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랑 수기
잔잔하면서도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빠의 아픈 손가락
나는 딸 넷 중 셋째다.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나는 아빠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열병을 앓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 하반신이 마비될 위기에 처했었다. 어떻게든 날 치료하기 위해 논밭까지 판 부모님 덕분에 다리를 절기는…
한국 진주, 하정오
참 잘했어요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한 아이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들어왔다.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이의 머리카락이 유난히 반질반질해 저절로 눈길이 갔다. 아이를 바라보다 손목에 뭔가 찍힌 흔적을 발견했다. ‘참 잘했어요’라는 글자가 새겨진 도장 같았다. “얘야, 손목에 찍힌 게 뭐니?” 호기심에 물었더니 아이 엄마가…
한국 성남, 최석휘
사랑의 힘으로 자식을 이기는 엄마
설거지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친정’ 발신자만 봐도 용건이 짐작됐다. 엄마가 우리 집 반찬거리를 챙겨주려 전화하신 게 틀림없었다. 먼저 안부 전화 드릴걸. 죄송함이 밀려왔다. 1남 5녀 중 다섯째인 나는 마흔이 넘었지만, 엄마에게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막내딸이다. 남동생은 아들이라 든든하신지 엄마는 나를 더 막내…
한국 구미, 이수자
돌아온 신발
외할머니는 항상 내게 주고도 더 주고 싶어 하신다. 초등학생 때는 공부 열심히 하라고 책상을 선물해주시더니 중고등학생 때는 교복비를 보태주셨다. 대학생이 되어 자취를 시작하자 각종 반찬을 만들어 보내셨다. 그러고도 늘 필요한 것 없냐고 물으셨다. 몇 년 전 추석에도 할머니는 구두를 선물해주셨다.…
한국 안양, 오진휘
효도란
요 며칠 오른쪽 손목이 좀 아팠습니다. 괜찮아지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날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손목 보호대를 하고 온찜질을 하며 그냥저냥 버티고 있는데, 그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는지 중학생인 두 딸이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밥 먹은 후 설거지는 기본이고 둘이 번갈아…
한국 서울, 장순향
첫 월급
휴대폰 진동 소리에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월급이 입금됐다. 내 인생 첫 월급이라 무척 기뻤다. ‘진짜 돈 들어온 거 맞아? 이걸 어떻게 쓰지?’ 부푼 가슴을 안고 은행으로 가면서 생각했다. ‘첫 월급이니 내가 쓰기보다는 지금까지 나 땜에 희생하신 어머니께 드리자.’ 현금으로 인출해 어머니께…
한국 성남, 김선우
예쁜 마음, 감동적인 말
여덟 살인 큰아들은 겁이 많습니다. 자다가 화장실에 갈 때나 물을 마시러 갈 때면 꼭 아빠나 엄마를 깨워 대동해야 하지요. 그런데 하루는 아들이 새벽에 일어나 혼자 화장실에 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웬일로 혼자 가나 싶어, 귀를 기울여 머릿속으로 동선을 따라갔습니다. 잠시 후, 아들은 화장실…
한국 의정부, 정은영
우리 아빠는
결혼 후 맞은 첫 명절, 친정에 갔을 때였다. 방에 있는데 거실에서 아빠와 남편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방에 들어온 남편에게 물었다. “아빠랑 무슨 이야기 했어요?” “이런저런 정치 이야기 했어요.” “아빠가 정치 이야기도 하셔요?” 신기했다. 아빠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다시…
한국 안양, 탁진슬
언니의 고백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중에 맞은 설 연휴. 근처에 살다 먼 도시로 이사 간 고모가 찾아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고모네 가족과 웃음꽃을 피웠다. 헤어질 때 고모는 못내 아쉬워하며 나랑 동생을 집에 데려가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다고 했다. 나도…
한국 창원, 한유미
아빠의 집
제가 어릴 때, 아빠는 매달 월급을 아껴 벽돌과 시멘트, 철근, 삽 등 건축자 재를 사다가 마당에 모아 놓고 홀로 집을 지으셨습니다. 도랑을 파느라 얼굴 에 먼지가 가득한 채 이마에 땀이 흐르던 아빠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 집은 결코…
스페인 마드리드
열무비빔밥
어릴 적,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가 꽁보리밥에 열무김치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 들기름 한두 방울 떨어뜨려 쓱쓱 비벼주시던 열무비빔밥!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저는 열무비빔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바라만 봐도 목이 메고 눈에 눈물이 고여 차마 먹을…
한국
엄마는 엄마일 때가 좋다고 했다
대학교 졸업식 전날, 졸업식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장소는 어디인지, 몇 시까지 가야하는지…. 마침 엄마가 학사모에 대해 물어왔다. 학사모는 졸업식에 참석하면 당연히 주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마 졸업 때는 학과 사무실에서 학사모를 빌려줬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기저기 찾아보니 엄마…
한국, 서울
아닌 밤중에 홍두깨
이사 계획이 있어 틈틈이 집 정리를 하던 중, 한날은 밤늦도록 주방을 정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냉장고를 청소하면서 그간 방치해둔 페트병을 끄집어내어 내용물을 확인하려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펑’ 하고 굉음을 내며 속에 있던 내용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천장으로 솟구쳤습니다. 복분자 발효액이 오래되어 터진…
한국,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