제하곤…
한국, 서울
아닌 밤중에 홍두깨
이사 계획이 있어 틈틈이 집 정리를 하던 중, 한날은 밤늦도록 주방을 정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냉장고를 청소하면서 그간 방치해둔 페트병을 끄집어내어 내용물을 확인하려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펑’ 하고 굉음을 내며 속에 있던 내용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천장으로 솟구쳤습니다. 복분자 발효액이 오래되어 터진 것이었습니다. 주방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불그죽죽한 복분자 발효액으로 온통 범벅이 돼버렸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한 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부들부들 떨기만 했습니다. 거실에서 TV를 보다 주방으로 달려온 남편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내 사태를 파악한 남편은 재빨리 걸레를 가져와 얼룩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깰까 봐 남편이 발걸음을 조용조용 움직였지만, 페트병 열리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잠귀가 어두운 딸들도 자다 말고 놀란 얼굴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진정시키고는 아빠를 도와 주방을 치웠습니다. 그렇게 가족의 도움으로 주방이…
한국, 서울
엄마의 안부를 묻다
“평생 엄마 아빠랑 같이 살 거야!” 호언장담했던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을 떠나 해외로 나갔다. 한국과 열두 시간의 시차가 나는 곳이었다. 부모님은 오매불망 내가 전화하기만을 기다리셨다. 전화할 때마다 엄마는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힘들지는 않은지, 생활비는 부족하지 않은지 물어보셨다. “없어요, 없어. 다음에 또 전화할게요. 안녕.” 사실 한국과 전혀 다른 문화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빵과 면을 주식으로 먹다 보니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이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께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다. 대화가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투정 부리게 될까 봐 일부러 전화를 빨리 끊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났고, 또다시 부모님을 떠나게 되었다. 결혼식을 앞둔 어느 날, 엄마와 단둘이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결혼 안 하고 평생 엄마 아빠랑 같이 살 거라고 했던…
에콰도르 과야킬 이우림
옥상 별빛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밤, 남편이 선풍기 바람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옥상에 가서 누웠다 오자고 했습니다. 잠이 막 들려던 저는 움직이기 귀찮아 그대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남편이 할 말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베개와 얇은 이불을 챙겼습니다. 먼저 옥상에 올라간 남편이 문자 메시지로 어서 오라고 재촉했습니다. 옥상에 올라가니 남편이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있었습니다. 돗자리에 누우니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가슴까지 시원해졌습니다. 그때 남편이 툭 한마디 던졌습니다. “별 많이 보소. 자네 별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난번에 남편에게 무심코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집에 가면 별을 실컷 볼 수 있는데 빈집이라 갈 수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하고도 잊어버렸는데 남편은 마음에 두고 있었나 봅니다. 옥상에서 올려다보이는 하늘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과 풀벌레들의 합창까지 어우러지니 마치…
한국 순천 구연희
고추 따던 날
「미안한데 고추 따러 한번 와라.」 열대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 늦은 밤, 시골에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는 오빠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짧은 메시지에 오빠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다음 날, 첫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향했다. “엄마, 일꾼 도착했어요.” 엄마는 일손이 달리는 차에 거들 손이 왔다고 좋아하시면서도 딸이 더운 날씨에 고생할 생각에 미안해하셨다. 엄마와 함께 고추밭에 도착하니 아빠, 오빠, 새언니가 작업에 한창이었다. 고추 농사는 이번이 처음인데, 밭은 생각보다 넓었고 고추는 빨갛게 물들어 수확을 재촉하고 있었다. 엄마와 마주 서서 한 두둑을 따기 시작했다. 고랑마다 제때 뽑지 않은 풀들이 무성해 앞을 가로막았다. 평생을 농사일로 단련한 엄마의 손은 재빨랐다. 풀 때문에 고추 따는 작업이 더딘 와중에 엄마와 보조를 맞추느라 허리 한번 펼 수 없었다. 바람도 구름도 없이 태양만 이글거리는 하늘 아래 작업복과 모자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얼굴은…
한국 광주 백경란
아내와 오이소박이
첫째의 생일을 맞아 함께 식사라도 할 겸 아이들이 자취하는 집에 다녀오기로 했다. 첫째는 취업, 둘째는 대학 진학으로 집을 떠난 지 5개월이 되었다. 두어 달 전에 갔을 때 반가움은 잠시, 잔소리만 늘어놓다가 그만 토라져버린 아이들을 뒤로하고 돌아와 마음이 무거웠다. 정성스레 밑반찬을 준비해 갔던 아내는 나보다 더 속상한 듯했다. 다시는 반찬을 안 해줄 것 같았던 아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애들이 좋아하지도 않는데 뭘 또 그렇게 만들어? 용돈이나 주고 오면 될걸.” 밤늦도록 분주한 아내를 핀잔하듯 말하며, 식탁에 벌여놓은 반찬을 훑어보았다. 깍두기, 달걀장조림 그리고 오이소박이. 아내가 오이소박이를 만드는 건 처음이었다. “기왕이면 애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해야지.” “큰애가 먹고 싶대요.” “그래도 그렇지. 힘들게 이런 걸 다 하고 그래?” “집에 반찬이라도 있어야 애들이 밥을 해 먹죠. 아니면 밖에서 인스턴트식품이나 사 먹을 테니⋯.” “내일…
한국 원주 최헌침
아빠의 사랑법
아빠는 일 년의 반 이상을 타국에서 보낼 정도로 해외 출장이 잦으셨다. 연년생인 언니와 나는 오롯이 엄마 손에 키워졌다. 아빠와 자주 떨어져 지낸 탓에 아빠 얼굴을 잊어버린 적도 있었다.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느라 잠시 집을 비웠는데, 그 사이 내가 아빠를 낯선 사람으로 생각해 울면서 밖에 나가려고 한 것이다. 그 일이 아빠에게는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내가 열두 살 때 온 가족이 베트남에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아빠는 항상 바빴다. 게다가 아빠는 말수가 없고 무뚝뚝한 데다 쉬는 날에도 온종일 주무실 때가 많았기 때문에 아빠와의 사이는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아빠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대학생이 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빠의 주 생활 무대인 사회에 나 역시 발을 들여놓고 보니 아빠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타국에서 홀로 생활하며 견뎠을 외로움,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했을…
한국 성남 김예은
사 먹는 김밥? 싸 먹는 김밥!
남편과 딸아이는 김밥을 매우 좋아합니다. 하루는 김밥을 원 없이 먹게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김밥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예전에 김밥을 만드느라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서 ‘김밥은 사 먹는 것이지, 싸 먹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어왔기에 제 나름대로는 큰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일요일 오전, 분주히 김밥 재료를 준비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딸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엄마, 도와줄까? 나도 하고 싶어. 같이 하자. 재밌겠다!” 김 위에 밥을 펴서 깔고 달걀, 햄, 단무지, 어묵 등 재료를 하나하나 얹어 시험 삼아 하나 만들어 보았습니다. 김발이 없어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예쁘게 잘 말렸습니다. 썰어 놓고 보니 우아,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다음으로 딸이 시도했습니다. 가르쳐준 대로 밥은 적게, 재료를 정성스럽게 얹어 야무지게 잘 말았습니다. 써는 것도 알아서 척척 하더군요. 김밥 만드는 게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는 딸은, 오래 서 있느라 허리가 아프다면서도 재료가 다 떨어질…
한국 서울 배미라
아들의 깜짝 방문
어릴 때는 애교 많고 엄마만 찾던 아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무덤덤해지고 엄마보다 친구를 더 찾더군요. 어느덧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로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자식이 장성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게 당연하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이 마음에 생겼습니다. 집에 와도 볼일만 보고 금방 가는 아들을 보며 ‘직업 특성상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함께하고픈 마음 때문인지 괜히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자식 사랑은 외사랑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날씨 탓에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더니 아들이 물었습니다. “엄마,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왜?” “엄마 목소리가 왠지 힘없이 들려서, 어디 아프신가 해서요.” “환절기라 목이 잠겨서 그렇지.” “건강 잘 챙기셔요.” 아들이 관심 가져주니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일하느라 한창 바쁠 시간에 아들이 연락도 없이 집에 왔습니다. “아들, 무슨 일 있니? 어디 아파? 사람들이 속상하게 하니?”…
한국 평택 / 성덕
우리 집 서열
“아들! 아빠 목이 너무 마른데, 물 한 잔만 떠다 줄 수 있니?” 퇴근 후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큰아들에게 부탁했다. 큰아들은 잠깐 고민하더니 옆에 있는 막내에게 말했다. “아빠한테 물 한 잔 가져다드려.” 막내는 형을 힐끗 보곤 주방에 있는 엄마를 찾았다. “엄마! 아빠가 목마르⋯.” 아내는 막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큰딸을 불렀다. “딸, 엄마 지금 바쁘니까 아빠 물 좀 가져다드려.” 그러자 큰딸이 말했다. “아빠가 떠다 드세요.” 내게서 나간 부탁은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왔다. 그날 나는 우리 집 서열 중 가장 아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서글퍼지는 하루였다. 며칠 뒤, 퇴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지금 퇴근하는데 점심밥 좀 차려줄래요?” 아내는 큰딸에게 식사준비를 미리 부탁하고 볼일을 보러 나갔다고 했다. 큰딸이 과연 내 밥을 차려줄까, 의문을 품으며 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딸아이가 삼겹살을 굽고…
한국 성남 장성민
사랑해 선언
“이제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줄게!” 남편이 비장한 모습으로 선언했습니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저와 딸은 당황했습니다. “뭐야, 우리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아님 이거 벌칙이야?” 그러자 남편은 ‘벌칙’으로 생각할 정도냐면서 “그동안 표현을 너무 안 한 것 같아 이제라도 해보려고 한다”며 웃더군요. 남편의 말에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신혼 때는 인사도 잘하고 사랑 표현도 많이 나누었는데,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저도 일상에 젖어 어느 순간부터 기본적인 인사나 관심 표현에 소홀해졌습니다. 반면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사랑한다는 말과 행동으로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정작 제일 가까운 남편에게는 무심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남편이 노력하듯 저도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배운 사랑을 가정에서부터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남편은 ‘사랑해 선언’을 한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보답하고자 저는 딸과 함께 아침마다 현관에서 남편을 배웅하며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한국 창원 옥은희
스티커의 출처
하루는 제 방 책상에 스티커가 놓여 있었습니다. 제 취향에 딱 맞는 귀여운 토끼 캐릭터의 스티커였습니다. 엄마나 남동생이 두고 갔나 보다 하고는 하나 떼어 휴대폰에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도 책상에 스티커가 계속 새로 놓였습니다. 의아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제 책상 위에 스티커 엄마가 놔두시는 거예요?” 그러자 옆에서 말없이 TV를 보시던 아빠가 대답하셨습니다. “그거 아빠가 둔 거야. 일하면서 간식으로 빵을 먹는데, 안에 든 스티커가 수빈이가 좋아하는 모양이더라고. 다른 직원들한테도 빵에 있는 스티커 버리지 말고 달라고 했어. 다른 모양 스티커도 있는데 그건 네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토끼 스티커만 가져왔지.” 아빠의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습니다. 스티커의 출처가 아빠였다니! 묵묵하고 점잖으신 아빠가 저를 위해 토끼 캐릭터의 스티커를 모으셨을 걸 상상하니 우습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했습니다. 아빠는 대화할 때 별말씀 없이 듣는 편이십니다. 저의 진로나 고민을…
한국 강릉 이수빈
아빠와 찍은 사진
아빠와 찍은 사진을 공모한다기에 나도 응모해야겠다 싶어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한쪽 벽을 사진으로 장식할 만큼 사진이 많다. 집에 도착해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찾으려고 서랍과 사진첩을 샅샅이 뒤졌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아빠랑 나랑 찍은 사진은 어딨어요? 사진은 많은데 아빠랑 찍은 게 안 보여요!” 그러자 아빠가 말씀하셨다. “아빠는 항상 사진을 찍어줬으니 사진 속에 없지.”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랬다. 아빠는 카메라에 우리의 모습을 담느라 정작 우리와 함께한 사진을 남기지 못하셨다. 나는 철없이 “치즈” 하며 포즈를 취하기 바빴고, 아빠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나는 ‘아빠와 함께 사진 찍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아빠 손을 잡고 셀프사진관으로 향한 것이다. 친구들과 가본 적은 있어도 아빠와 간다는 건 생각도…
한국 성남 박윤정
가스 밸브 잠그기
아내는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종종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는다. 몇 번 얘기해도 고쳐지지 않아, 쪽지에 ‘사용 후 가스 밸브 확인해 주세요’라고 적어 밸브 아래에 붙여두었다. 다음 날, 라면을 끓여 먹고 침대에서 쉬고 있는데 주방에 있던 아내가 나를 불렀다. “여보! 왜 가스 밸브 안 잠갔어요?” 나도 가스 밸브 잠그는 걸 깜박 잊은 것이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거예요.” 덤덤한 척 말했지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내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으면서 나 자신에게는 관대한 모습이 부끄러웠다. 앞으로 아내에게 잔소리하기보다 나와 한 몸처럼 생각하며 이해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개월이 흘렀다. 여전히 아내는 가스 밸브 잠그는 것을 깜박했다. 한번은 이를 발견하고 내가 잠갔는데, 다음 날 아침 식사 후에도 가스 밸브가 열려 있었다. 나는 잔소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잊어버리고 “가스 밸브 좀 잠그세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사소한 습관인데도 잘…
한국 성남 최석휘
기차표의 추억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본가에 가려고 기차표 예매사이트에 접속했다. 명절 기차표는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정해진 시간보다 미리 접속해 대기해야 한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시도한 끝에 가까스로 예매에 성공했다. 이후, 부모님께 도착 시각을 알려드리려 승차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런데 아뿔싸! 기차 출발 시간이 생각했던 시간과 달랐다. 기차표를 잘못 예매한 전적이 있어서 나름 신중하게 했는데 또다시 실수를 저지르다니⋯. 내게는 기차표에 얽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고등학생 때 서울에 볼일이 있어 아빠와 둘이서 기차를 타게 됐다. 김해에 살던 나에게 서울 나들이는 흔치 않은 일인 데다, 기차 여행이 주는 설렘에 며칠 전부터 들떴다. 내 인생에 기차표 예매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인터넷으로 시간과 좌석을 꼼꼼히 살펴가며 왕복권 두 매를 끊었다. 아빠에게 표는 준비됐으니 염려 말라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면서 스스로도 뿌듯해했다. 예정된 날, 무사히 서울에 도착해 볼일을 끝낸…
한국 서울 김혜선
온수처럼 따뜻한 마음
코로나19 여파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습니다. 저는 살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집 근처에 있는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늦은 시각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고등학생 딸아이가 그 시간에 욕실을 쓰더군요. 왜 하필 제가 들어오는 시간에 씻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하루는 일이 다 끝나고 사장 부부와 식사를 하느라 평소보다 집에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딸아이가 왜 늦게 왔느냐며 자기는 이미 씻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엄마가 집에 오기 직전에 내가 씻어야 엄마가 바로 따뜻한 물을 쓸 수 있잖아.” 저희 집은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한참 틀어놓아야 따뜻한 물이 나옵니다. 딸아이는 제가 귀가하면 따뜻한 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입니다. 딸아이의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에 사랑한다 말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제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 아이는 격려와 사랑이 담긴…
한국 김해 정남숙
물음표 편지
얼마 전, 이메일을 정리하는데 눈에 들어오는 메일이 몇 통 있었습니다. 발신자는 동생이었습니다. 제가 해외에 있을 때 현지 사정으로 전화가 잘 되지 않자 엄마가 동생에게 부탁해 보낸 메일이었지요. 메일을 열어보니 특별한 내용은 없고 온통 질문만 가득했습니다. 「잘 도착했니?」 「시차 적응은 잘하고 있니?」 「어디 아프지 않니?」 「짐은 잘 풀어놨니?」 「음식 적응은 잘하고 있니?」 「엄마는 예주에게 궁금한 게 참 많아.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니?」 처음으로 당신의 품을 떠나 타국에 머무는 딸이 걱정되었던 엄마는 질문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그때만 아니라 언제나 저의 안위에 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무슨 일 있니?」 「밥은 먹었어?」 「몸은 좀 괜찮아?」 엄마의 질문들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질문마다 모두 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게 궁금한 것이 많은 엄마와 달리 저는 엄마에게 질문을…
한국 화성 최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