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

가족 사랑 수기

잔잔하면서도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엄마의 편지

“엄마, 저예요. 뭐하고 계셨어요?” “어, 나 숙제하고 있어.” “무슨 숙제요?” “받아쓰기 틀린 문제 세 번씩 쓰기.” “엄마, 딱 세 번만 쓰셔요. 열심히 하려다 몸에 무리 갈까 걱정돼요.” “이미 몇 번 더 썼는데?”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면 한동안 되풀이되던 통화 내용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어릴 적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엄마는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 늘 크셨다. 그러다 얼마 전 지인을 통해 노인을 위한 한글교실을 알게 되셨는데,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수업에 한 번도 결석한 적 없고 숙제도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하시는 통에 선생님께 칭찬과 더불어 우려를 샀다고 한다. 체력도 약한 어르신이 무리하실까 선생님도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배움에 열정적이신 엄마를 보며 매사 어영부영 시간만 때우는 듯한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다. 하루는 글공부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느냐고 넌지시 여쭈니 엄마는, “맞춤법을 정확히 배워서 너희들에게…

한국 수원, 황주희

행복한 요리 시간

지난 명절, 중학생이 되는 저는 음식 준비로 바쁘신 엄마를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은 명절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장을 보러 가시는 엄마를 따라나서서 카트를 끌고 졸졸 붙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음식 만드는 날이 되었을 때, 저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엄마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의 주요리는 산적. 저는 산적에 들어갈 햄을 잘랐습니다. “햄 자르는 건 내 전공이지!” 하며 자신만만하게 소리치고 시작했지만, 햄은 제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이상하게 잘렸습니다. 크기도 제각각, 모양도 제각각이었죠. 엄마는 “이게 뭐냐?” 하시면서도 웃으면서 잘했다 하셨습니다. 햄을 다 잘랐으면 볶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에 제가 또 나섰습니다. “하하, 볶는 건 요리 중에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지!” 그러나… 네, 볶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습니다. 햄이 타지 않도록 힘을 주어 골고루 섞으려고 했는데 햄들은 프라이팬 안에서 미동을 하지 않더군요. 겨우겨우 볶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한국 용인, 문강산

불효자는 웁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아들 하나, 딸 셋을 홀로 키우셨습니다. 새벽이면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궤짝으로 사 와 동네에서 소매로 파는 등, 엄마는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셨습니다. 엄마는 늘 밤늦게 들어오셨기에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살림을 도맡아 하며 저와 동생을 돌봤습니다. 언니들의 잔심부름은 동생 차지여서 셋째인 저는 딱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활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느낄 새 없이 놀기만 했지요. 언젠가 엄마가 저를 부르시더니 다리가 아프다고, 좀 주물러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귀찮아서 주무르는 시늉만 하다 말았습니다. 엄마가 벌써 끝났느냐며 조금 더 주물러달라고 하셨지만 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대충 주무르다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며칠 뒤, 엄마가 또다시 저를 불러 다리 좀 주물러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온갖 짜증을 내며 나도 힘들어서 못 한다 하고는 방으로 휙 들어가…

한국 서울, 최영진

어려울 때 하나 된 가족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이 다리를 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작은 교통사고로 넘어졌다며, 다리가 욱신거린다고 했습니다. 괜찮은 것 같아서 병원에 안 가고 바로 왔다는데 후유증이 있을까 걱정되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무릎에 타박상 약을 발라주고 얼음찜질을 해주었습니다. 하루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남편의 말대로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남편은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무릎 인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살짝 넘어졌다는데 수술이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래도 그만한 것에 감사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실 거예요” 하며 힘을 주었습니다. 수술 당일, 수술실로 들어가는 남편에게 하나님께 같이 기도하자고 말했더니 남편도 알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대답이 어찌나 고맙게 들리던지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남편을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저와 작은아들은 병실에서 함께 기도하며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마쳐져 감사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온…

한국 서울, 계경남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저희 집은 언제나 왁자지껄 소란스럽습니다.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연년생 아들과 딸입니다. 둘은 틈만 나면 붙어서 장난치다 결국에는 싸움으로 이어지기 일쑤입니다. 보다 못해 서로 1미터 접근 금지령을 내리기도 하지만, 식사 준비나 청소에 신경 쓰고 있노라면 어느새 또다시 장난을 치곤 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며 주위 사람들은 부럽다고 말합니다. 남매가 잘 지내고 서로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요. 그런 말을 들으면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집에서는 툭하면 티격태격하는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했습니다. 하루는 교회에서 ‘가족 초청 잔치’ 행사를 위해 가족 신문 만들기와 가족에게 엽서 쓰는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가족 신문을 만들려면 사진부터 찾아야 했기에, 시댁에 가서 아이들 어릴 적 사진이 있는 앨범을 가지고 왔습니다. 적당한 사진을 고르고 신문을 꾸미던 중 풀이 필요해 딸아이 방에 가서 풀을 찾고 있는데, 옆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침대 위에서 앨범을 보던…

한국 김천, 박정아

만능 엄마

“엄마, 나는 커서 엄마가 될 거야.” “왜?” “엄마는 한 손으로는 휴지를 들고,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을 수 있잖아.”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네 살 때 엄마에게 한 말이란다. 시장에 다녀오는 길, 엄마는 한 손에 두루마리 화장지 세트를 들고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았다고 한다. 그런 엄마가 내 눈에는 대단해 보였나 보다. 그때의 내 키가 화장지 세트와 비슷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럴 법도 하다. 지금 나는 엄마보다 키가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엄마는 나에게 마냥 대단한 존재다. 내가 성인이 되어도 못하는 것을 엄마는 척척 해내시기 때문이다. 도배와 가구 리폼에서부터 뜨개질, 옷 수선, 미용 기술까지,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못하시는 일이 없다. 덕분에 웬만한 일은 다른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도 집에서 해결이 된다. 얼마 전에는 집에 돌아오니 가구란 가구가 모조리 벽에서부터 조금씩 떨어져 있었다. 엄마가…

한국 부천, 이정연

닮고 싶은 엄마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롤모델이 있으며 그 롤모델을 닮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닮고 싶은 사람은 저의 엄마입니다. 늘 가족을 돌보고 사랑해주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배우고 싶었습니다. 제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주방에서 엄마를 도우며 집안일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학업을 위해 엄마와 멀리 떨어져야만 했습니다. 엄마 곁을 떠난 후에야 엄마처럼 되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일일이 보살피고 가족이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일은 쉽지 않지만, 엄마는 지금도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휴일을 맞아 집에 갔을 때 엄마의 일을 대신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엄마가 집안일에서 벗어나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라며, 제가 집에 머무는 동안 잠시나마 공주가 된 기분이 들도록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편히 앉아 계시라고 말씀드리고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엄마가 특별히 좋아하는 미트볼을 만들 계획이었지요. 미트볼을…

인도 바도다라, 비니

어머님의 며느리 사랑

저희 가정은 6년 동안 시댁에서 살다 분가했습니다. 어머님은 한집에 살 때도 잘해주셨지만, 분가하고 나서는 더욱 잘 챙겨주셨습니다. 하루는 어머님이 전화하셔서 저희 집에 들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약속한 날, 집을 방문하신 어머님 손에는 짐이 한가득 들려있었습니다. 그날이 제 생일인 것을 기억하시고는 갓 끓여 따뜻한 미역국과, 함께 살 때 제가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던 각종 반찬 등을 바리바리 싸 오신 것입니다. 어머님은 제가 불편할세라 짐만 풀어놓으시고는 바쁘다며 황급히 일어서셨습니다. “힘들어서 올해까지만 챙겨준다. 내년부터는 없다.” 무뚝뚝하지만 애정이 스며 있는 말씀에 찬찬히 과거를 곱씹어보니, 어머님은 제가 결혼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생일을 챙겨주셨습니다. 그렇게 돌아서시는 어머님의 작은 등을 보면서 이 못난 며느리에게 친정엄마 못지않은 사랑을 주시는 어머님께 감격했고, 또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날 남편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가족을 대할 때 사랑보다는 그저 책임감을 앞세울 때가…

한국 대구, 정혜수

나의 세 살 적 모습

가깝게 지내는 지인의 세 살배기 아이를 잠깐 돌봐주게 되었습니다. 마침 함께 외출 중이던 부모님 차로 아이를 태워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린아이를 돌볼 기회가 많이 없어서 그런지 부모님도 매우 반기셨지요. 도착 후, 집이 3층이어서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올라야 했습니다. 그때 아빠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삼촌이 안아줘도 돼요?” 저는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아닌 삼촌이라는 호칭도 그렇고,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는 아빠의 모습이 재밌었거든요.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올라가는 아빠의 발걸음이 매우 신나 보였습니다. 아이도 기분이 좋은지 뒤따라 올라가는 제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집에 온 아이는 낯선 공간에 장난감 하나 없는 데도 잘 놀았습니다. 아이의 간식을 준비하다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기에 가 보았더니, 세상에! 아빠가 묘기 수준의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시범을 보이면 그대로 따라 하셨는데, 아빠는 괴로운 듯 보였지만 웃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장바구니 안으로…

한국 성남, 박윤정

미안해요, 고마워요!

하루는 초등생 딸이 달고나를 만들어 먹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집 청소를 마친 터라 어지르는 게 마뜩잖았지만,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서만 지내는 아이가 안쓰러워 허락해 주었습니다. 동생의 모습에 흥미를 느꼈는지, 처음엔 안 한다고 하던 중학생 아들도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사춘기라 예민한 두 아이가 소꿉장난하듯 같이 달고나를 만들고 있으니 보기 좋았지요. 그런 모습을 보고 방에 들어갔는데 잠시 후, 아들의 짜증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화장실로 달려가 씻는 소리가 났습니다. 제가 거실로 나갔을 때, 아들은 소파에서 얼음찜질을 하고 딸아이는 속상한 표정으로 설탕 가루와 갖가지 도구들로 지저분해진 자리를 치우고 있더군요. 아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뜨거운 데 뎄다고 했습니다. 별일도 아닌데 뒷정리를 동생에게 떠넘기려는 것 같아, 순간 아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야단을 쳤더니 아들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뒷정리하는 동생을 돕더군요. 나중에 아들의 손과 발을 자세히 살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발에…

한국 안양, 조은영

부모님을 대신해

8남매 중 맏이인 저는 어릴 적, 일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하고 동생들을 돌보았습니다. 엄마는 간호조무사로 교대근무를 했는데, 한번 출근하면 32시간, 때로는 68시간 동안 엄마를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퇴근하면 편히 쉴 수 있도록 식사를 차려드리고 간호복을 빨아서 다렸습니다. 엄마는 제게 이렇게 부탁하곤 했습니다. “내 사랑, 엄마의 오른손이 되어줘서 고마워. 동생들의 등교 준비를 도와주렴. 정류장까지 갈 땐 동생들을 앞세워서 뒤따라가며 보호해다오. 그리고 아빠가 집에 오시면 왕처럼 대해드려.” 트럭 운전사였던 아빠는 오랜 시간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신발 벗을 힘조차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되셨습니다. 저는 아빠의 부은 발에서 신발을 벗겨드리고, 샤워 물을 받고, 식빵을 구웠습니다. 아빠에게 당뇨병이 있어 인슐린 주사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집에 오면 아빠는 다시 일을 나갔습니다. 부모님은 바쁜 와중에도 쉬는 날이면 저희와 함께했습니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주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미국 CA 샌디에이고, 라일라니

당연하지 않은 일상

우리 집은 집안일을 부모님이 나눠서 하신다. 청소는 아빠가, 빨래는 엄마가, 식사 준비는 두 분이 함께. 나도 이제 성인인데 부모님만 일하시는 게 민망해 돕겠다고 나서면, 부모님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말리신다. 휴일인 어느 날, 부모님이 외출하셔서 집에 혼자 남았다. 집안일을 독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걷어 개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엄마는 반듯이 잘만 개던데, 내가 하니 접힌 부분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모양이 영 엉성했다. 시행착오 끝에 최대한 보기 좋게 매만져 각기 제 위치에 갖다 놨다. 빨래를 개고 나니 어질러진 집 안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을 시작으로 안방, 옷방, 내 방, 주방 순으로 청소기를 돌렸다. 중간중간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치우느라 허리를 굽혔다가 폈다가, 청소기를 껐다가 켰다가를 반복했다. 바닥을 다 밀고 나니 허리가 쿡쿡 찌르는 듯 아팠다. 그래도 집이…

한국 안양, 김하진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

‘○월 ○일.’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 이름이다. 특정 날짜를 떡하니 써 붙인 가게를 보며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의미를 궁금해하다가, 한날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음료를 주문한 뒤, 주인이 음료를 준비하는 동안 가게 이름이 무슨 뜻인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주인은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이라고 대답했다.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날이라면 자신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정도가 아닐까 싶어서 그런 뜻이냐고 했더니, 주인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 아들 생일이에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드님 생일이면, 사장님께는 가장 힘들었던 날 아니에요?” “무슨 소리를요. 저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기쁜 날이었는걸요.” 사람이 자연적으로 겪는 가장 큰 고통이 출산이라는데, 주인은 출산의 고통은 다 잊은 듯 오히려 행복한 날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이 태어난 날을 간판으로 내건 가게에서 향긋한 커피를 볶고 우유를 데우며 손님을 맞는 주인을…

한국 안양, 오진휘

엄마의 칠순 잔치

2019년 3월 1일은 엄마의 칠순이었습니다. 기억에 남을 멋진 칠순 잔치를 위해 작전에 돌입한 우리 사 남매는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생신 전날, 약속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부모님, 큰오빠네 5명, 언니네 4명, 작은오빠네 6명, 그리고 저까지 총 18명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하룻밤을 묵을 계획으로 큰오빠가 숙소를 예약해 둔 터였습니다. 그날, 숙소에 딸린 식당에서 작은오빠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1부 행사의 막이 올랐습니다. 사회를 맡은 작은오빠는 식순이 적힌 종이를 식구들에게 나눠주고 준비한 마이크를 꺼내 들었습니다. 먼저, 아버지가 대표로 축하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라는 짧고 굵은 한마디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 마음에 묵직하게 와닿았습니다. 이어 다 함께 생신 축하 노래를 부르고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감사패 제작은 제가 맡았는데, 감동적인 문구를 만드느라 고심했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기뻐하시니 뿌듯했습니다. 시끌벅적,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식사한…

한국 서울, 윤주영

언니처럼

집에서 막내인 저는 힘들고 궂은일을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 생신조차 항상 언니가 주도해서 생신상을 차리고 선물을 챙겼기에 저는 딱히 신경 쓸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가오는 엄마의 생신에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언니가 외국으로 가고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엄마가 넌지시 “딸이 끓여주는 미역국 먹고 싶다”라고 말씀하셔서, 혼자 미역국을 끓일 수 있을까 걱정됐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곧 스무 살이 되는데,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요리라고는 기껏해야 라면뿐입니다. 그런 저에게 미역국 끓이기는 고난도 미션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조리법을 찾아보면서 밤낮으로 연구해 봤지만 ‘내가 과연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커졌습니다. 어느새 엄마의 생신날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늦은 밤 자려고 누웠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언니였습니다. “여보세요?” “미역국 끓일 줄 알아?” 대뜸 그렇게 묻는 것을 보니 언니도 제가 엄마…

한국 광주, 조은비

집밥

‘오늘 저녁은 뭐 먹지?’ 퇴근길에서부터 싱크대 앞에 서기까지, 머릿속에 맴도는 고민거리다. 직장을 옮기면서 시작한 자취 생활로, 지금까지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던 일들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저녁을 차리는 일이다. 저녁 식사 타이밍을 놓친 어느 날이었다. 늦은 저녁이라 거창한 요리를 하기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전날 먹은 밑반찬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먹을 만한 게 있나 찬장을 살펴보다가 볶음김치 통조림을 발견했다.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딱 떠올랐다. 김치볶음밥이다. 이왕이면 맛있게 먹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조리법을 찾아보았다. 필요한 재료도 집에 다 있고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 곧바로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냉동실에 얼려둔 대파를 잘라 넣었다. 파기름을 내려고 살살 저어가며 볶기 시작하자, 폭죽 터지듯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급하게 불을 줄였지만 파에서 나온 수분이 기름을 만나 내뿜는 소리는 요란했다. 서둘러 참치를 넣고 뒤적거린…

한국 안양, 김정하

작은 정성으로 만드는 행복한 가정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남편,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는 딸, 그리고 저. 저희 집은 이렇게 세 식구입니다. 남편과 딸이 워낙 바빠 평소 한자리에 모이기도 힘들지만, 『행복한 가정』 책자의 ‘이달의 미션’을 나름대로 열심히 실천하니 가정에 소소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저는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 배웅을 설거지 핑계로 소홀히 했던 예전과 달리, 포옹과 함께 사랑이 담긴 인사말을 전할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남편 월급날이면 고마운 마음을 담아 특별한 음식을 꼭 차려주는 것도요. 얼마 전에는 하나님께서 유월절에 세족 예식으로 본 보이신 사랑을 가정에서부터 실천하자는 의미에서 ‘가족 족욕시키기’ 미션을 시행했습니다. 직업 특성상 종일 안전화를 신고 일하는 남편에게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 후, 미션 수행을 위해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붓고 소금과 베이킹소다를 풀어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고정석(?)인 소파에서 리모컨을 꼭 쥐고 TV 시청에 열중인…

한국 서울, 김은숙

손끝에 누린 호사

문득 어릴 적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대략 열 살 때였어요. 학교를 오가며 자주 다니는 거리에 화장품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가게 밖에는 매니큐어가 수북이 쌓인 바구니가 노상 나와 있었습니다. 하루는 두 살 어린 여동생과 화장품 가게 앞을 지나다 매니큐어 바구니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알록달록 빛깔 고운 액체가 담긴 작은 유리병들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요. 손톱을 한 번도 칠해본 적 없는 저는, 친구들이 이따금 색칠한 손톱을 자랑할 때면 내심 부러웠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저도 모르게 바구니에 있는 매니큐어 하나를 재빨리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때, 점원이 오랫동안 가게 앞에 있는 우리를 수상쩍게 여기며 가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눈치 빠른 동생은 제가 슬쩍한 매니큐어를 얼른 제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동생에게 창피한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동생이 그 일을 엄마에게 낱낱이 고하는 바람에 꾸중을 들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 갔다 집에 오니 엄마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김도영

어려울 때 화목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저희 가정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날마다 TV 뉴스, 신문, 재난 알림 문자 등을 통해 개인위생 관리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야 한다는 내용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며칠씩 집에만 머물러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겨울방학을 아주 길게(?)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날마다 삼시 세끼 차려 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죠. 하루는 식사 중 막내아들이 그러더군요. “엄마! 생각해보니, 집안일은 힘들지는 않은데 귀찮은 일 같아요.” 그러면서 아들은 집안일을 엄마 혼자 하지 말고, 가위바위보로 각자 원하는 일을 정해서 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평소에도 제가 바쁠 때면 아이들이 집안일을 더러 도와주는 터라,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요즘은 되도록 안 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청하니 저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국 서울, 권미숙

우리가 제일 예쁠 때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물건이 있다. 약 이십 년 전 아빠가 큰맘 먹고 구입하셨던 캠코더의 비디오테이프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집 한구석에 조용히 모셔져 빛을 보지 못했던 캠코더는, 오랫동안 작동을 하지 않아 테이프 인식 장치가 그만 고장 나고 말았다. 나는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영상이 궁금해 영상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주는 업체를 찾아 테이프를 맡겼다. 일주일 뒤, 영상이 담긴 USB가 집에 도착했다. 온 가족이 설레는 마음으로 TV 앞에 앉아 USB를 연결하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햇볕에 그을려 온몸이 까무잡잡한 나, 이 빠진 둘째, 갓 돌을 넘긴 막내…. 영상 속 우리 세 자매의 모습에 실실 웃음이 나왔다. 하는 행동들은 어찌나 유치한지 셋이서 무반주에 제멋대로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문제는 우리의 온갖 몹쓸(?) 소행도 고스란히 포착됐다는 것이었다. 고작 장난감 하나로 티격태격하거나 학습지 문제를…

한국 부천, 이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