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향기
진리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변화된 식구들의 감동 이야기.
부족한 내 믿음을 위해 주신 선물, 복음
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무렵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고국 몽골에 가서, 기독교로 개종한 엄마에게 여러 번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불교 집안에서 자라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지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금씩 관심이 생겨 저도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남편과 멕시코에 가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멕시코에 도착해 앞으로 다닐 교회를 찾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엄마는 진리 교회를 찾았다며 멕시코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목사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집을 방문해 전해준 성경 말씀은 지금껏 알던 것과 너무 달라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말씀 앞에 머리를 숙이고 엘로힘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 목사님이 가고 난 뒤,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비방을 접했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고 두려워 여러 날 울며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멕시코 멕시코시티, 우양가
참 하나님을 만나다
어릴 적, 저는 선교사인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자연스레 제 삶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채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저의 영웅이셨고,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걱정스러운 일뿐 아니라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기도드리면 늘 응답해주신다고 믿었습니다. 낮에는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하고, 집에 오면 할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밤에는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하나님께서 늘 도와주셔서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고 노래, 운동,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청년들과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어려운 이웃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문화 행사를 통해 기금을 모아 그들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라자스탄의 주도인 자이푸르로 거처를 옮긴 뒤, 그곳에서 인도 중등교육위원회의 영어 교사로 22년간 여러 학교를 다니며 근무했습니다. 저는 강의할 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 잠언과…
인도 바피 찰라, 니루
오랜 기다림 끝에
저와 남편은 작은 음식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는데, 하루는 제가 감기에 걸려 많이 아파 2시쯤 일을 마치고 집에 왔습니다. 누워서 좀 쉬려고 창문을 닫다가 어떤 사람들이 집집마다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름이어서 몹시 더웠기에 저 사람들이 도대체 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무엇을 하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분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 때, 저는 남편에게 빨리 문을 열어주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문을 열어주겠다고요?”라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가득 차 얼른 문을 열고 그분들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왔다는 그분들은 어머니 하나님을 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씀에 흥미가 생겨 안으로 들어오길 청했습니다. 그분들은 성경을 펼쳐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시는 어머니 하나님이 계심을 알려주었습니다. 정말 놀라웠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면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도 계셔야 한다는 생각이…
브라질 페이라지산타나, 엘리잔젤라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복음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장 22절 때가 되면 속히 이루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돌아보면 제 복음의 삶은 이 약속대로 이루어져왔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며 인내로 기다리는 사이 하나님의 은혜가 저 한 사람에서 가족으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까지 퍼져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때’가 되면서요. 일곱 살 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구원자로 믿는 교회에 다녔습니다. 영혼 문제나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부인했던 그곳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성경에는 지옥에 관한 말씀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이 실제 존재할까 봐 두려웠고,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서 가까운 개신교 교회들을 찾아 다녀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품어온 의문을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게는 애초부터 겸손하게 배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목회 일을…
한국 안산, 안종희
영적 마라톤의 완주를 위해
제가 세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열여섯 살이던 큰 언니가 집안의 가장이 되어 형제자매끼리 부모님과 헤어진 슬픔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갔습니다. 저는 중학교에 입학한 뒤 육상을 배워 마라톤 국가 대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하 40도의 강추위 속에 훈련하다 발목 부상을 당해 결국 마라톤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부재와 힘든 선수 생활을 견디며 자라온 저는 스스로의 강함과 성공을 자랑하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힘없고 나약하여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갖는 종교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친구를 통해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우연히 만난 학창 시절 친구에게서 진리 말씀을 전해 듣고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날은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4년을 간절히 기다린 올림픽이었으나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닌 성경 공부를 하며 하루를…
몽골 울란바토르, 엥흐오드
스치는 기도에도 어머니 응답하시니
첫아이를 낳고 5개월쯤 지났을 때입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불현듯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잠 못 이루게 할 만큼 저를 괴롭혔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도 갑작스러웠지만 사후 세계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이제 막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할 엄마의 입장이 되고 보니 ‘죽기 싫다’는 마음이 더했던 것 같습니다. 그즈음 하나님의 교회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교회와의 인연은 큰애가 배 속에 있었을 때 시작됐습니다. 그때 만난 분들에게서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듣고 무척 놀랐습니다. 하지만 절실하게 불교를 믿는 언니 때문에 뭘 더 알아볼 겨를도 없이 그분들과의 만남을 접어야 했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 하나님의 교회 분들은 크리스마스가 성경에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서 한 달 남짓 매일같이 말씀을 살폈습니다. 궁금했던 영혼 세계의 섭리는 물론 새 언약 진리와 하늘 어머니의 존재까지 성경에서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뒤 곧바로…
한국 오산, 김경숙
모두의 구원을 위한 놀라운 여정
인생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중에는 별것 아닌 해프닝도 있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일도 있습니다. 제게는 아내와의 만남이 일생일대의 사건이었습니다. 아내를 통해 엘로힘 하나님을 영접했으니까요. 제 아내는 남미의 콜롬비아 출신입니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이주했지요. 윈저라는 도시에 처음 정착한 아내의 가족은 얼마 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로 가려 했지만 계획이 틀어져 몬트리올이 아닌 에드먼턴에 정착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내는 에드먼턴의 수많은 학교 중 한 곳에 진학했습니다. 바로 제가 다니던 학교였습니다. 학교에서 좋은 관계를 이어오던 저희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제가 에드먼턴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도 연인으로서 서로 신뢰하며 행복한 미래를 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놀라운 성경 말씀을 들었다며 제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월절, 하늘 어머니…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캐나다 에드먼턴, 조슈아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깨닫고서
저는 덴마크에서 태어나 열두 살에 엄마와 함께 스웨덴 말뫼로 왔습니다. 자라면서 저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갔고 인생에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덴마크에 가서 파티 생활에 물들어보기도 하고 강하고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운동에 빠져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스웨덴으로 돌아와 다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저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가 보니 한국인 두 명이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분들이 영어를 잘하지 못해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계속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종이에 써 가며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애쓰는 그분들의 말을 번역기를 써가며 이해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다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분들은 다음 주에 스웨덴어를 할 수 있는 사람과 다시 오겠다고 했고, 약속대로 그분들과 함께 한 집사님이 왔습니다. 집사님을 통해 안식일과 어머니 하나님에…
스웨덴 예테보리, 시몬
가장 가치 있는 일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실까? 아니, 하나님이 계시긴 할까?’ 기독교 집안에서 유년 시절 내내 교회를 다녔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과목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워졌습니다. 과학은 간단한 이론이라도 사실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뒤따르는 데 비해 하나님은 실존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없어 보였으니까요. 성경을 명확한 근거라고 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고 믿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서도, 만약 당신의 존재를 확신할 만한 진리가 세상에 있다면 제게도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가느다란 신앙의 끈을 이어갔습니다. 그 기간이 어느덧 4년.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는 제 영혼의 작은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니던 대학 캠퍼스에서 진리를 전하는 천사들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는 그분들은 정확히 성취된 성경 예언을 통해 수천 년의 인류사를 이끌어가시는 엘로힘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난해했던 성경은 알고 보니 짝과 짝으로 이루어진 퍼즐 조각이었고, 완성된 퍼즐을…
미국 CO 덴버, 나트넬
생명으로 인도하는 어머니의 기도
하나님께서는 이 지상에 생명을 창조하실 때 자녀가 태어나기까지 어머니가 자녀를 품게 하셨습니다. 태아는 어머니 안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머니를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압니다. 우리의 영적 삶도, 하늘 어머니를 깨닫는 것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께서 제 영혼을 낳으시고 저를 위해 기도하시고 항상 저를 생각하신다는 것에는 어떤 우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낳으시기 전에도 언제나 저와 함께하셨으며 제 평생을 지켜주시고 마침내 저를 당신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어머니께 감사드리는 마음에 시온의 향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덟 살 무렵 밤에 자려고 누우면 이 세상이 진짜일까 아니면 꿈과 같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했는데 죽음 후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교회에 거의 나가지 않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찾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미국 NY 뉴윈저, 라채
하나님의 뜻대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가톨릭 아닌 다른 종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는 언니와 형부가 제게 진리 말씀을 알려주었을 때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지 더 이상 알아볼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언니와 형부를 따라 하나님의 교회에 갔다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사랑이 가득해 보였던 것입니다. 성경 공부를 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죄 사함의 비밀에 대해서 배웠는데, 살아오면서 ‘사람은 왜 이렇게 고통받고 살다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을까?’ 했던 의문에 답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내 믿음의 바닥을 드러내고, 삶을 허무하고도 힘든 여정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저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어왔으니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엘로힘 하나님을 알고부터 인생을 보는 관점이 새로워졌습니다. 전에 없던 삶의 희망이 생기면서 무엇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셀레네
축복된 사명, 사랑의 직무
옆집에 조그만 개척교회의 목회자가 살았습니다. 그쪽 집안과 저희 모친의 친분이 두터워 모태신앙인 저도 자연스레 그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이었습니다. 학생부 회장, 총무, 서기, 안 맡은 일이 없어 아침 일찍 교회에 가면 자정이 가까워서야 녹초가 되어 집에 오곤 했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자주 소란스러웠습니다. 심심찮게 갈등이 생겼고, 제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성도들이 다툼을 벌이다 아예 두 편으로 갈라져 더더욱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교회에서 왜 이런 일들이 자꾸만 벌어지는지 의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시지만 그 교회에는 계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믿음 생활을 그만두었습니다. 삶의 구심점이 사라지고 나니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의미가 없었습니다. 비록 몸은…
한국 김해, 차영예
가장 가치 있는 일, 가장 특별한 축복
대한민국 아빠들의 삶이 대개 그렇듯 제 일상도 별 보고 출근해 별 보며 퇴근하는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는 저 머나먼 별세계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해 빛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가족 모두가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 년 내내 휴일도 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내에게 진리 말씀을 듣고서였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믿지 못했습니다. 막연한 믿음이긴 했지만 30년 넘게 다녔던 천주교회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말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처형도 아내와 함께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하는 듯했습니다. 처형은 교회에서 배운 것을 매일같이 알려주며 제 생각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한두 시간씩 성경과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제 마음은 가랑비에 옷 젖듯 진리에 대한 감동으로 젖어들었습니다. 몇 개월…
인도 오스틴타운, 최수현
탕자의 눈물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사촌 언니의 인도로 하나님의 교회를 다녔습니다.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형제자매가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는 시온이 마냥 좋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부모님도 신앙생활을 허락하시고 나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다, 평화로운 시기에 오히려 진리를 소홀히 여겼던 것처럼요. 시온을 향하던 마음은 점점 세상으로 향했고 믿음 생활에 게을러졌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이곳저곳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살면서 그것이 진정한 자유고 행복이라 믿었습니다. 세상이 다인 양 천국에 대한 소망도, 하나님도 아예 잊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시련이 닥쳤습니다. 병치레가 잦던 아이들이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해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작은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며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제야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 제발 당신께서 창조하신 이 작은 생명이 꺼지지 않게 지켜주소서!’ 다행히 아이는…
한국 남양주, 임희정
해보면 아는 것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고 보니 세상은 그야말로 전쟁터였습니다. 나를 지켜줄 이 하나 없는 비정한 생(生)의 현장에서 남들에게 밀려나지 않으려 물불 안 가리고 악착같이 일했지요. 느지막이 가정을 꾸리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장에서 납품 사업을 하며 밤낮이 뒤바뀐 생활이 어느덧 십수 년째. 아이들 얼굴 한번 보기도 어려운 일상에서 유일한 낙은 시장 사람들과 술자리에 앉아 회포를 푸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부대끼며 거칠게 살아온지라 저처럼 성격이 불같고 말과 행동이 험하기는 해도 다들 가족처럼 끈끈한 사이였습니다. 밤새 일하고 퇴근하는 오전 시간이나 일이 없는 주말마다 모여 웃고 떠들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습니다. 집사람은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다녔습니다. 딸내미들이 저한테도 교회에 가자고 조를 때면 “아빠는 안 가, 천당에는 너희끼리 가” 하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학창 시절 미션스쿨에 다녀 성경과 종교에 관심은 있었지만 술 좋아하고 막말도 함부로 내뱉는 제가…
한국 서울, 안병찬
신(新)사도행전의 주인공을 소망하며
‘하나님, 천국에만 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으니 제발 제게 구원의 확신을 주세요.’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제가 늘 빠트리지 않고 하던 기도였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지옥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 각종 수련회와 찬양회, 새벽 기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매일같이 성경을 필사하며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진리를 전하는 두 천사를 만나 안식일, 유월절 등 여러 말씀을 들었습니다. 즉시 새 생명의 축복을 받고 매일 시온에 가서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강해졌습니다. 저만 가지기는 아까운, 누구라도 듣기만 하면 다 받아들일 진리였기에 주위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과 달리 아무도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제가 안식일 예배를 지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영적인 시련 속에서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 산티아고데로스카바예로스, 송혜주
돌아온 자녀를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사랑
부모에게 꽃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는 아마도 자녀가 아닐까요? 기쁨의 근원인 자녀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은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은 깊은 바닷속에 숨어 있는 귀한 보석 같아서 쉽게 깨닫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는 어디를 가든지 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아버지의 일터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또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함께 어울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러길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몰래 놀러 나갔다가 꾸중을 듣기도 했지요. 그 대신 제가 원하는 장난감과 필요한 모든 것을 어디에서, 어떻게든 사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도록 교훈하시며 엄격하게 키우셨습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다 보면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겪고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지키느라 가고 싶은 곳에…
네팔 카트만두, 존
가장 위대한 결정
2012년 8월의 어느 날, 친구가 창세기의 말씀을 시작으로 놀라운 성경의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가톨릭에서 열심인 부모님의 반대가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3주 동안 고민한 끝에 비로소 진리를 영접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하늘 어머니를 따르기로 한 것은 제 생애 가장 위대한 결정이었습니다. 가장 감격스러운 말씀은 단연 ‘하늘 어머니’였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하나님은 아내가 안 계실까?’ 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늘 어머니의 존재는 제가 터무니없는 생각을 품은 것이 아님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자녀들의 영혼을 살리시려 지칠 줄 모르고 희생하시며 생명수를 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서서히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진리를 영접하기 전, 저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으며 사람들 앞에서 친절한 척했지만 마음속에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이 많았습니다. 하늘…
필리핀 일로일로, 찰스
말 한마디에도 사랑을 담아서
산 정상에 도달하기까지는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경사진 길을 걷기가 힘들기는 해도 꾸준히 오르다 보면 마침내 정상에 서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제게는 믿음의 여정이 산행과 같았습니다. 때때로 힘겹기도 했던 그 길이 제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더 큰 축복과 기쁨을 누리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친정엄마는 불교를 믿었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라는 말이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천국도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 같아서, 학년이 바뀌면 먼저 교회에 다니는 친구부터 찾아 일요일마다 예배당에 따라가고는 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다가, 수원으로 이사한 지 한 달 만에 이웃을 통해 진리를 영접했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생겨 직장 일을 그만두고, 이제는 하나님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차에 하나님께서 먼저 저를 찾아주셨으니까요. 듬직한 남편에 건강한 아이들 그리고 우리 가정을 지켜주실 하나님까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삶을…
한국 수원, 권소영
사랑을 회복할 기회
“하나님께서 내려오시는 건가?” 어린 시절, 잿빛 구름을 비집고 나온 햇빛이 땅으로 곧게 내리꽂힐 때면 혼자 웅얼거렸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하나님은 꼭 계실 것 같아 초등학생 때부터 개신교회에 다녔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전도할 정도로 신앙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뜬구름 잡는 듯한 설교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교회 활동은 뭐든 하고 나면 왠지 뒤끝이 허전했습니다. 교회의 갖가지 비리에 교인들의 세속적인 행태까지 알고 나서는 교회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교회는 접고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첫애를 낳고 한 달쯤 지났을까요. 언니처럼 의지하던 윗집 아기 엄마가, 아기 돌보면서 혼자 밥 챙겨 먹기가 쉽지 않을 거라며 자주 식사를 챙겨주었습니다. 안 그래도 친정 엄마가 바빠서 산후 조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던 터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성격상 누구에게 손톱만큼이라도 폐 끼치는 일을 꺼려했지만, 언니에게는 그냥 마음이 놓였습니다. 언니가…
한국 서울, 신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