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향기
진리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변화된 식구들의 감동 이야기.
오씨 형제 이야기
‘혹시 동창들 중에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는 친구가 있지 않을까?’ 진리를 영접하고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는 설레는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아내를 따라 신앙의 첫발을 뗀 뒤로 친구들 중에 시온 가족이 있는지 늘 궁금했습니다. 그저 궁금해한 것만이 아니라 친구들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거하길 바라며 동창회와 같은 행사가 있으면 용기 내어 성경 말씀을 전했지요. 하지만 그렇게 친했어도 진심을 알아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마저 냉정하게 진리를 거부해 가슴이 아팠습니다.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불교 집안에서 자랐고 딱히 종교가 없던 저 같은 사람도 하나님을 믿게 됐으니 다른 사람도 충분히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하나님께서는 시온에서 여러 동창을 하늘 가족으로 만나게 해주시며 그 미약한 믿음을 현실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흔하지 않은 ‘오’씨 성을 가진 친구가 한 반에 세 명, 다른…
한국 거제 오수열
철옹성 같던 외삼촌의 마음이 열리다
늦둥이인 엄마에게는 오빠 세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한 분은 90세, 한 분은 엄마와 네 살 터울인 막내 외삼촌입니다. 막내 외삼촌은 5번이나 암 수술을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이 많은 막내 외삼촌은 초등학교 교장을 지냈습니다. 평생 교직에 몸담고 정직한 인품으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오셨고,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한 편입니다. 16년 전쯤 언니와 함께 외삼촌한테 진리를 전했을 때, 자신은 종교를 믿지 않는다며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종교 이야기를 하면 다시는 너희 집에 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지요. 옥천고앤컴연수원에서 열린 가족초청잔치에도 함께했으나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의지는 여전했습니다. 단호한 외삼촌의 태도에 영적으로는 아예 대화 자체가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외삼촌에게 말씀 전하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성별이 달라도 나이 차가 크지 않은 외삼촌과 매우…
한국 부산 박금령
인사로 전하는 하나님의 사랑
저는 예배 날 시온으로 들어오는 식구들을 맞이하고 성전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소한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즐겁고 따듯한 분위기를 조성해 시온을 사랑의 보금자리로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장 10절)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안내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합니다. 안내를 서는 동안 식구들이 들어오면 환한 미소로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입니다. 제가 서 있는 곳에서는 창을 통해 시온을 향해 걸어오는 식구들이 보이는데 누가 조금 지쳤는지, 누가 슬픈 일이 있는지 시온에 들어서는 분들의 그날 기분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됩니다. 식구들이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걸어서 시온에 오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빠듯한 생활, 많은 책임, 교통수단의 제약⋯ 갖가지 어려움으로 힘들어도…
캐나다 에드먼턴 리베카 Rebekah Mckinnon
자메이카에 있던 친구가 미국에서 진리를 영접하다
저는 하나님 은혜로 2020년 초에 진리를 영접했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었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가 원래 살았던 자메이카에 있는 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친구 킴벌리입니다. 킴벌리는 제가 시온 이야기를 하면 좋아했지만 성경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친구인 제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찾은 것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제 믿음이 성장하면서 킴벌리가 진리를 깨닫고 시온에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해 여름,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세상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 저희 브롱크스교회에서 온라인 성경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영혼을 구원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개최되는 모든 온라인 세미나에 킴벌리를 초대했습니다. 여러 차례 세미나에 참여한 킴벌리는 진리에 흥미를 느끼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성경 공부를 할 의지는 여전히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시온으로 발걸음할 기회를 흘려보내는…
미국 NY 브롱크스 대니엘 Danielle Williams
제 친구는 움직이는 성경입니다
오랜 친구를 통해 진리를 듣고 하나님을 영접한 자매님이 있습니다. 자매님을 인도한 친구는 식당에서 일하며 일주일에 한 번 쉬는데, 그때마다 자매님의 말씀 공부를 돕고 있습니다. 자매님은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가게를 운영합니다. 따듯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는 자매님을 위해 저희는 된장찌개와 잡채 등 맛난 음식에 사랑을 가득 담은 도시락을 싸서 가게에 방문했습니다. 자매님은 고마워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성경 말씀을 살피기로 했습니다. 가게에 마땅한 사무실이 없어 로비에 마련된 탁자에 성경을 펼쳤습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자리라 집중하기에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자매님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막 한 구절을 봤는데 손님이 자매님을 찾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응대를 마치고 다음 구절을 펼치자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습니다. 말씀 공부를 이어갈 상황이 안 되자 자매님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성경 위에…
한국 의정부 김향순
복음의 사명을 부탁하신 뜻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장 32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이 땅에 내려온 죄인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해 새 언약의 진리를 허락하셨습니다. 학창 시절 진리를 영접한 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적 자유의 축복을 한껏 누렸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뒤로 달라졌습니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많아지면서 하나님의 계명과 가르침이 나를 구속하는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한 번 싹트기 시작한 불평과 원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처음 사랑과 감동은 점점 사그라들었습니다. 식구들의 애정 어린 충고와 관심도 부담스럽기만 했습니다. 제 자신이 영적으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예전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요. 환경이 바뀌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신앙에 임한다면…
한국 화성 임혜민
하늘 가족의 사랑으로
고등학교 때 동네에 끔찍한 범죄가 일어났습니다. TV에서만 보던 일이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벌어지니 제게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습니다. 때마침 전화를 걸어온 친구에게 심경을 토로하자 친구는 어떤 재앙에서도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인 유월절을 지키자고 권했습니다. 친구는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더러 안 좋게 말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 같아서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학생으로서 성실하고 친구들에게 양보와 배려를 잘했던 친구에게 좋은 인상을 받은 터라 친구의 말에 관심이 갔습니다. 친구를 따라 유월절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약속했습니다. 처음 교회를 간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배 전에 간단하게 성경 말씀을 살폈는데 유월절은 물론 성경의 다른 말씀도 궁금해졌습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건하게 예배 준비를 하고 설교 시간에 성경으로 말씀을 살피는 모습도 좋아 보여서 망설임 없이…
한국 서울 임선희
사모행전(師母⾏傳)
저는 목회자 사모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엘살바도르에서 복음의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엘살바도르에 있을 당시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생긴 일입니다. 외부 대기실에 앉아 엘살바도르 본교회의 한국인 사모님과 통화를 마치고 나자 갑자기 간호사 한 분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인데 한국어가 들리길래 인사하고 싶어서 왔어요.” 수줍게 인사를 건넨 간호사는 엘살바도르에는 언제 왔느냐, 적응은 잘되느냐며 친근하게 물었습니다. 뜻밖의 상황에 저희는 서로 웃으며 그 자리에서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한 시간가량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요. 그러다 간호사는 제 시간을 뺏은 것 같다며,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순간 이 영혼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저희 교회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어요.” “어머니 하나님은 처음 들어보네요. 마리아인가요?” “아니요. 성경에는…
멕시코 푸에블라 서하늘
날마다 이어지는 보물찾기
사람들은 저마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아갑니다. 제 삶에서 가장 큰 가치를 둔 것은 돈이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라서인지 인생을 살면서 경제력을 갖추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돈을 모으기 위해 쉴 새 없이 일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수업을 앞두고 캠퍼스 의자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두 명의 한국인이 다가오기에 제게 무언가 물어보려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묻기는 했습니다, 제가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요. “하늘 어머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질문을 시작으로 그들은 많은 성경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분명 성경에 다 있는 것인데 보고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몇 번 더 말씀을 살폈지만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것도, 하늘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저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지인에게 무엇이 진실인지 물었습니다. 지인이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를 찾아가…
필리핀 일로일로 / 헤이즐 Hazel Marie Victoriano Bonitillo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통해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본질을 놓치고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제 자신은 다르다고 믿었습니다. 1996년경,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드디어 제 길을 찾았다는 생각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지요. 그로부터 십여 년 뒤, 예전에 함께 신앙하다 네팔에서 진리를 영접한 동료에게 성경 말씀을 전해 들으며 저 역시 구원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새 이름’으로 다시 오셨다는 것을 알고 나자 기존의 모든 지식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새 이름으로부터 시작된 구원의 비밀은 제 영혼을 단숨에 일깨웠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동방 땅끝 해 돋는 나라에 두 번째 임하셨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는 나를 위해 머나먼 인도 땅까지…
인도 WB 콜카타 포도푸쿠르 / 라주 Raju Purty
처음 사랑 끝까지
둘째로 태어나 장녀의 역할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나이 열다섯 살. 나이 차 많은 언니가 시집간 뒤부터였습니다. 아래로 줄줄이 네 명의 동생을 돌보는 일은 고스란히 제 몫으로 남았습니다. 그즈음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일터로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살림까지 제 차지가 됐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곧장 바로 아래 동생과 집안일을 분담해 해치우듯 끝내기 바빴고, 열 살 터울 막내는 업어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십 대의 방황은 시간이 없어서라도 못했습니다. 이십 대가 되어서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일은 기본이었고, 그렇게 모은 돈은 동생들 대학이며 결혼하는 데 보탰습니다. 동생들이 자라면서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긴 했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하려면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데도 어딘가 늘 허전했습니다. ‘왜 내가 여기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까?’ 빠듯한 삶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한국 인천 윤현숙
변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교회에 다녔습니다. 소위 모태 신앙이라고 하지요. 엄마를 따라가던 신앙에 스스로의 믿음이 싹튼 때는 중학생 시절입니다. 학교에서 저와 다른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는 무엇일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고민은 금방 해결되었습니다. 시온에서 성경 말씀을 열심히 살피면서 새 언약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고등학생 무렵 믿음 생활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 함께 몰려다니면서 생활이 점점 일그러진 것입니다. 학교생활은 불성실해졌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간신히 이어갔습니다. 늦게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였습니다. 또래 중 힘깨나 쓰는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제 자신이 뭐라도 된 듯 괜히 우쭐해져서 감정적으로 행동하거나 별다른 생각 없이 순간을 즐겼습니다. 가족들의 걱정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안산 장예진
고국에서 찾은 새로운 꿈
중학생이 될 무렵, 집안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져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새로운 거처는 고모가 살고 계신 미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한순간에 이민을 가게 된 겁니다. 다행히 지구 반대편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는 한국에서 온 또래들이 꽤 있었고, 현지인 아이들과도 금방 친해졌습니다. 얼마 뒤에는 저를 걱정하시던 할머니도 미국으로 건너오셔서 딱히 외로움을 타거나 소외감을 느낄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이 그리웠습니다. 몇 해가 흘러 이제는 한국보다 미국이 더 익숙한데도 마음은 항상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미국에 계속 있으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해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이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계신, 내 영혼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한국 성남 이민규
사랑하기에
아침부터 내리는 빗소리가 기분 좋게 들립니다. 옛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오래전, 하나님의 교회 식구들을 처음으로 만났던 때가 생각납니다. 기억하기로는 제가 너무나 두려워하던 세상의 미래에 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눈 최초의 시간이었습니다. 절을 즐겨 다녔던 저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기만 하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극락을 장담할 만큼 어질게 살지는 못했어도, 남은 생애를 선행으로 채워가면 될 일이라 여겼습니다. 문제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이었습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앞다투어 알려주는 전 지구적인 재앙의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착한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더없이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재앙에 휩싸여 어찌할 바 몰라 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비칠 때면 언젠가 제 자신도 꼭 무수한 재앙들 중 하나에 걸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재앙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오히려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왜…
한국 김해 양성림
내가 돌아갈 곳
세 아이를 키우면서 심신이 지쳐서인지 늘 아팠습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때도 많아 급기야 병원을 찾았더니 우울증 초기라고 하더군요. 치유를 위해 의사가 권유한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해보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도 갖고 친구들과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도 피웠습니다. 하지만 레슨과 식사, 여행 등에 할애하는 시간과 지출이 늘어나도 고통은 여전했습니다. 잠시 즐거운 시간이 지나면 금세 피곤이 몰려왔고 마음은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습니다.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워 하루 일과를 되돌아보면 괜스레 눈물이 났습니다. 가끔은 저도 모르게 “집에 가고 싶어”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한 날은 내 말을 듣고 있던 큰딸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엄마, 우리 집은 여기잖아요. 혹시 외갓집을 말하는 건가요?” “이 집이나 외갓집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어딘지는 엄마도 잘 모르겠지만 빨리 돌아가고 싶구나.” 이렇게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아이들 몰래 눈물을…
일본 도쿄 오이타 아이
마침내 복을 주시려
2016년 2월 17일,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말할 것도 없고 2시간 거리의 직장에서 일하는 남편도 휴가를 내어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호명되고 졸업장이 주어졌습니다. 더불어 몇몇의 아이들이 연단에 올라 상장을 받았는데, 그중 저희 아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 만큼 기뻤습니다. 누가 보면 학업우수상이라도 받은 줄 알겠지만, 아들이 받은 상은 체육 활동에 재능 있는 아이에게 주어지는 체육상이었습니다. 그 상이 저희 부부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심한 감기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같은 증세로 입원했고 두 달 사이 한 번 더 입원해, 아이는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아들은 입원할 때는 많이 아프다가도 링거를 맞고 하루만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팔팔하게 살아났습니다.…
한국 구미 이순덕
가장 큰 기쁨
어깨를 넘어 내려오는 긴 머리와 수염, 검은 선글라스에 청 점퍼를 입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자유분방한 모습. 진리를 깨닫기 전의 제 모습입니다. 머리와 수염은 당시 영화 촬영 때문에 기르고 다녔습니다. 영화배우로 일하며 적잖은 영화에 출연하고 한두 작품의 영화를 직접 만들기도 했던 저는 스스로의 재능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내 기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에 대해 안다 하면서도 정작 성경을 읽으면 이해가 안 됐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알려주지 않아도 목사를 하나님보다 더 믿으며 신앙을 이어갔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동창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대화 도중 교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가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도 친구는 성경과 교회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하루는…
몽골 울란바토르 도르지닥와
사랑이 빚어낸 축복
저희 가족은 서로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는 편입니다. 부모님은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셔서 함께 있으면 분위기가 늘 유쾌합니다. 오빠가 있는 친구들은 별것 아닌 일로 서로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다지만 저는 오빠와도 사이가 좋습니다. 고등학생 때 친구를 통해 진리를 영접하고 가족이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살다 도시에서 생활한 지 얼마 안된 저로서는 나쁜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걱정이었는데, 시온의 식구들은 ‘세상에 아직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싶을 만큼 선했습니다. 성경 말씀은 또 어찌나 확실하던지요.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섞인 궁금증들이 속 시원하게 풀렸습니다. 이 좋은 말씀, 이 따뜻한 시온을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부모님은 제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불교를 믿는 우리 집안에서 교회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셨고, 저를 감싸주던 오빠도…
한국 안양 김혜지
모든 행복과 기쁨이 어머니 안에
아들이 결혼할 사람이라며 며느릿감을 데려와 인사시켰을 때,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아가씨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내와 저도 기독교 신자라 아들 내외가 반듯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으니까요. 아들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며느리가 다니는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탐탁지 않았지만 며느리는, 싫은 기색을 보일 틈도 없이 우리에게 정말 잘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효부가 권하니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최하는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에도 다녀오고, 틈틈이 전해주는 교회 소식도 마다하지 않고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내외가 찾아와 애절한 눈빛으로 저희와 함께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저희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장로교가 정통이라고 생각해왔던 사람이고, 저 또한 30년 전 감리교 교회에서 신앙을 시작하고 총무를 지낼 정도로 열심을 내왔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정통에서 벗어난 교회라는…
한국 대구 이실건
길이 기다려주신 하나님께 보답할 시간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척박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는 기적의 양식이었습니다. 하지만 40년간 끼니마다 만나를 먹던 백성들에게 만나는 점점 박한 식물로 변해갔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5개월쯤 지나 진리를 영접하신 부모님은 몇 년 뒤 선지자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어릴 적부터 시온에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마냥 즐거웠던 시온 생활은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주말이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재밌게 지내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시온에서 꼬박꼬박 규례를 지켜야 하는 게 불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습니다. 불평불만은 잡초처럼 생명력이 강해서 한번 싹을 틔운 뒤로 도무지 사그라들 줄 몰랐습니다. 사춘기까지 겹치면서 마음은 점점 더 삐뚤어져갔습니다. 시온 식구들의 관심과 부모님의 사랑은 간섭과 참견으로, 당연하게 지키던 규례는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게…
한국 성남 서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