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향기
진리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변화된 식구들의 감동 이야기.
어머니를 마음에 품고 깨어나
할아버지의 80세 생신을 맞아 10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는 엄격하고 강한 분이셨고 매사에 부지런하셔서 추수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서 곡식을 살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척 강인하고 건강한 분이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지신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움직임도 거의 없고 말씀도 많이 하지 않으셨다.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계시다 잠들고는 하셨는데 앉고 일어서는 것조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애쓰시는 할아버지께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할아버지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나는 문득 한 분을 떠올렸다. 우리 죄로 이 땅에 오셔서 수고와 희생의 세월을 보내시는 어머니.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은 복음이 온 세상에 다 전파되어야만 끝이 날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정신이 확 들었다. 흐트러진 내 마음을 바로잡아 영적으로…
필리핀 만달루용 / Jomarie M. Supleo
언 땅에 묻혀 있던 씨앗이 땅 위로 얼굴을 내밀듯
작은아들과 살림을 합치면서 시흥으로 이사했습니다. 육십 평생 살던 곳을 떠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큰아들과 큰딸도 시흥에 있었던 터라 좋은 마음으로 거처를 옮겼지요. 그런데 어느 날, 큰딸이 와서 뜬금없는 말로 저를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엄마, 성경에 하늘 어머니가 계신대.” 세상에, 하늘 어머니라니요. 수십 년 동안 천주교회를 다녔지만 전혀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저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딸을 내쫓다시피 돌려보냈습니다. 이후로 교회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도록 화도 많이 내고 구박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딸은 여러 해가 지나도록 한결같이 성경 말씀을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엄마 구원한다고 저렇게 애를 쓰는데, 부모 자식 간에 원수를 져서 되겠나. 내가 마음을 바꿔야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요. 결국 새 생명의 축복을 받고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자 신기하게도 흘려들었던 성경 말씀들이 생각났습니다.…
한국 시흥 신동례
온 가족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2017년 여름, 줄곧 그려왔던 너무나도 행복한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가족 모두가 하나님 품 안에서 한목소리로 찬양하며 천국 소망을 나누는 꿈.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던 안식일 오전 예배 시간, 제 눈가에는 가슴 벅찬 행복이 방울방울 맺혔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천국 소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많은 문제들을 보고 더 이상 교회를 가지 않다가 하나님의 교회를 알았습니다. 새 언약 진리를 살피며 천국에 대한 확신을 느끼고 기쁜 마음으로 진리를 영접했지요. 교회에 다닌 지 두 달 남짓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항상 회사 일로 바빠 얼굴 볼 새도 없던 남편이 별안간 퇴근 시간이 빨라졌습니다. 외식을 시켜주겠다며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가 하면 밥 먹는 도중에는 아들에게 “지호야, 아빠가 옆에 있을 때 자주 사줄게. 많이 먹어” 하며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한국 서울 석민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오래전 언니가 개신교 교회에 다닐 때였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갔다 오겠다고 집을 나선 언니가 온몸에 멍이 든 채 귀가했습니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으니 교회에서 종교의식을 행하다 생긴 자국이라고 하더군요. ‘성도의 몸을 상하게 하는 교회가 과연 올바른 곳일까? 하나님은 없는 것이 분명해!’ 교회에 불신이 생긴 저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언니도 그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언니가 다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또 교회라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저에게 함께 교회에 가보자는 언니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언니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예전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걱정과 달리 언니의 표정이 밝았습니다. 한결 여유로워지고 남도 잘 배려했습니다. 어쩐지 하나님의 교회는 여느 교회와 다른 듯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언니가 부러워 저도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니처럼…
한국 인천, 강연숙
시온에서 이루어진 형제의 연합
네팔 헤타우다의 바카이야라는 지역에는 타망 민족과 마지 민족이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두 마을이 형성되기까지 타망 민족과 마지 민족은 수 세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상대방이 믿는 신을 노엽게 할 목적으로 마지 민족은 돼지의 지방을 타망 민족의 신전에 뿌리고, 타망 민족은 소의 지방을 마지 민족의 신전에 뿌리는가 하면 한번은 극심한 싸움으로 마을 전체가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를 시온에서 만난다면 어떨까요? 어느 민족 출신인지는 시온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2019년 승천일 기념예배 때 두 마을에 사는 성도들이 어머니의 사랑 안에서 더욱 하나가 된 시온의 향기를 전합니다. 야외에서 드리는 승천일 예배 장소는 카지포카리라는 곳이었습니다. 식구들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식사를 준비해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을 부지런히 걸어 카지포카리에 도착했습니다. 은혜로운 승천일 오전 예배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각 마을 사람들끼리 식사하려는 분위기라,…
네팔 헤타우다, 키란
부모님의 마음으로, 군인 정신으로
넉넉지 않은 농사꾼 집안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늘 고민했습니다. 뭘 해야 배곯지 않고 살 수 있을지를요. 고심 끝에 직업군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라면 특전사로 복무 중인 사촌 형님처럼 부사관이 되어 몇 해 동안 꼬박꼬박 월급 받으면서 삶의 기반을 다지는 게 좋을 듯했습니다. 말도 못하게 고생한다며 형님이 말리는 통에 특전사는 포기하고 일반 육군 부사관으로 지원해 무사히 교육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임관 후 배치받은 부대가 하고많은 곳 중에 특수부대였습니다. 특전사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라 밥 먹고 돌아서면 체력 단련, 돌아서면 훈련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습니다. 천리행군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납니다. 훈련이 시작되면 보통 3주가량 낮에는 산을 타고 밤에는 산속에서 숨어 자는 일과를 반복하며 천 리(약 40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집결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부터가 진짜 행군의 시작이었습니다. 5박 6일간 밤마다…
한국 파주, 박인섭
사자도 막지 못한 절기 축복
전기 기술자인 저는 벌목용 대형 기계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근무합니다. 가을절기를 앞두고 기계에 문제가 생겨 출장 갈 일이 생겼습니다. 며칠이 걸릴 수도 있는데 이틀 뒤는 기다리던 나팔절이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출장을 미루고 싶었지만 수리가 시급한 데다 제가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길을 나섰습니다. 출장 지역은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의 인근 도시인 오발라였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저녁에 집으로 올 수 있겠다고 짐작했지만 가는 도중에야 출장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갈 곳은 당일에 돌아오기 힘든, 오발라에서 더 들어가는 밀림 지역인 니가였습니다. 새벽 5시에 출발했는데도 오발라에 도착하니 이미 정오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밀림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오토바이(카메룬의 대중교통)를 타고 오후 1시경 니가에 도착했지만 작업 장소까지 지대가 워낙 험해서 오토바이 기사조차 길을 헤맸습니다. 밀림을 뱅뱅…
카메룬 두알라, 장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면
2020년 3월, 필리핀에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필리핀 정부가 수도권에 최고 단계의 격리 조치를 내렸습니다. 수도권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바이블센터가 있는 바코오르 지역에도 앞으로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지요. 그래서인지 한창 믿음을 키우고 있는 티소 형제님·제인 자매님 부부는 하루빨리 가족들에게도 구원의 진리를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형제님과 자매님은, 바코오르 바이블센터에서 복음에 동역하고 있는 저희 부부를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이 느껴져 저희는 두 분이 사는 다스마리냐스로 서둘러 향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두 분의 아들딸과 자매님의 모친, 할머니가 저희를 반겨주었습니다.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진리를 상고한 가족들은 겸허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시온에 가서 새 생명의 축복을 받고 삼일 예배를 지키기로 이야기되면서 이틀 후를 기약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쁜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는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다스마리냐스가 있는 카비테주(州)에도 격리 조치가 내려진 것입니다. 가슴속에 커다란…
필리핀 만달루용, 마크
하나님 이끄시고 복음에 헌신하는 식구들이 함께하기에
저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선교사로 복음 직무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최근 여러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복음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배워 그 깨달음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상파울루교회는 히베이랑프레투에 위치한 지교회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2019년 하나님의 은혜로 히베이랑프레투 지교회는 새 성전을 허락받았습니다. 감사하면서도 성전 공사를 앞두고 내심 걱정됐습니다. 히베이랑프레투 지역은 상파울루에서 3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상파울루교회 식구들이 일을 거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손이 절실하던 순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상파울루에서 건축업에 종사하는 형제님이 돕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교회에 가끔 오는 분이라 교회 일에 큰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휴가까지 내고 오실 정도로 적극적이었습니다. 형제님은 일주일간 히베이랑프레투에 머물며 매일 새벽 6시부터 쉬지 않고 작업에 임했습니다. 저도 함께했지만 형제님의 체력은 따라갈 수가 없더군요. 형제님이 두세 사람 몫을 해준 덕분에 일주일 만에 공사가 마무리됐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안식일…
브라질 상파울루, 설윤덕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요즘 교회 다니세요?” “니 목사 하나?” 지인들이 요즘 종종 제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이제 바른길을 가고 있나 보다’ 하는 안도감이 듭니다. 제 모습과 언행이 예전에 비해 달라졌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19년 전에 아내를 따라 진리를 영접했습니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갔는데 식구들과 같이 운동도 하고 여러 봉사도 하면서 교회에 애착이 생겨 꼬박꼬박 예배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제 일상은 그리스도인다운 삶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뒤로 늘 바빴고, 언제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 마음이 쫓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하나님 일에 소홀해졌고 처음에 가졌던 죄송스러운 마음마저 무뎌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음 한구석이 헛헛했습니다. 회사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큰 프로젝트에서 성과도 내면서 나름대로 성취감을 느꼈지만 그도 잠시뿐이었습니다. 뭔가 자꾸 놓친 기분이었는데 진짜 놓친 것이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크나큰 축복을…
한국 부산, 한찬현
하늘 아버지 어머니와 동행하는 삶
어느 일요일, 친척이 소개해준 신혼집 근처 교회에 가려고 집을 나서던 길에 하나님의 교회 사람들을 만나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우상 숭배 행위라는 것입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모님을 따라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며 늘 목에 걸고 다녔고 잠을 잘 때도 손에 꼭 쥐고 자야 안심이 되던 십자가가 우상이라니…. 제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말에 처음에는 기분이 몹시 언짢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하나 근거를 찾아 보여주는데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얼마 뒤 하나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고 십자가를 집에서도, 제 마음에서도 치웠습니다. 진실을 알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보다도 십자가를 더 귀하게 여겨 성경책과 가방, 소지품뿐만 아니라 신발에까지 십자가 문양을 그리고 다니던 아빠를 비롯해 가족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들으면 다 깨달을 거라는 기대를 품고서 말입니다. 현실은 달랐습니다. 교회의 ‘교’ 자도 못 꺼내게 하는 아빠도…
한국 제주, 박찬정
주신 말씀대로
하늘 어머니께서 “이제는 유럽 복음도 잘될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유럽의 높은 복음 장벽 앞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온 독일 뒤셀도르프교회 식구들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은, 오순절을 맞아 유럽 중부 지역 교회 연합으로 진행된 전도축제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후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오순절 전후로 뒤셀도르프교회에서는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전례가 없을 만큼 시온을 찾는 영혼들이 많은 데다 그분들의 관심과 질문 수준이 어찌나 높은지 식구들 스스로 말씀 능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성경 공부에 열심을 냈습니다. 아름다운 선순환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오랫동안 참 하나님과 진리를 찾아 헤매다 엘로힘 하나님의 품에 안겨 열정 넘치는 새 언약의 일꾼으로 성장하고 있는 새 식구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카멜로 형제님은 이탈리아계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가톨릭 신앙을 가졌던 분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독일, 뒤셀도르프교회
아버지의 도리
마음 둘 곳 없이 방황하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 동료의 소개로 하나님의 교회를 알았습니다. 삭막하게 느껴지던 세상과는 달리 교회 분위기가 밝고 사람들의 표정도 환했습니다. 영혼의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를 깨닫자마자 ‘드디어 내가 가야 할 곳을 찾았구나!’ 하고 기쁘게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후 설교 말씀 청취는 매일 빠짐없는 일과 중 하나가 됐습니다. 설교를 통해 영혼의 이치를 조금씩 깨달아갈수록 가족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못 해준 것이 많아 미안한 마음이 컸기에 천국 축복만큼은 꼭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가족을 구원해 주시길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드리며 가장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마침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진리 발표 교재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자식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조리 있게 말하지는 못해도 함께 천국에 가고픈 마음만큼은 부족하지 않게 담았습니다. 제 마음을…
한국 울산, 이점도
시온에서 깨달은 가족과 사랑과 삶의 의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돈만 많이 벌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나고 자란 중국 선양에서 식당을 하다 비행기로 두 시간 떨어진 상하이에서 여행 가이드로 새 출발 한 이유도 좀 더 나은 벌이를 위해서였습니다. 임신한 아내가 몸조리 때문에 선양으로 돌아가면서 혼자 지내야 했지만 그리움보다 책임감이 더 컸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명절 때나 한 번씩 아내와 아이를 만난 햇수가 어느덧 4년. 하던 일이 어려워지면서 저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지인에게 도움받아 여기서 계속 일하느냐, 이참에 부모님이 먼저 자리 잡으신 한국에 가서 다른 일을 시작하느냐.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하고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부모님 계신 수원에서 얼마간 지낸 뒤 일자리를 잡은 곳은 제주도였습니다. 한국 사람은 물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섬답게 제주도는 푸르고 아름다웠습니다.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도 잠시,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모친의 위암 발병…
한국 제주, 이국철
생명의 면류관을 굳게 잡고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하게 지나간 날일지 몰라도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날이 있습니다. 바로 밝은 미소를 띤 하나님의 교회 분들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와 구원의 약속에 대한 복음을 전해준 날입니다. 너무 놀라워서 말씀을 더 듣고 싶었지만, 평소 모친이 저에게 늘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당부했기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다음 날로 공부 약속을 미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그분들에게 들었던 구절을 하나라도 잊을세라 성경을 찾아 밑줄을 그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이미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굳이 그들과 만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날 배운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다음 날 서둘러 약속 장소인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분들을 만나자마자 저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고, 몇 시간 동안 성경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후, 저는 캠퍼스와 시온에서 식구들과 함께 성경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시온에서 배우는 말씀은…
아프리카 나미비아, 샹게
시온에서 걷는 행복한 사모의 길
저는 기독교 가정에서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제 부모님은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처럼 하나님께 첫 번째 자녀를 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신학교에 보냈고, 제가 목사가 되어 일평생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길러진 저의 꿈도 하나님께 봉사하는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인도에서 목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종교인이고,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존경과 섬김을 받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협회에 가입하면 신학교 강의 등으로 많은 수입이 보장된 직업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보다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열망이 강하긴 했으나,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신학대학을 다닌다는 자부심, 지식으로 인한 교만도 제 마음 가운데 은연중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 순탄한 수순을 밟아가며 학위 과정을 거의 마치고 마지막 시험을 앞둔 순간, 제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무렵 진리를 영접한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와 하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알려준 것입니다.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학교에서…
인도 타네, 안젤라
아프리카 현지어로 하나님께 찬송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공용어가 영어지만 각 부족에 따라 10개의 현지어(아프리칸스어, 코사어, 줄루어, 소토어, 츠와나어, 총가어, 은데벨레어, 벤다어, 세페디어, 시스와티어)를 사용합니다. 영어가 능숙한 한국인이라도 모국어인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이 편하듯 이곳 사람들도 자신의 부족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시온 식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부족어로 인사하거나 짧은 단어 하나만 말해도 “어떻게 알았어요?” 하며 아이처럼 기뻐합니다. 새노래책이 아프리칸스어와 코사어로 번역되어 나왔을 때의 일입니다. 안식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앞으로 해당 새노래책을 사용하면 된다고 공지하면서 솔직히 걱정이 앞섰습니다. ‘식구들이 각자 다른 언어로 새노래를 부르면 혼란스럽지 않을까?’ 걱정은 오후 예배 준비 찬송이 시작되고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식구들은 약간 경쟁(?)하듯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새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분명 서로 다른 언어로 부르는데도 아름다운 하모니가 이뤄졌습니다. 즐겁게 찬송을 드리니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더 넘쳤습니다. 미소 가득한 얼굴로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찬송하는 식구들을 보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해외 식구들이 한국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벨빌교회, 김민규
간절히 기도하면
열다섯 살에 침례를 받고 진리를 영접한 후 제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는 행동이 전과 같지 않다 보니 주위에서 하나같이 하는 말이 “너, 요즘 너무 달라졌다” 였습니다. 저는 친구들이나 가족, 친인척들이 “어디 가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조롱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성취된 성경의 예언을 공부하고 난 뒤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 혼자 알고 있어서는 안 되는 귀한 진리를 가족들에게 먼저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가족 전도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힌두교를 비롯해 각자 충실하게 따르는 교리가 있던 터라 아무도 진리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머니 하나님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심했던 사람은 사촌 형이었습니다. 개신교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형은 제가…
인도 푸두체리, 라케시
부족한 내 믿음을 위해 주신 선물, 복음
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무렵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고국 몽골에 가서, 기독교로 개종한 엄마에게 여러 번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불교 집안에서 자라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지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금씩 관심이 생겨 저도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남편과 멕시코에 가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멕시코에 도착해 앞으로 다닐 교회를 찾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엄마는 진리 교회를 찾았다며 멕시코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목사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집을 방문해 전해준 성경 말씀은 지금껏 알던 것과 너무 달라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말씀 앞에 머리를 숙이고 엘로힘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목사님이 가고 난 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비방을 접했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고 두려워 여러 날 울며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멕시코 멕시코시티, 우양가
참 하나님을 만나다
어릴 적, 저는 선교사인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자연스레 제 삶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채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저의 영웅이셨고,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걱정스러운 일뿐 아니라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기도드리면 늘 응답해주신다고 믿었습니다. 낮에는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하고, 집에 오면 할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밤에는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하나님께서 늘 도와주셔서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고 노래, 운동,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청년들과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어려운 이웃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문화 행사를 통해 기금을 모아 그들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라자스탄의 주도인 자이푸르로 거처를 옮긴 뒤, 그곳에서 인도 중등교육위원회의 영어 교사로 22년간 여러 학교를 다니며 근무했습니다. 저는 강의할 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 잠언과…
인도 바피 찰라, 니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