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과잉보호, 나약한 자녀 만든다!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한 청년이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낮에는 잠만 자고 밤에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아들을 보다 못해 부모가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제는 자립하여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나가야 할 나이지만 아들에게 삶의 의욕이라고는 없었다. 상담을 통해 그 원인을 살펴보니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을 받으며 살아온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외동아들인 그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철저히 짜 놓은 시스템하에, 필요한 것은 요구하기도 전에 얻었고, 친구까지 엄마의 기준에 맞춰 사귀어야 했다. 스스로 선택할 기회도, 역경을 헤쳐나간 경험도 없기에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부모를 의존하며 무기력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관심과 사랑으로 착각한 양육 방식, 귀하다고 사사건건 도와주고 무조건 두둔하며 자식을 곱게 키운 대가다. 아이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과,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지극한 사랑은 부모로서 당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온실 속…
지각한 부장관
2018년 1월 어느 날,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오후 3시에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날 마이클 베이츠 국제개발부 부장관은 소득 불평등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리에 참석한 부장관은 돌연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자신이 몇 분 늦게 도착한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아주 중요한 질의의 첫 부분에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결례를 범하게 된 데 진심으로 사과한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즉각 사임안을 총리에게 제출하겠다.” 통상적으로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사과의 뜻을 표하고 넘어가지만, 그는 지각을 작은 실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입법부의 합법적인 질의에 대응할 때는 최대한 예의범절을 갖춰야 한다’는 신념으로 공무를 수행해온 만큼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의원들은 그의 사임을 반대했고, 총리도 사표 수리를 거부하며 그날 일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몇 분 늦은 것쯤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도덕과 윤리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약속 시간 엄수는 기본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공직자의 태도에…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
4년 전, 교회 맞은편 중국집의 사장님이 바뀌었습니다. 새 이웃에게 진리 말씀을 전하고 싶었지만 사장님이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해, 간단히 눈인사만 하고 지냈습니다. 2018년 말, 새 예루살렘 전도축제가 선포된 후 중국집 사장님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진리를 들은 사장님은 예전처럼 별반 관심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만났습니다. 영업에 방해될까 봐 식당이 한가한 시간에 사장님이 바람을 쐬러 밖에 나오면 교회에 모시고 와서 진리를 조금씩 전하는 식이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걸까요. 한 번, 두 번, 진리 발표 횟수가 늘어나자 사장님의 질문도 늘었습니다. 성경 공부는 점점 깊이를 더해갔고 마침내 사장님은 진리를 들은 지 4개월 만에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형제님은 성경 공부는 물론 봉사에도 열성적이었습니다. 고향에서 보내온 음식을 교회 식구들과 나눠 먹겠다고 가져오기도 하고, 아침에 가게 입구를 청소할…
한국 서울 오대엽
엄마와 빛
어릴 적 우리 집은 깊은 산골짜기에 있었다. 열네 가구가 전부인 마을에는 버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초등학교까지 가려면 걸어서 사십 분, 중학교는 자전거를 타도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고등학교는 도저히 집에서 다닐 수 없어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 주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주말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서 쌀과 반찬, 용돈을 받아와 일주일을 보냈다. 집에 가는 토요일은 서둘러야 했다. 그나마 동네 가까이 가는 몇 안 되는 버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막차를 타야 하는데 엄청난 담력이 필요했다. 버스에서 내려 가로등도 없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삼십여 분 동안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신경을 쓴다고 써도 어쩔 수 없이 막차에 올라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면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하지만 막상 산길에 접어들면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군데군데 나타나는 무덤들, 새까만 개울가에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
한국 양산 주점열
미루기만 하다가는
는 ‘푸른 바다의 섬’으로 가기 위해 항해를 떠납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 나타나 키를 낚아챕니다. 의 관심사는 오직 두 가지입니다. ‘재미있는 것’과 ‘쉬운 것’. 키를 잡은 는 ‘암흑의 놀이터’로 방향을 돌립니다. 그곳은 죄책감과 불안감과 자기혐오감에 휩싸인 채 하염없이 놀기만 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배에는 이 있어서, 괴물이 잠에서 깨어나면 원숭이는 재빨리 숨어버리고 는 ‘푸른 바다의 섬’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푸른 바다의 섬’은 ‘암흑의 놀이터’보다는 덜 즐겁지만 중요한 일이 펼쳐지는 곳이지요. 합리적 의사 결정자, 순간적 만족감 원숭이, 공황 괴물은 우리 뇌에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다 기한이 임박했을 때에라야 허겁지겁 해치우는 심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이처럼 기한이 있는 일은 마감 때가 이르면 괴물이 깨어나 해결해주지만, 문제는 기한이 없는 일입니다. 괴물이 좀체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요. 키를 원숭이에게 내어주고 무한정 미루기만 하다가는…
‘우리 가족 편지함’ 만들기!
다산 정약용은 유배 시절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을 교육하기 위해 백 통이 넘는 편지를 썼습니다. 퇴계 이황 역시 아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어 아버지의 속 깊은 사랑을 전했지요.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어릴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어머니에게 편지로써 애정과 그리움을 표현했습니다. 편지는 진솔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자, 최고의 글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자녀의 편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 부모, 부모의 편지에 엇나갔던 마음을 바로잡은 자녀들이 어디 한둘인가요. 이달에는 예쁜 편지함을 만들어 편지로 가족 사랑을 나눠보세요. Tip 가족 수만큼 종이컵이나 작은 상자를 준비해 예쁘게 꾸민다. 예쁘게 꾸민 편지함에 각자의 이름을 써 붙인다. 집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편지함을 둔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가족에게 감사, 칭찬, 격려 등 하고 싶은 말을 써서 편지함에 넣는다.
길이 기다려주신 하나님께 보답할 시간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척박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는 기적의 양식이었습니다. 하지만 40년간 끼니마다 만나를 먹던 백성들에게 만나는 점점 박한 식물로 변해갔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5개월쯤 지나 진리를 영접하신 부모님은 몇 년 뒤 선지자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도 어릴 적부터 시온에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마냥 즐거웠던 시온 생활은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주말이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재밌게 지내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시온에서 꼬박꼬박 규례를 지켜야 하는 게 불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달랐습니다. 불평불만은 잡초처럼 생명력이 강해서 한번 싹을 틔운 뒤로 도무지 사그라들 줄 몰랐습니다. 사춘기까지 겹치면서 마음은 점점 더 삐뚤어져갔습니다. 시온 식구들의 관심과 부모님의 사랑은 간섭과 참견으로, 당연하게 지키던 규례는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게…
한국 성남 서준영
특별한 버스 정류장
강원도 태백시 산간도로에 특별한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사람 이름을 따서 만든, ‘권춘섭 집 앞’ 정류장입니다. 1999년에 생긴 이 정류장의 이름은 원래 ‘권상철 집 앞’이었습니다. 투병 중인 아내가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멀리 떨어진 정류장을 오가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권상철 씨. 그는 버스 정류장을 추가로 설치해달라고 시청에 거듭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집에서 가까운 곳에 버스 정류장이 세워지게 되었는데, 문제는 정류장 이름이었습니다. 워낙 외진 산골이라 주변에 정류장 이름으로 삼을 만한 건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류장 이름은 ‘권상철 집 앞’으로 정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권상철 씨는 세상을 떠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지키고 있는 장남 권춘섭 씨의 이름으로 정류장 명칭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버스 정류장이 2대에 걸쳐 이어져온 것입니다. 아내를 위한 남편의 따뜻한 마음으로 세워진 버스 정류장. 아내가…
선생님의 마지막 선물
2018년 6월, 알록달록한 어린이용 책가방을 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책가방 안에는 여러 가지 학용품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인 곳은 다름 아닌 장례식장. 59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태미 워델(Tammy Waddell)의 발인 날이었습니다. 워델은 미국 조지아주 포사이스 카운티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습니다. 약 30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그녀는 평소 학생들을 ‘내 자식들’이라 부를 정도로 각별히 대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배울 권리가 있다며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암이 재발해 시한부 선고가 내려지자,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내 장례식에 꽃 대신 학용품이 든 책가방을 가져와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세요.” 문상객들이 어린이용 책가방을 갖고 장례식장에 모인 까닭은 고인의 마지막 부탁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제자들을 사랑한 선생님의 장례식장은, 마치 마지막 수업을 하듯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어머니를 마음에 품고 깨어나
할아버지의 80세 생신을 맞아 10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는 엄격하고 강한 분이셨고 매사에 부지런하셔서 추수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서 곡식을 살피셨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척 강인하고 건강한 분이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지신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는 움직임도 거의 없고 말씀도 많이 하지 않으셨다.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아 계시다 잠들고는 하셨는데 앉고 일어서는 것조차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애쓰시는 할아버지께 안부 인사를 드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할아버지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나는 문득 한 분을 떠올렸다. 우리 죄로 이 땅에 오셔서 수고와 희생의 세월을 보내시는 어머니.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은 복음이 온 세상에 다 전파되어야만 끝이 날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정신이 확 들었다. 흐트러진 내 마음을 바로잡아 영적으로…
필리핀 만달루용 / Jomarie M. Supleo
제자를 살린 선생님
미국 조지아주에 사는 열두 살 소년 카덴 코우브키는 두 살 때 희귀 신장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섯 살 때 아빠의 신장을 이식받으면서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나, 얼마 안 가 부작용이 생기는 바람에 계속 투석을 받아야 했습니다. 2018년 들어 병세가 심해지자 담당 의사는 빨리 신장 기증자를 찾는 것이 카덴이 건강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카덴의 가족은 신장을 기증해줄 사람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병원으로부터 적임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이 왔고, 위급한 상황에 있었던 소년은 무사히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증자의 정보는 공개되지 않기에 소년과 그의 가족은 이름 모를 생명의 은인에게 그저 마음으로만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신장을 기증해준 사람은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바로, 카덴의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제자의 사연을 듣고 몰래 조직 검사를 받은 선생님은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오자 망설임 없이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카덴이…
축복의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
말레이시아에서는 300개 복음 도시 건설을 목표로 달마다 단기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기회를 붙잡고자 많은 형제자매가 자원하였고 저희도 그 축복에 동참하여 클루앙 단기선교에 나섰습니다. 클루앙은 복음이 전혀 전파되지 않은 지역으로, 저희에게 복음의 불모지를 개척하고 진리를 전하는 사명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거듭 감사드렸습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클루앙까지 이동하는 데만 4시간 반. 4박 5일이라는 짧은 여정에 저희는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짐을 풀고 사람들이 많은 장소로 향했습니다. 클루앙 사람들은 이 시대의 구원자이신 성령과 신부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진리 말씀에 귀 기울이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속히 나아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온종일 말씀을 전했는데도 하나님의 진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말씀을 듣는다 해도 관심이 없다며 더 이상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기대와 다른 반응에 약간 실망감이 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시에 단기선교를 시작한 다른…
말레이시아 클루앙 단기선교단
엄마를 대신한 사랑
“미숙아, 딸기 먹으러 와.” “미숙아, 옥수수가 너무 맛있게 됐어. 쪄 놓을 테니 와서 먹어.” “미숙아, 산에 가서 두릅이랑 취나물 뜯었는데 너무 맛있어. 먹으러 와.” 먹을 것이 생길 때마다 부르는 큰언니. 육 남매의 맏이인 큰언니는 내가 바쁘다는 걸 알면서도 맛있는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연락을 한다. 언니 집에는 대형 냉장고가 둘, 김치냉장고가 둘, 총 네 대의 냉장고가 거실 한편에 나란히 병풍처럼 서 있다. 막내아들까지 군대 보내고 집에는 언니와 형부 단 둘이라 굳이 냉장고가 많이 필요할까 싶지만, 서울에 있는 동생은 물론 미국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오는 동생들 몫까지 챙기느라 냉장고가 하나씩 늘어난 것이다. 냉장고 안은 조그만 밭에 매달려 손수 농사지은 옥수수, 고추, 감자, 토마토, 갖가지 푸성귀 등 본인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동생들을 위해 짬짬이 쟁여 놓은 것들로 늘 풍성하다.…
한국 서울 권미숙
관포지교(管鮑之交)
춘추시대, 관중과 포숙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절친했던 둘은 나란히 관직에 올랐습니다. 관중은 제나라 군주인 양공의 아들 ‘규(糾)’의 보좌관이 되었고, 포숙은 규의 이복동생인 ‘소백(小白)’을 섬겼지요. 그런데 양공이 시해를 당하면서 왕위를 놓고 두 형제와 조정 대신 간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왕위를 차지한 소백이 규를 죽이고 관중도 죽이려 하자, 포숙은 간곡히 빌며 관중을 등용할 것을 진언했습니다. 정사를 맡게 된 관중은 왕을 성심껏 보좌하여 재상(宰相)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포숙은 관중의 성공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훗날 관중은 포숙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포숙과 장사를 할 때 나는 내 몫을 더 크게 했다. 그러나 포숙은 내 가난을 알고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번번이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고 아직 운이 없는 거라고 위로했다. 또한, 내가 전쟁터에 나갔다가 세 번이나 달아났지만 비겁하다 하지 않았다.…
행복한 동메달리스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 일약 스타가 된 선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수영선수 푸위안후이(20세)입니다. 그녀가 유명해진 건 여자 100m 준결승전을 치른 뒤의 인터뷰가 큰 화제를 모았기 때문입니다. 경기 후 물 밖으로 나왔을 때, 기자가 “기록이 58초 95 나왔어요. 동메달이에요!”라고 말하자 푸위안후이 선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제가 그렇게 빨랐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기록에 완전히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은메달인 선수와 0.01초밖에 차이나지 않았는데 아쉽지 않냐고 묻자 “아뇨, 절대요. 제 손이 좀 짧았나 보죠”라며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가면서도 기쁨의 환호를 질렀지요. 순위에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기록에 만족해하는 푸위안후이 선수의 꾸밈없는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그녀가 0.01초 때문에 동메달에 머물렀다며 아쉬워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행복입니다.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능력 ‘공감’
한때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이 화제였던 적이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아픔까지 함께 느낀다는 극 중 주인공의 따뜻한 대사 한마디가 시청자들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그의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주사를 맞거나 넘어져 무릎이 까지면 마치 자신이 아픈 것처럼 저절로 인상을 찡그리곤 한다. 비단 고통뿐 아니라 웃음, 하품, 가려움도 전염된다. 상대방의 감정이 나의 감정인 듯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공감능력 때문이다. 공감이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등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을 말한다. 한마디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뜻이다. 공감능력은 우리 뇌 속에 있는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에서 발현된다. 거울신경세포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그 행동을 직접 할 때와 똑같이 반응하는 세포로, 타인의 행동을 따라 하거나 감정을 이입하게 한다. 즉, 타인과의 장벽을…
그라피티, NO! 깨끗하고 안전한 마을, YES! Ⅰ
건축물의 벽면 등에 페인트나 스프레이 등으로 그린 커다란 낙서를 그라피티Graffiti라고 합니다. 호주에서 그라피티는 골칫거리입니다. 미관상 좋지 않고 지역 주민들에게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볕이 내리쬐는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80여 명의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산업단지에 있는 낙서를 지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마다 붓을 하나씩 쥐고 건물에 맞는 색으로 위아래 페인트칠을 시작했습니다. 큰 건물 벽 전체와 건물의 울타리 너머까지 마구잡이로 낙서가 그려져 있어서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지만 키가 작은 초등부는 벽 아랫부분을, 키 큰 식구들과 롤러를 든 식구들은 윗부분을, 나머지 식구들은 중간 부분을 맡아 칠하니 일이 착착 진행됐습니다. 쓱쓱! 싹싹! 붓이 지나가는 곳마다 엉망진창 낙서들이 사라지고 깨끗한 벽으로 바뀌었습니다. 신속하게 작업을 끝낸 식구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변에 버려져 있던 쓰레기까지 주우며 더 할 일이 없는지 살폈습니다. 벽만 깨끗해졌는데도 산업단지와…
호주 시드니 주수진
모든 사람이 포기해도
2019년 5월 8일, ‘아만다 엘러’라는 30대 여성이 하와이 마우이섬 자연보호구역을 산책하다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휴대전화를 차에 두고 온 터라 외부와 연락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출구를 찾아 걸으면 걸을수록 숲속 깊이 들어갔고 날은 곧 어두워졌습니다. 이후, 그녀는 생존을 위해 치열한 나날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밤이면 나뭇잎을 덮거나 진흙에 들어가 체온을 유지하고, 낮에는 야생 과일과 계곡물, 벌레로 허기를 달래며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기도 하고 불어난 계곡물에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숲속에서 홀로 낮과 밤을 보낸 지 17일째 되는 날, 그녀는 출발지에서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극적으로 구조대를 만났습니다. 공식적인 수색 활동은 이미 끝났지만 아만다의 가족이 현상금을 내걸고 헬기를 띄우며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수색을 멈추지 않은 덕분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구조 소식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가문의 영광
경북 안동에 보물 제182호 ‘임청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민가로서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인 99칸 저택으로,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되었지요. 일제의 서슬 퍼런 탄압이 한창이던 1911년 1월, 임청각의 주인 이상룡 선생은 400여 명에 이르는 종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고는 가서 나라를 되찾는 일에 힘을 보태라며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자신은 만주로 망명해 독립투쟁에 힘썼습니다. 아들, 손자, 동생, 조카 등 선생의 일가 식구들까지 독립운동에 동참하자, 일제는 불령선인1들의 집에 정기를 끊겠다며 1941년에 임청각 중앙을 가로질러 철길을 냈습니다. 이로 인해 행랑채와 곳간 등이 훼손되어 지금은 절반가량 남은 상태이지요. 1.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인을 이르던 말. 임청각에서 배출된 독립유공자는 3대에 걸쳐 총 9명입니다. 광복을 위해서라면 몸도 재산도 아끼지 않은 곧은 정신이 대를 이을 수 있었던 비결은 가정교육에…
민족의 참된 스승
세종대왕은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와중에 한글까지 창제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한문에 능통했기에 정사를 수행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세종대왕이 굳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느니라. 그래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훈민정음 서문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바로, 백성과 소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계 역사상 백성을 위해 문자를 만든 군주는 오직 세종대왕뿐이지요. 한글의 우수성에 탄복한 미국 시카고대학의 언어학자 제임스 맥콜리 교수는,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20년간 해마다 10월 9일이면 강의를 쉬고 동료 교수와 학생들을 초청해 한글날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민족의 참된 스승, 세종대왕. 그의 탄생일인…