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특별한 버스 정류장

강원도 태백시 산간도로에 특별한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사람 이름을 따서 만든, ‘권춘섭 집 앞’ 정류장입니다. 1999년에 생긴 이 정류장의 이름은 원래 ‘권상철 집 앞’이었습니다. 투병 중인 아내가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멀리 떨어진 정류장을 오가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권상철 씨. 그는 버스 정류장을 추가로 설치해달라고 시청에 거듭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집에서 가까운 곳에 버스 정류장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정류장 이름이었습니다. 워낙 외진 산골이라 주변에 정류장 이름으로 삼을 만한 건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류장 이름은 ‘권상철 집 앞’으로 정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권상철 씨는 세상을 떠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지키고 있는 장남 권춘섭 씨의 이름으로 정류장 명칭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버스 정류장이 2대에 걸쳐 이어져온 것입니다. 아내를 위한 남편의 따뜻한 마음으로 세워진 버스 정류장. 아내가…

선생님의 마지막 선물

2018년 6월, 알록달록한 어린이용 책가방을 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책가방 안에는 여러 가지 학용품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인 곳은 다름 아닌 장례식장. 59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태미 워델(Tammy Waddell)의 발인 날이었습니다. 워델은 미국 조지아주 포사이스 카운티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약 30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그녀는 평소 학생들을 ‘내 자식들’이라 부를 정도로 각별히 대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배울 권리가 있다며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암이 재발해 시한부 선고가 내려지자,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내 장례식에 꽃 대신 학용품이 든 책가방을 가져와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세요.” 문상객들이 어린이용 책가방을 갖고 장례식장에 모인 까닭은 고인의 마지막 부탁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제자들을 사랑한 선생님의 장례식장은, 마치 마지막 수업을 하듯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어머니를 마음에 품고 깨어나

할아버지의 80세 생신을 맞아 10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는 엄격하고 강한 분이셨고 매사에 부지런하셔서 추수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서 곡식을 살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척 강인하고 건강한 분이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지신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움직임도 거의 없고 말씀도 많이 하지 않으셨다.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계시다 잠들고는 하셨는데 앉고 일어서는 것조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애쓰시는 할아버지께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할아버지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나는 문득 한 분을 떠올렸다. 우리 죄로 이 땅에 오셔서 수고와 희생의 세월을 보내시는 어머니.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은 복음이 온 세상에 다 전파되어야만 끝이 날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정신이 확 들었다. 흐트러진 내 마음을 바로잡아 영적으로…

필리핀 만달루용 / Jomarie M. Supleo

제자를 살린 선생님

미국 조지아주에 사는 열두 살 소년 카덴 코우브키는 두 살 때 희귀 신장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섯 살 때 아빠의 신장을 이식받으면서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나, 얼마 안 가 부작용이 생기는 바람에 계속 투석을 받아야 했습니다. 2018년 들어 병세가 심해지자 담당 의사는 빨리 신장 기증자를 찾는 것이 카덴이 건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카덴의 가족은 신장을 기증해줄 사람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병원으로부터 적임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고, 위급한 상황에 있었던 소년은 무사히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증자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기에 소년과 그의 가족은 이름 모를 생명의 은인에게 그저 마음으로만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신장을 기증해준 사람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바로, 카덴의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제자의 사연을 듣고 몰래 조직 검사를 받은 선생님은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자 망설임 없이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카덴이…

축복의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

말레이시아에서는 300개 복음 도시 건설을 목표로 달마다 단기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기회를 붙잡고자 많은 형제자매가 자원하였고 저희도 그 축복에 동참하여 클루앙 단기선교에 나섰습니다. 클루앙은 복음이 전혀 전파되지 않은 지역으로, 저희에게 복음의 불모지를 개척하고 진리를 전하는 사명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거듭 감사드렸습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클루앙까지 이동하는 데만 4시간 반. 4박 5일이라는 짧은 여정에 저희는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짐을 풀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로 향했습니다. 클루앙 사람들은 이 시대의 구원자이신 성령과 신부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진리 말씀에 귀 기울이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속히 나아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온종일 말씀을 전했는데도 하나님의 진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말씀을 듣는다 해도 관심이 없다며 더 이상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기대와 다른 반응에 약간 실망감이 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시에 단기선교를 시작한 다른…

말레이시아 클루앙 단기선교단

엄마를 대신한 사랑

“미숙아, 딸기 먹으러 와.” “미숙아, 옥수수가 너무 맛있게 됐어. 쪄 놓을 테니 와서 먹어.” “미숙아, 산에 가서 두릅이랑 취나물 뜯었는데 너무 맛있어. 먹으러 와.” 먹을 것이 생길 때마다 부르는 큰언니. 육 남매의 맏이인 큰언니는 내가 바쁘다는 걸 알면서도 맛있는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연락을 한다. 언니 집에는 대형 냉장고가 둘, 김치냉장고가 둘, 총 네 대의 냉장고가 거실 한편에 나란히 병풍처럼 서 있다. 막내아들까지 군대 보내고 집에는 언니와 형부 단 둘이라 굳이 냉장고가 많이 필요할까 싶지만, 서울에 있는 동생은 물론 미국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오는 동생들 몫까지 챙기느라 냉장고가 하나씩 늘어난 것이다. 냉장고 안은 조그만 밭에 매달려 손수 농사지은 옥수수, 고추, 감자, 토마토, 갖가지 푸성귀 등 본인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동생들을 위해 짬짬이 쟁여 놓은 것들로 늘 풍성하다.…

한국 서울 권미숙

관포지교(管鮑之交)

춘추시대, 관중과 포숙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절친했던 둘은 나란히 관직에 올랐습니다. 관중은 제나라 군주인 양공의 아들 ‘규(糾)’의 보좌관이 되었고, 포숙은 규의 이복동생인 ‘소백(小白)’을 섬겼지요. 그런데 양공이 시해를 당하면서 왕위를 놓고 두 형제와 조정 대신 간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왕위를 차지한 소백이 규를 죽이고 관중도 죽이려 하자, 포숙은 간곡히 빌며 관중을 등용할 것을 진언했습니다. 정사를 맡게 된 관중은 왕을 성심껏 보좌하여 재상(宰相)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포숙은 관중의 성공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훗날 관중은 포숙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포숙과 장사를 할 때 나는 내 몫을 더 크게 했다. 그러나 포숙은 내 가난을 알고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번번이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고 아직 운이 없는 거라고 위로했다. 또한, 내가 전쟁터에 나갔다가 세 번이나 달아났지만 비겁하다 하지 않았다.…

행복한 동메달리스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 일약 스타가 된 선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수영선수 푸위안후이(20세)입니다. 그녀가 유명해진 건 여자 100m 준결승전을 치른 뒤의 인터뷰가 큰 화제를 모았기 때문입니다. 경기 후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기자가 “기록이 58초 95 나왔어요. 동메달이에요!”라고 말하자 푸위안후이 선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제가 그렇게 빨랐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기록에 완전히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은메달인 선수와 0.01초밖에 차이나지 않았는데 아쉽지 않냐고 묻자 “아뇨, 절대요. 제 손이 좀 짧았나 보죠”라며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면서도 기쁨의 환호를 질렀지요. 순위에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기록에 만족해하는 푸위안후이 선수의 꾸밈없는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0.01초 때문에 동메달에 머물렀다며 아쉬워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행복입니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능력 ‘공감’

한때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화제였던 적이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아픔까지 함께 느낀다는 극 중 주인공의 따뜻한 대사 한마디가 시청자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그의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주사를 맞거나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마치 자신이 아픈 것처럼 저절로 인상을 찡그리곤 한다. 비단 고통뿐 아니라 웃음, 하품, 가려움도 전염된다. 상대방의 감정이 나의 감정인 듯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공감능력 때문이다. 공감이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등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을 말한다. 한마디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뜻이다. 공감능력은 우리 뇌 속에 있는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에서 발현된다. 거울신경세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동을 직접 할 때와 똑같이 반응하는 세포로, 타인의 행동을 따라 하거나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즉, 타인과의 장벽을…

그라피티, NO! 깨끗하고 안전한 마을, YES! Ⅰ

건축물의 벽면 등에 페인트나 스프레이 등으로 그린 커다란 낙서를 그라피티Graffiti라고 합니다. 호주에서 그라피티는 골칫거리입니다. 미관상 좋지 않고 지역 주민들에게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볕이 내리쬐는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80여 명의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산업단지에 있는 낙서를 지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마다 붓을 하나씩 쥐고 건물에 맞는 색으로 위아래 페인트칠을 시작했습니다. 큰 건물 벽 전체와 건물의 울타리 너머까지 마구잡이로 낙서가 그려져 있어서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지만 키가 작은 초등부는 벽 아랫부분을, 키 큰 식구들과 롤러를 든 식구들은 윗부분을, 나머지 식구들은 중간 부분을 맡아 칠하니 일이 착착 진행됐습니다. 쓱쓱! 싹싹! 붓이 지나가는 곳마다 엉망진창 낙서들이 사라지고 깨끗한 벽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속하게 작업을 끝낸 식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변에 버려져 있던 쓰레기까지 주우며 더 할 일이 없는지 살폈습니다. 벽만 깨끗해졌는데도 산업단지와…

호주 시드니 주수진

모든 사람이 포기해도

2019년 5월 8일, ‘아만다 엘러’라는 30대 여성이 하와이 마우이섬 자연보호구역을 산책하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휴대전화를 차에 두고 온 터라 외부와 연락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출구를 찾아 걸으면 걸을수록 숲속 깊이 들어갔고 날은 곧 어두워졌습니다. 이후, 그녀는 생존을 위해 치열한 나날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이면 나뭇잎을 덮거나 진흙에 들어가 체온을 유지하고, 낮에는 야생 과일과 계곡물, 벌레로 허기를 달래며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기도 하고 불어난 계곡물에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숲속에서 홀로 낮과 밤을 보낸 지 17일째 되는 날, 그녀는 출발지에서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극적으로 구조대를 만났습니다. 공식적인 수색 활동은 이미 끝났지만 아만다의 가족이 현상금을 내걸고 헬기를 띄우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수색을 멈추지 않은 덕분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구조 소식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가문의 영광

경북 안동에 보물 제182호 ‘임청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민가로서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인 99칸 저택으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되었지요. 일제의 서슬 퍼런 탄압이 한창이던 1911년 1월, 임청각의 주인 이상룡 선생은 400여 명에 이르는 종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고는 가서 나라를 되찾는 일에 힘을 보태라며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자신은 만주로 망명해 독립투쟁에 힘썼습니다. 아들, 손자, 동생, 조카 등 선생의 일가 식구들까지 독립운동에 동참하자, 일제는 불령선인1들의 집에 정기를 끊겠다며 1941년에 임청각 중앙을 가로질러 철길을 냈습니다. 이로 인해 행랑채와 곳간 등이 훼손되어 지금은 절반가량 남은 상태이지요. 1.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인을 이르던 말. 임청각에서 배출된 독립유공자는 3대에 걸쳐 총 9명입니다. 광복을 위해서라면 몸도 재산도 아끼지 않은 곧은 정신이 대를 이을 수 있었던 비결은 가정교육에…

민족의 참된 스승

세종대왕은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와중에 한글까지 창제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한문에 능통했기에 정사를 수행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세종대왕이 굳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느니라. 그래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훈민정음 서문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바로, 백성과 소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계 역사상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든 군주는 오직 세종대왕뿐이지요. 한글의 우수성에 탄복한 미국 시카고대학의 언어학자 제임스 맥콜리 교수는,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20년간 해마다 10월 9일이면 강의를 쉬고 동료 교수와 학생들을 초청해 한글날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민족의 참된 스승, 세종대왕. 그의 탄생일인…

히로시마 시온 건설을 위하여

2018년 여름, 서일본은 그야말로 재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지진, 화산 폭발, 폭염 등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특히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폭우로 히로시마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히로시마는 서일본에 위치한 주고쿠·시코쿠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기도 하지요. 원폭으로 파괴된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겨진 ‘원폭 돔(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는 원자폭탄 폭발 후 내린 검은 낙진과 방사능비의 흔적이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외벽에 남아 있어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한시라도 빨리 히로시마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서일본 지역 식구들이 의기투합했습니다. 오사카, 교토, 후쿠오카교회 식구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22명의 단기선교팀이 구성되었고 짧은 4일간의 단기선교가 진행됐습니다. 단기선교 첫날, 하늘 어머니께서 히로시마 복음에 꼭 필요한 축복의 말씀을 넘치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진 식구들은 잃어버린 하늘 가족을 다 찾아 반드시 시온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일본 히로시마 단기선교단

엄마가 되어서야

저는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시골이라 좋은 점도 많았지만 시내에서 파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기다리던 날은, 도시에 있는 작은아버지가 종합과자 선물세트를 사서 들르는 명절과 제 생일이었습니다. 엄마는 특별한 음식을 기대하는 제 마음을 아시고 해마다 생일이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들로 맛있는 생일상을 차려주셨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 도시에 나가 두 살 위 언니와 자취하며 결혼 전까지 지냈습니다. 엄마는 막내딸을 어린 나이에 떼어놓아 잘 챙겨주지 못했다며 저를 무척 안쓰러워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결혼한 후에도 생일이 되면 손수 장을 봐서 생일상을 차려주시곤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가 차려주는 생일상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저는 특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상하게도 딸들의 생일이면 몸이 너무 아픈 겁니다. ‘엄마도 내 생일에 이렇게 아프셨을까?’ 제 자신이 엄마가 되기 전에는 한 번도 해본…

한국 춘천 기금주

최고의 협상 카드

2000년 미국 야구 내셔널리그 신인상 수상 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인기를 끌던 라파엘 퍼칼(Rafael Antoni Furcal). 2008년 ‘LA 다저스’와의 계약이 만료될 무렵, 그를 영입하려는 구단들의 경쟁이 뜨거웠습니다. 그중 가장 적극적이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고액의 연봉과 함께 퍼칼의 메이저리그 첫 소속 구단으로서 옛 동료가 많다는 점을 내세우며 설득을 이어갔고, 언론에 그의 귀환을 서둘러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퍼칼의 최종 선택은 브레이브스가 제시한 연봉에 미치지 못하는 LA 다저스와의 재계약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중고 소방차 한 대. 도미니카공화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퍼칼은, 미국에서 성공한 뒤에도 늘 고향을 염려했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아프면 선뜻 치료비를 지원하기도 했지요. 그런 그가, 불이 나면 트럭에 물통을 싣고 가 불을 끌 정도로 고향의 소방 시설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안타까워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고 있던 다저스의 구단주가 고향에…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감정을 느끼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며 신체 각 부분에 명령을 내리는, 우리 몸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뇌. 운동이 근육을 강화해 튼튼한 몸을 만들듯, 뇌도 꾸준히 자극하고 움직일 때 건강해집니다. 뇌에 더없이 좋은 운동은 바로, ‘독서’입니다. 책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의 뇌를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로 촬영하면 뇌 전체에 많은 양의 혈액이 활발하게 공급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뇌의 전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독서는 복합적인 사고 활동이 요구됩니다. 눈으로 읽은 문장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연상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추리·예측하는 등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두뇌 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뇌가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독서는 시각, 후각, 촉각, 운동 감각 등 여러 반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가령, ‘공을 찼다’를 읽으면 동작을 연상시키는 운동 피질이, 커피나 비누 등 향기를 가진 단어를 읽으면 후각 피질이 활성화되지요. 이처럼 책을 읽는…

우리 가족 행복규칙 만들기!

많은 사람이 새해 소망으로 가정의 행복을 꼽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요, 우연히 또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연습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행복이지요. 여러분은 가정의 행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혼자서 노력하는 것보다 가족이 함께하면 분명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테니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가정의 행복을 위한 실천 방안, 즉 ‘행복규칙’을 만들어 보세요. 중요한 것은 행복규칙을 세운 뒤에는 반드시 실천하는 것입니다. 작심삼일로 끝내지 말고 이번 한 달을 시작으로 올해가 끝날 때까지 꾸준히 지켜 나간다면, 연말에는 지금보다 더욱 행복한 가정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Tip 행복규칙은 구체적으로 세운다. (하루에 한 번씩 서로 안아주기, 다투면 하루가 지나가기 전에 화해하기, 요일별 웃음 실천하기 등)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정하지 말고, 항목 하나마다 온 가족의 동의하에 정한다. 행복규칙을 만들면 가족이 잘 보이는 곳에…

언 땅에 묻혀 있던 씨앗이 땅 위로 얼굴을 내밀듯

작은아들과 살림을 합치면서 시흥으로 이사했습니다. 육십 평생 살던 곳을 떠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큰아들과 큰딸도 시흥에 있었던 터라 좋은 마음으로 거처를 옮겼지요. 그런데 어느 날, 큰딸이 와서 뜬금없는 말로 저를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엄마, 성경에 하늘 어머니가 계신대.” 세상에, 하늘 어머니라니요. 수십 년 동안 천주교회를 다녔지만 전혀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습니다. 저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딸을 내쫓다시피 돌려보냈습니다. 이후로 교회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도록 화도 많이 내고 구박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딸은 여러 해가 지나도록 한결같이 성경 말씀을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엄마 구원한다고 저렇게 애를 쓰는데, 부모 자식 간에 원수를 져서 되겠나. 내가 마음을 바꿔야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요. 결국 새 생명의 축복을 받고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자 신기하게도 흘려들었던 성경 말씀들이 생각났습니다.…

한국 시흥 신동례

자유를 얻은 남자

법원에서 유죄 판결로 징역 13년을 선고받았지만, 하루도 감옥에 들어가지 않은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많은 지지자의 청원 아래 형을 면제받기까지 했는데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미국에 사는 코닐리우스 마이크 앤더슨은 20대에 강도 사건에 가담한 죄로 징역살이할 처지가 됐습니다. 그는 항소심에서도 판결이 바뀌지 않자 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검찰은 그를 수감하지 않았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간 앤더슨은 착실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작은 사업체를 차린 뒤 화목한 가정을 꾸려 모범적인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습니다.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알아차린 교정 당국은 앤더슨을 수감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이 앤더슨의 편을 들고 나섰습니다. 사건은 소송으로 이어졌고, 판사는 앤더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수감되었어야 할 기간 동안 그가 한 번도 죄를 짓지 않고 사회생활을 성실히 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죄를 돌이키고 뉘우친 삶이, 죄인의 신분으로 감옥행을 기다리던 앤더슨에게 완전한 자유를 준 것입니다.

자유를 얻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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