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향기
진리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변화된 식구들의 감동 이야기.
날마다 이어지는 보물찾기
사람들은 저마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아갑니다. 제 삶에서 가장 큰 가치를 둔 것은 돈이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자라서인지 인생을 살면서 경제력을 갖추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돈을 모으기 위해 쉴 새 없이 일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수업을 앞두고 캠퍼스 의자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두 명의 한국인이 다가오기에 제게 무언가 물어보려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묻기는 했습니다, 제가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요. “하늘 어머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간단하면서도 오묘한 질문을 시작으로 그들은 많은 성경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분명 성경에 다 있는 것인데 보고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몇 번 더 말씀을 살폈지만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것도, 하늘 어머니가 계신다는 것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워, 저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지인에게 무엇이 진실인지 물었습니다. 지인이 다니는 교회의 목회자를 찾아가…
필리핀 일로일로 / 헤이즐 Hazel Marie Victoriano Bonitillo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통해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본질을 놓치고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제 자신은 다르다고 믿었습니다. 1996년경,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드디어 제 길을 찾았다는 생각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지요. 그로부터 십여 년 뒤, 예전에 함께 신앙하다 네팔에서 진리를 영접한 동료에게 성경 말씀을 전해 들으며 저 역시 구원의 본질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새 이름’으로 다시 오셨다는 것을 알고 나자 기존의 모든 지식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새 이름으로부터 시작된 구원의 비밀은 제 영혼을 단숨에 일깨웠습니다. 참 하나님께서 동방 땅끝 해 돋는 나라에 두 번째 임하셨다는 사실을 알 턱이 없는 나를 위해 머나먼 인도 땅까지…
인도 WB 콜카타 포도푸쿠르 / 라주 Raju Purty
처음 사랑 끝까지
둘째로 태어나 장녀의 역할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나이 열다섯 살. 나이 차 많은 언니가 시집간 뒤부터였습니다. 아래로 줄줄이 네 명의 동생을 돌보는 일은 고스란히 제 몫으로 남았습니다. 그즈음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일터로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살림까지 제 차지가 됐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곧장 바로 아래 동생과 집안일을 분담해 해치우듯 끝내기 바빴고, 열 살 터울 막내는 업어 키우다시피 했습니다. 십 대의 방황은 시간이 없어서라도 못했습니다. 이십 대가 되어서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일은 기본이었고, 그렇게 모은 돈은 동생들 대학이며 결혼하는 데 보탰습니다. 동생들이 자라면서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긴 했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하려면 쉴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데도 어딘가 늘 허전했습니다. ‘왜 내가 여기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까?’ 빠듯한 삶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한국 인천 윤현숙
변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교회에 다녔습니다. 소위 모태 신앙이라고 하지요. 엄마를 따라가던 신앙에 스스로의 믿음이 싹튼 때는 중학생 시절입니다. 학교에서 저와 다른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천국으로 인도하는 진리는 무엇일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고민은 금방 해결되었습니다. 시온에서 성경 말씀을 열심히 살피면서 새 언약 진리를 확신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고등학생 무렵 믿음 생활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 함께 몰려다니면서 생활이 점점 일그러진 것입니다. 학교생활은 불성실해졌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간신히 이어갔습니다. 늦게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였습니다. 또래 중 힘깨나 쓰는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제 자신이 뭐라도 된 듯 괜히 우쭐해져서 감정적으로 행동하거나 별다른 생각 없이 순간을 즐겼습니다. 가족들의 걱정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안산 장예진
고국에서 찾은 새로운 꿈
중학생이 될 무렵, 집안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져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새로운 거처는 고모가 살고 계신 미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한순간에 이민을 가게 된 겁니다. 다행히 지구 반대편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는 한국에서 온 또래들이 꽤 있었고, 현지인 아이들과도 금방 친해졌습니다. 얼마 뒤에는 저를 걱정하시던 할머니도 미국으로 건너오셔서 딱히 외로움을 타거나 소외감을 느낄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이 그리웠습니다. 몇 해가 흘러 이제는 한국보다 미국이 더 익숙한데도 마음은 항상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미국에 계속 있으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해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이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 계신, 내 영혼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한국 성남 이민규
사랑하기에
아침부터 내리는 빗소리가 기분 좋게 들립니다. 옛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오래전, 하나님의 교회 식구들을 처음으로 만났던 때가 생각납니다. 기억하기로는 제가 너무나 두려워하던 세상의 미래에 관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눈 최초의 시간이었습니다. 절을 즐겨 다녔던 저는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기만 하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극락을 장담할 만큼 어질게 살지는 못했어도, 남은 생애를 선행으로 채워가면 될 일이라 여겼습니다. 문제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이었습니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앞다투어 알려주는 전 지구적인 재앙의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착한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더없이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재앙에 휩싸여 어찌할 바 몰라 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비칠 때면 언젠가 제 자신도 꼭 무수한 재앙들 중 하나에 걸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재앙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오히려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 왜…
한국 김해 양성림
내가 돌아갈 곳
세 아이를 키우면서 심신이 지쳐서인지 늘 아팠습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때도 많아 급기야 병원을 찾았더니 우울증 초기라고 하더군요. 치유를 위해 의사가 권유한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해보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도 갖고 친구들과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도 피웠습니다. 하지만 레슨과 식사, 여행 등에 할애하는 시간과 지출이 늘어나도 고통은 여전했습니다. 잠시 즐거운 시간이 지나면 금세 피곤이 몰려왔고 마음은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습니다.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워 하루 일과를 되돌아보면 괜스레 눈물이 났습니다. 가끔은 저도 모르게 “집에 가고 싶어”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한 날은 내 말을 듣고 있던 큰딸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엄마, 우리 집은 여기잖아요. 혹시 외갓집을 말하는 건가요?” “이 집이나 외갓집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어딘지는 엄마도 잘 모르겠지만 빨리 돌아가고 싶구나.” 이렇게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아이들 몰래 눈물을…
일본 도쿄 오이타 아이
마침내 복을 주시려
2016년 2월 17일,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말할 것도 없고 2시간 거리의 직장에서 일하는 남편도 휴가를 내어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호명되고 졸업장이 주어졌습니다. 더불어 몇몇의 아이들이 연단에 올라 상장을 받았는데, 그중 저희 아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 만큼 기뻤습니다. 누가 보면 학업우수상이라도 받은 줄 알겠지만, 아들이 받은 상은 체육 활동에 재능 있는 아이에게 주어지는 체육상이었습니다. 그 상이 저희 부부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심한 감기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같은 증세로 입원했고 두 달 사이 한 번 더 입원해, 아이는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아들은 입원할 때는 많이 아프다가도 링거를 맞고 하루만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팔팔하게 살아났습니다.…
한국 구미 이순덕
가장 큰 기쁨
어깨를 넘어 내려오는 긴 머리와 수염, 검은 선글라스에 청 점퍼를 입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자유분방한 모습. 진리를 깨닫기 전의 제 모습입니다. 머리와 수염은 당시 영화 촬영 때문에 기르고 다녔습니다. 영화배우로 일하며 적잖은 영화에 출연하고 한두 작품의 영화를 직접 만들기도 했던 저는 스스로의 재능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내 기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에 대해 안다 하면서도 정작 성경을 읽으면 이해가 안 됐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알려주지 않아도 목사를 하나님보다 더 믿으며 신앙을 이어갔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동창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대화 도중 교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가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도 친구는 성경과 교회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하루는…
몽골 울란바토르 도르지닥와
사랑이 빚어낸 축복
저희 가족은 서로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는 편입니다. 부모님은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셔서 함께 있으면 분위기가 늘 유쾌합니다. 오빠가 있는 친구들은 별것 아닌 일로 서로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다지만 저는 오빠와도 사이가 좋습니다. 고등학생 때 친구를 통해 진리를 영접하고 가족이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살다 도시에서 생활한 지 얼마 안된 저로서는 나쁜 친구들을 만나게 될까 걱정이었는데, 시온의 식구들은 ‘세상에 아직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싶을 만큼 선했습니다. 성경 말씀은 또 어찌나 확실하던지요.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섞인 궁금증들이 속 시원하게 풀렸습니다. 이 좋은 말씀, 이 따뜻한 시온을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부모님은 제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불교를 믿는 우리 집안에서 교회는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셨고, 저를 감싸주던 오빠도…
한국 안양 김혜지
모든 행복과 기쁨이 어머니 안에
아들이 결혼할 사람이라며 며느릿감을 데려와 인사시켰을 때,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아가씨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내와 저도 기독교 신자라 아들 내외가 반듯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으니까요. 아들이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며느리가 다니는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탐탁지 않았지만 며느리는, 싫은 기색을 보일 틈도 없이 우리에게 정말 잘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효부가 권하니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최하는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에도 다녀오고, 틈틈이 전해주는 교회 소식도 마다하지 않고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내외가 찾아와 애절한 눈빛으로 저희와 함께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저희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장로교가 정통이라고 생각해왔던 사람이고, 저 또한 30년 전 감리교 교회에서 신앙을 시작하고 총무를 지낼 정도로 열심을 내왔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정통에서 벗어난 교회라는…
한국 대구 이실건
길이 기다려주신 하나님께 보답할 시간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척박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는 기적의 양식이었습니다. 하지만 40년간 끼니마다 만나를 먹던 백성들에게 만나는 점점 박한 식물로 변해갔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5개월쯤 지나 진리를 영접하신 부모님은 몇 년 뒤 선지자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어릴 적부터 시온에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마냥 즐거웠던 시온 생활은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주말이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재밌게 지내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시온에서 꼬박꼬박 규례를 지켜야 하는 게 불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습니다. 불평불만은 잡초처럼 생명력이 강해서 한번 싹을 틔운 뒤로 도무지 사그라들 줄 몰랐습니다. 사춘기까지 겹치면서 마음은 점점 더 삐뚤어져갔습니다. 시온 식구들의 관심과 부모님의 사랑은 간섭과 참견으로, 당연하게 지키던 규례는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게…
한국 성남 서준영
어머니를 마음에 품고 깨어나
할아버지의 80세 생신을 맞아 10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는 엄격하고 강한 분이셨고 매사에 부지런하셔서 추수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서 곡식을 살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척 강인하고 건강한 분이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지신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움직임도 거의 없고 말씀도 많이 하지 않으셨다.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계시다 잠들고는 하셨는데 앉고 일어서는 것조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애쓰시는 할아버지께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할아버지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나는 문득 한 분을 떠올렸다. 우리 죄로 이 땅에 오셔서 수고와 희생의 세월을 보내시는 어머니.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은 복음이 온 세상에 다 전파되어야만 끝이 날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정신이 확 들었다. 흐트러진 내 마음을 바로잡아 영적으로…
필리핀 만달루용 / Jomarie M. Supleo
언 땅에 묻혀 있던 씨앗이 땅 위로 얼굴을 내밀듯
작은아들과 살림을 합치면서 시흥으로 이사했습니다. 육십 평생 살던 곳을 떠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큰아들과 큰딸도 시흥에 있었던 터라 좋은 마음으로 거처를 옮겼지요. 그런데 어느 날, 큰딸이 와서 뜬금없는 말로 저를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엄마, 성경에 하늘 어머니가 계신대.” 세상에, 하늘 어머니라니요. 수십 년 동안 천주교회를 다녔지만 전혀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저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딸을 내쫓다시피 돌려보냈습니다. 이후로 교회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도록 화도 많이 내고 구박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딸은 여러 해가 지나도록 한결같이 성경 말씀을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엄마 구원한다고 저렇게 애를 쓰는데, 부모 자식 간에 원수를 져서 되겠나. 내가 마음을 바꿔야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요. 결국 새 생명의 축복을 받고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자 신기하게도 흘려들었던 성경 말씀들이 생각났습니다.…
한국 시흥 신동례
온 가족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2017년 여름, 줄곧 그려왔던 너무나도 행복한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가족 모두가 하나님 품 안에서 한목소리로 찬양하며 천국 소망을 나누는 꿈.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던 안식일 오전 예배 시간, 제 눈가에는 가슴 벅찬 행복이 방울방울 맺혔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천국 소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많은 문제들을 보고 더 이상 교회를 가지 않다가 하나님의 교회를 알았습니다. 새 언약 진리를 살피며 천국에 대한 확신을 느끼고 기쁜 마음으로 진리를 영접했지요. 교회에 다닌 지 두 달 남짓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항상 회사 일로 바빠 얼굴 볼 새도 없던 남편이 별안간 퇴근 시간이 빨라졌습니다. 외식을 시켜주겠다며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가 하면 밥 먹는 도중에는 아들에게 “지호야, 아빠가 옆에 있을 때 자주 사줄게. 많이 먹어” 하며 애틋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한국 서울 석민서
천사의 동행
네팔에서 비자를 받아 인도로 갈 당시, 네팔 공항에서 비자를 발급받는 과정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가진 돈은 인도 루피뿐인데 한화, 달러, 네팔 루피가 아니면 결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현금 교환기마저 고장 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친절한 외국인 여성 2명의 도움으로 위기 상황을 해결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천사를 보내주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천사의 등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룻밤을 네팔에서 보내고 인도로 갈 예정이라, 예약한 호텔에서 마중을 나왔나 보려고 제 이름이 적힌 피켓을 한참 찾았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제 이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항에서 두리번거리는 이방인을 본 택시 기사들은 손님을 서로 자신의 택시에 태우려고 야단이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다 거절하고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친절한 공항 직원을 만나 무사히 호텔까지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호텔에서도 사건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직원이 처음에는 인도 루피로는 결제가 안 된다고 하더니 갑자기 “참,…
한국 부산, 김지영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오래전 언니가 개신교 교회에 다닐 때였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갔다 오겠다고 집을 나선 언니가 온몸에 멍이 든 채 귀가했습니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으니 교회에서 종교의식을 행하다 생긴 자국이라고 하더군요. ‘성도의 몸을 상하게 하는 교회가 과연 올바른 곳일까? 하나님은 없는 것이 분명해!’ 교회에 불신이 생긴 저는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언니도 그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언니가 다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또 교회라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저에게 함께 교회에 가보자는 언니의 권유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언니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예전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걱정과 달리 언니의 표정이 밝았습니다. 한결 여유로워지고 남도 잘 배려했습니다. 어쩐지 하나님의 교회는 여느 교회와 다른 듯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언니가 부러워 저도 고집을 꺾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니처럼…
한국 인천, 강연숙
핍박이 축복으로
작열하는 태양 아래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식구들은 한마음으로 전도축제에 동참해 북인도 전역에 시온의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실롱교회에도 은혜로운 사연이 있어 소개합니다. 몇 달 전, 실롱교회 청년 두 명이 복음을 전하다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심하게 훼방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주위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 한 아주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도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가족, 심지어 자신이 겪은 일처럼 괴로웠다고요. 그래서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도무지 그리스도인 같지 않은 그 사람들을 마을에서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아주머니는 그럴 만한 권한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교회 건물을 아주머니의 남편분이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형제님들을 괴롭힌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에 출입할 수 없어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 아주머니는 심한 핍박을 받고도…
인도 실롱교회
시온에서 이루어진 형제의 연합
네팔 헤타우다의 바카이야라는 지역에는 타망 민족과 마지 민족이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두 마을이 형성되기까지 타망 민족과 마지 민족은 수 세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상대방이 믿는 신을 노엽게 할 목적으로 마지 민족은 돼지의 지방을 타망 민족의 신전에 뿌리고, 타망 민족은 소의 지방을 마지 민족의 신전에 뿌리는가 하면 한번은 극심한 싸움으로 마을 전체가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를 시온에서 만난다면 어떨까요? 어느 민족 출신인지는 시온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2019년 승천일 기념예배 때 두 마을에 사는 성도들이 어머니의 사랑 안에서 더욱 하나가 된 시온의 향기를 전합니다. 야외에서 드리는 승천일 예배 장소는 카지포카리라는 곳이었습니다. 식구들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식사를 준비해서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을 부지런히 걸어 카지포카리에 도착했습니다. 은혜로운 승천일 오전 예배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각 마을 사람들끼리 식사하려는 분위기라,…
네팔 헤타우다, 키란
부모님의 마음으로, 군인 정신으로
넉넉지 않은 농사꾼 집안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늘 고민했습니다. 뭘 해야 배곯지 않고 살 수 있을지를요. 고심 끝에 직업군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라면 특전사로 복무 중인 사촌 형님처럼 부사관이 되어 몇 해 동안 꼬박꼬박 월급 받으면서 삶의 기반을 다지는 게 좋을 듯했습니다. 말도 못하게 고생한다며 형님이 말리는 통에 특전사는 포기하고 일반 육군 부사관으로 지원해 무사히 교육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임관 후 배치받은 부대가 하고많은 곳 중에 특수부대였습니다. 특전사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라 밥 먹고 돌아서면 체력 단련, 돌아서면 훈련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습니다. 천리행군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납니다. 훈련이 시작되면 보통 3주가량 낮에는 산을 타고 밤에는 산속에서 숨어 자는 일과를 반복하며 천 리(약 40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집결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부터가 진짜 행군의 시작이었습니다. 5박 6일간 밤마다…
한국 파주, 박인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